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최성은이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로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늘 단단하고 또렷한 인물들을 연기해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불안하고 서툰 청춘 연경으로 분해 이전과는 다른 결의 연기를 펼쳤다. 흔들리는 마음과 미숙한 선택 속에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극에 새로운 리듬을 더했다.
‘매드 댄스 오피스’는 완벽한 하루를 살아온 공무원 국희(염혜란 분)가 인생의 균열 앞에서 플라멩코를 통해 다시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단편 ‘무서워서 크게 부르는 노래’로 실력을 인정받은 조현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배우 염혜란·최성은·아린 등이 호흡을 맞췄다. 지난 4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최성은은 극 중 국희의 후배 공무원 연경을 연기했다.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지만 번번이 어긋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다그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국희를 동경하지만 자신을 믿는 힘은 부족한 인물로, 흔들림 속에서 결국 자신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한 연기와 몸의 긴장을 풀어낸 플라멩코 장면은 인물의 불안과 해방의 순간을 동시에 드러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최성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 안에 있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경이라는 인물을 이해해 가는 과정과 연약함을 드러내는 연기에 대한 고민, 그리고 여성 서사 속에서 느낀 연대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여성 중심 서사의 작품이다. 관객을 만나는 기분은.
“영화 자체가 여성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치중이 돼 있고, 감독님도 그렇고 촬영 감독님도 그렇고 대부분 스태프가 여자였다. 그러다 보니까 만들 때 힘을 얻는 느낌도 있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해야 할까, 영화를 함께 만들면서 느꼈던 지점들이 잘 전달될 것 같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다. 어떤 해방감이 느껴지더라.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국희의 감정선을 쭉 따라오게 되니까 작업을 하면서도, 그리고 영화를 완성된 걸 보면서도 그랬다. 촬영은 한 2년 전에 했는데 의기투합을 했다.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은 환경에서 서로 열심히 찍어내려고 노력했는데 그 과정이 ‘매드 댄스 오피스’라는 영화 안에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아껴주셨으면 좋겠다.”
-이 작품에 끌린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나.
“염혜란 선배가 먼저 캐스팅돼 있었다. 그게 제일 컸다. 염혜란 선배와 같이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도 좋았고 플라멩코를 추는 설정도 굉장히 매력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엄청 독창적인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는 영화는 아닌데 플라멩코라는 요소가 영화 안에 들어가면서 이 영화만의 색깔이 생긴다고 느꼈다.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때 그런 점이 매력 중 하나로 다가왔다.”
-연경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했나.
“자기 안에 사랑이 되게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남들에게 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고, 자기 안에서 그 사랑을 키워나가서 주변에 어떤 힘을 건넬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직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랑이 조금 부족한 인물이라고 봤다. 연경은 누구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데, 그 마음이 과해지다 보니까 어떤 삐끗한 사고들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자신을 더 위축하게 만드는 거다. 연경이 가족이든 주변 인물이든 어떤 압박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항상 뭔가를 이뤄야 내 존재가 증명되는 것처럼 느끼는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자신을 믿는 힘, 자신이 가진 사랑이 얼마나 크고 힘이 있는지 믿는 힘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인한 여성 롤모델을 삼고 국희를 보며 ‘저 사람처럼 되면 되지 않을까’ 하며 따라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자신의 감각이나 기준을 많이 지워야 했던 사람이라고 느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 봤다.”
-공감한 지점은 무엇이었나.
“연경이 자신에게 하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됐다. ‘일어나, 더 걸어, 한 발짝만 더 가면 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부분이나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 연경이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얼마나 채찍질하고 때로는 혐오하기도 하는지 그런 마음에는 많이 공감이 갔다. 다만 그것이 겉으로 발현되는 방식은 나와 기질적으로 조금 다른 것 같고 안에 있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왜 연경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왜 국희처럼 모든 것을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이고 답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자기 확신이 가득한 사람을 선망하는지도 이해가 됐다. 그런 지점들은 공감이 됐던 부분이다.”
-기존에 맡아온 인물과 다른 캐릭터였다. 말투나 표정, 몸의 자세 등 표현 방식을 구축하는 과정은 어땠나.
“사실 진짜 어려웠다. 처음에는 ‘왜 감독님이 내게 이걸 제안해 주셨지’라는 두려움과 궁금증이 가장 컸다. 일단 가장 먼저 내 안에서 연경을 발견해 내야 했다. 연경을 정말 이해하고 내 안에서 연경과 같은 지점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있는데 밖으로 많이 꺼내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것은 말투나 몸을 바꾸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에서 필요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걸 꺼내도 된다’ ‘이 사람들 앞에서 꺼낼 수 있다’는 마음이 필요했는데 염혜란 선배와 조현진 감독님이 있었기 때문에 더 수월했다. 두 분이 갖고 있는 포용하는 에너지가 컸기 때문이다. 몸을 어떻게 쓰고 말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평상시에도 말을 또박또박하는 편이고, 지금까지 맡아온 인물들도 흐트러져 있기보다는 다부지게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 인물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실제로 최성은이라는 사람도 조금 더 풀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차원의 노력을 하려고 했다.”
