[이슈앤워치] 호르무즈 봉쇄에 ‘4월 분수령’…원유 수급, 가격 넘어 ‘물량 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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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국내 원유 수급 불안이 ‘가격’ 문제를 넘어 ‘물량’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부는 UAE산 원유 2400만 배럴 추가 확보와 국제에너지기구(IEA) 공조 비축유 2246만 배럴 방출로 급한 불을 끄겠다는 구상이지만, 정유업계 안팎에서는 ‘4월 분수령’이 제기되고 있다.

1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전 마지막으로 통과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은 오는 24일 전후 국내에 도착할 예정이다.

문제는 VLCC 도착 이후다. 중동산 원유 수입이 당분간 재개되기 어렵다면 내달은 사실상 신규 물량 공백 구간이 된다. 정유사들은 기존 재고와 대체 도입선 확보로 버텨야 한다. 다만 대체선은 대부분 단기 계약이어서 중동산보다 비싸고, 북미 등 장거리 물량은 운송 시간도 더 길다. 국내 정제설비가 중동산 중질유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단순히 “다른 데서 사오면 된다”는 식의 대응은 한계가 분명하다.

정부가 내세우는 방어막은 크게 두 겹이다. 하나는 UAE 긴급 물량이다. 정부는 지난 6일 확보한 600만 배럴에 더해 18일 1800만 배럴을 추가 확보해 총 2400만 배럴을 들여오기로 했다. 다른 하나는 IEA 공조 방출분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2일 IEA 회원국 공조에 따라 국내 비축유 2246만 배럴을 시장에 풀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물량을 단순 합산하면 4646만 배럴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내달 말까지는 최악의 수급 위기 없이 버틸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숫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체감은 크게 달라진다. 정부가 설명하는 ‘208일분 비축’은 IEA 기준의 일평균 순수입량 개념이다. 반면 현장에서 체감하는 실제 소비·정제·수출까지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업계와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지금도 수출을 계속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한국 정유업계는 지난해 석유제품 4억8535만 배럴을 수출했다. 이는 국가 수출품목 4위 규모의 핵심 수출 산업이다. 특히 경유가 전체 수출의 42%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 의존도가 높다. 공급 충격이 왔다고 곧바로 수출을 멈추면 국내 수급 방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정유사 수익성과 국가 무역수지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결국 4월 위기설의 핵심은 비축유 여부가 아닌 “비축유를 어떤 속도로 쓰게 되느냐”에 있다. 수출을 상당 부분 유지한 채 버티면 재고 소진 속도는 빨라진다. 반대로 수출을 강하게 줄이면 내수 방어력은 높아지지만 정유사 손익과 국제 거래 신뢰에 부담이 커진다. 이미 정부는 지난 13일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면서 정유사의 수출 물량을 전년 동기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향을 시사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필요하면 에너지 수출 통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가격 통제를 넘어, 공급 부족 국면에서 수출을 전략적으로 조정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정유사들 입장에서는 셈법이 더 복잡하다. 당장 수출을 줄이기도 어렵다. 장기 계약 물량, 해외 거래선과의 신뢰, 정제설비 가동률 문제가 걸려 있어서다. 정유사는 원유를 들여와 국내 수요만 충당하는 구조가 아니라, 정제 후 고부가 제품을 해외로 내보내며 수익을 맞춘다. 수출이 끊기면 매출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전체 공장 운영의 효율도 떨어질 수 있다. 정부가 수출 통제를 언급해도 현장에서 고려할 요소가 산적하다.

재고 측면에서도 안심하긴 이르다. 지금 확보한 UAE 물량이 계획대로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을 따져야 해서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UAE 푸자이라 항구를 활용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지역 역시 이란의 공격권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즉 숫자상 확보와 실제 국내 도착은 다른 문제다. 비축유 방출 역시 발표만큼이나 시점과 속도가 중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은 ‘풀겠다’는 말보다 ‘언제, 얼마를, 어떤 제품 형태로’ 투입하느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사태는 단순한 원유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소재·원료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심상치 않다. 원유가 막히면 나프타가 흔들리고, 나프타가 흔들리면 포장재와 자동차 내장재, 화장품 용기, 매트리스 원료까지 차례로 영향을 받는다. 정부가 나프타를 경제안보품목으로 지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유사 탱크의 잔량만 보는 식으로는 위기의 실체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원유 수입선 다변화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해상 루트가 장기간 흔들리면, 정유·석유화학을 넘어 제조업 전체가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당장 “4월 대란”으로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로선 UAE 긴급 물량, IEA 공조 방출, 정부의 수요 억제 카드가 동시에 작동하면 최소 내달 말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확보된 UAE 물량과 비축유를 합치면 추가로 22~25일가량 버틸 수 있는 규모라는 분석도 나온다. 차량 5부제 같은 강한 수요 관리가 병행되면 당초 우려보다 상황이 완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이는 추가 물량이 제때 들어오고, 공포가 실수요 이상으로 확산하지 않으며, 봉쇄 장기화가 더 악화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 4사의 실제 원유 재고 일수와 중동 외 대체도입 비중이 어느 수준인지, 석유제품 수출을 어느 범위까지 조정할 수 있는지, 축유 방출이 시장 안정을 이끌 만큼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실행되는지가 중요하다"며 "이 세 축이 흔들리면 4월 위기설은 곧바로 현실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반대로 여기서 방어선이 구축되면 이번 충격은 고비용 위기에 머무를 수 있는데, 문제는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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