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공기관 임금이 노동시장 기준을 만든다

프라임경제
우리 사회의 임금 논쟁은 오랫동안 최저임금 인상 여부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구조를 인력경영(HRM)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이 얼마나 오르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 전체가 어떤 임금 기준을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노동시장에서 임금은 단순한 보상의 수준을 넘어 중요한 '신호(signaling mechanism)'로 작동한다. 특히 공공부문 임금은 민간 노동시장에 강력한 기준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인력경영 이론에서 신호 효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노동시장 참여자들은 항상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조직이나 제도에서 나타나는 기준을 참고하여 자신의 판단을 조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공기관의 임금 수준은 단순한 내부 보상 체계를 넘어 노동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 신호가 된다. 공공기관이 어떤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느냐에 따라 민간기업과 구직자 모두 노동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형성하게 된다.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공공부문 임금 구조가 최저임금을 사실상의 일반 임금처럼 사용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어 왔다는 점이다. 기간제나 공무직, 공공서비스 영역의 고용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널리 사용되면서 노동시장에는 하나의 신호가 전달되었다. "이 정도 임금이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수준이다"라는 신호다. 그 결과 민간 노동시장에서도 최저임금이 단순한 금지선이 아니라 현실적인 임금 기준처럼 인식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최근 대통령이 공공부문 임금 관행을 언급하며 "최저임금은 금지선이지 권장되는 임금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신호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공부문이 최저임금을 일반 임금처럼 사용하는 구조를 유지한다면 노동시장 전체의 임금 기준 역시 낮은 수준에서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공공기관이 노동의 가치에 맞는 적정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하면 노동시장에는 전혀 다른 신호가 전달된다. 노동에는 최소한의 비용이 아니라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신호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공공부문 임금은 민간 노동시장에 기준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공공기관이 적정임금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제시하면 민간기업은 최저임금을 단순한 비용 기준으로 삼기보다 노동의 가치에 맞는 임금 구조를 고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최저임금은 비로소 본래의 역할을 회복하게 된다. 즉 인간에게 허용되는 가장 낮은 임금 수준이라는 경고선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시장 현장에서 은퇴 세대가 "최저임금도 부담스럽다"는 인식을 보이는 현실 역시 이러한 신호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오랜 기간 공공부문에서도 최저임금 수준의 고용이 확대되면서 사회 전체가 낮은 임금 기준에 익숙해진 결과일 수 있다. 결국 임금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제도와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공공기관은 단순한 고용주가 아니다.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준 고용주의 역할을 가진다. 인력경영 관점에서 보면 공공부문 임금 정책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에 보내는 신호의 문제다. 공공기관이 적정임금을 기준으로 삼을 때 노동시장도 그 기준을 따라 움직인다.

최저임금은 법의 기준일 뿐이다. 그러나 적정임금은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이 먼저 만들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적정임금을 통해 새로운 신호를 보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노동시장은 ‘최저’가 아니라 '가치'를 기준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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