-인물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마이즈너 테크닉이라는 일종의 연기 테크닉이 있는데 그 훈련을 하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수업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 수업을 통해 내가 연경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내 안의 부분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다.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연경을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조금의 희망이 있었다. 두려웠던 것은 내가 그런 모습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고민을 염혜란 선배에게도 촬영 전에 다 털어놨고 감독님에게도 말씀드렸다. 나는 내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인데 연경 같은 사람은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결국 드러나는 인물이지 않나. 그런 사람들에게 되게 애정이 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런 연약함이 드러나는 모습이 더 예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같이 연기하는 사람들과 감독님에게 먼저 내 연약함을 많이 보여주려고 했고, 그렇게 해야 내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 노력했다.”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나.
“우선 내 안에서 발견해 내는 게 가장 큰 과정이었다. 내 안에도 이런 연경이 같은 모습이 있다고 확신을 가지면서 촬영했다. ‘내가 가진 사랑스러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귀여움을 믿어야지’ 하면서 조금 더 자유롭게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다고 믿으려고 했다. 참고한 것이 있다면 감독님이다. 감독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연경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일종의 반사판처럼 감독님을 보면서 영향을 주고받았고,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감독님을 떠올리면서 읽어 내려가기도 했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감독님이었던 것 같다.”
-연경의 유약한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나.
“물론 연기를 하면서 ‘쟤 왜 저래’라는 느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다. 연경은 울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관객들이 그 인물을 사랑스럽게 볼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그 인물이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유약함을 드러낼 때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는 서사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밉지 않게 바라볼 때라고 느꼈다. 연기를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작가님과 감독님이 연경을 미워할 수 없도록 인물을 써주셨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국희가 연경과 함께 변해간다고 느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때로는 연경이 국희를 끌어주기도 하고 국희가 연경을 끌어주기도 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연경을 미워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 연기가 연경을 더 사랑스럽게 보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은 있었다. 그건 나의 개인적인 고민이었고, 연경이라는 인물 자체는 유약함이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스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연경의 엉뚱하고 순수한 매력이 이 영화의 유쾌한 리듬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지점에 대한 접근도 궁금한데.
“시사회 때 생각보다 관객들이 웃어주더라. 연경이 나오는 부분에서 웃어주는 게 되게 신기했다. 영화관에서 보기 전에 스크리너로 먼저 봤는데 그때는 오히려 백현진 선배나 박호산 선배가 나올 때 웃었지, 내가 찍은 장면에서는 절대 웃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느끼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연경이 한 행동들이 관객들에게 마냥 밉게 보이거나 ‘왜 저래’라는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나 보다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촬영할 때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내 반응이나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꺼내어져서 그렇게 다가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전작에서는 조금 더 정제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과 작품에 맞게 그걸 컨트롤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오는 반응을 자연스럽게 두려고 했던 것이 컸고, 그런 점에서 어떤 리듬 같은 것이 느껴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플라멩코 연습 과정은.
“3개월 정도 했는데 힘들었다. 몸을 엄청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짧은 시간 안에 염혜란 선배가 추는 플라멩코와는 또 다른 종류의 춤을 춰야 했다. 머릿속으로는 너무 예쁘고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몸이 잘 따라주지 않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꼭 잘 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연습하면서 그런 지점에서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감독님이 플라멩코를 굉장히 좋아하고 거의 영혼의 동반자처럼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현장에서도 감독님께 많이 물어봤다. 안무 감독님이 항상 계신 건 아니라서 감독님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또 혜란 선배와 함께 춤을 추는 댄서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과 같이 연습하고 춤을 추다 보니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됐다.”
-자신만의 플라멩코가 있나.
“아직까지 내 삶에서 확실한 계기로 작용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물에 들어가 있을 때다. 물 안에 들어가 있을 때 새로운 감각을 많이 느낀다. 원래 물을 무서워해서 들어가기 힘들었는데 숙원사업처럼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을 하면서 삶에 대해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꽉 잡고 사는 사람이다 보니까 나를 풀어헤쳐 주는 물의 속성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점이 연경에게 플라멩코 같은 역할을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것들은 매일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버튼 하나 누르면 어떤 변화나 확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내 감각과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그런 것들이 조금씩 근육처럼 붙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여성 서사로서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두 인물이 결국 플라멩코라는 것을 통해 연대하면서 나아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플라멩코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감독님 말로는 플라멩코가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춤이라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까 같은 여성으로서 더 억압되고 지켜야 하는 것들, 부가되는 기준들이 많다고 느끼는데 플라멩코가 ‘그걸 풀어헤쳐도 된다, 놓아버려도 된다’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여성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도 되고, 앞으로 나아가도 된다는 메시지가 플라멩코라는 춤 안에 담겨 있다고 느꼈다.”
-배우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내 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최성은이라는 사람에게서 잘 느끼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여성 서사에 대한 영화들을 많이 찍고 싶다. ‘매드 댄스 오피스’가 완전히 처음은 아니지만, 염혜란 선배와 단둘이서 이런 영화를 끌고 나간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시작점처럼 남을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여성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를 계속 찍어나가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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