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북한이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를 마무리하며 한국을 ‘적국’으로 규정, 남북 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임을 재차 강조했다. 북한은 한국과 완벽한 절연을 선언하며 어떤 식으로든 관계 개선의 여지가 없음을 못 박았다. 이와 달리 미국을 향해서는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국 역시 북한과의 대화를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인 가운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부의 운신의 폭은 좁아진 모습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진행된 사업총화 보고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메시지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을 ‘적국’으로 규정하며 "공생할 수 있는 이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으로 다루어나가려는 우리의 결심과 의지는 강고하며 실천적”이라고 했다.
북한은 한국이 “진정한 화해와 단합을 바라지 않았다”며 “우리 체제 붕괴를 기도해 왔다”고 비난했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에 대해서도 “서투른 기만극이고 졸작”이라고 평했다. 김 위원장은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며 “현 상태를 영구화하고 어떤 경우에도 오도된 과거를 되살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을 향해선 강한 어조에 비난을 쏟은 데 반해 미국에는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태생적인 적대적 시각과 강권으로 체질화된 불량배적 성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도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조미 관계의 전망성은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핵보유국’의 지위 인정을 전제로 대화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 李 대통령 “지속적 노력 계속”
북한의 이러한 이중 메시지는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유엔(UN)의 대북제재 해제를 비롯해 자신들의 체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주체가 미국임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인 셈이다.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도 ‘외교 성과’에 대한 목마름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점은 북한에겐 기회가 되고 있다.
일각에선 오는 3월 말 4월 초로 전망되는 미중 정상회담 계기로 북미 대화가 추진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미국도 북한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비쳤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카리브해 세인트키츠네비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쿠바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고 언젠가 북한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대한 직접적 대답은 아니지만, 북한이 대화의 문을 열어둔 상황에서 나온 대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에 문을 닫은 채 미국과 직접 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우리 정부의 외교적 공간은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며 ‘선미후남(先美後南)’ 전략을 취했던 이 대통령의 구상이 북한의 노골적 배제에 흔들리게 됐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정부는 무너진 신뢰 회복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우리 옛말에 ‘한술 밥에 배부르랴’ 이런 얘기가 있다”며 “조금씩 공감을 만들어 가면 결국 이 한반도에도 구조적인 평화와 안정이 도래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 탓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사람 관계나 국가 관계나 다를 바가 없다”며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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