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최주연 기자]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대통령과의 소통 채널, 국민성장펀드 집행의 중심축이라는 위치, 구조조정에서 첨단산업 투자로 이동하는 정책금융의 축 변화가 맞물리며 정권 초기 금융 정책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170조원이 몰린 대규모 정책금융 사업의 향방에 산업은행의 역할이 적지 않다는 평가도 금융권에서 나온다.
19일 정재계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및 산하 기관 업무 보고 직후 박 회장과 별도로 차담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권 안팎의 시선이 집중됐다. 산업은행은 ‘회장 개인 일정’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설명은 내놓지 않았다.
박 회장은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하는 금융권 인사로 분류된다. 여권에서는 ‘금융·공공기관장 가운데 대통령과 가장 자주 소통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박 회장은 중앙대 법대 82학번으로, 이 대통령과 사법시험 준비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시를 접고 산업은행에 입행했지만 관계는 지속됐다는 게 정치권 설명이다.
◇170조원 수요 몰린 국민성장펀드…산은의 무게
박 회장의 존재감이 커지는 배경에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가 있다. 산업은행은 국민성장펀드 사무국으로서 개별프로젝트 접수 및 예비검토, 금융지원과 함께 자금집행 및 이후의 사후관리 실무 등 사실상 총괄 역할을 하게 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산은에 접수된 투자 신청 규모는 170조원, 130여 건에 달한다. 당초 목표를 웃도는 수요가 몰리면서 추가 확대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민성장펀드는 공공 75조원, 민간 75조원으로 조성되는 구조다. 특히 5대 금융지주가 각각 10조원씩 총 50조원을 참여하기로 하면서 민간 자금 유입의 핵심 축을 맡았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민성장펀드 사무국 현판식 및 업무협약식’에서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단군 이래 최대 펀드로 평가받는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자금의 물꼬를 바꾸고 첨단산업의 대변혁을 일으켜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원 요청 사업에는 △신안우이 해상풍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집단에너지 사업 △함정 유지·보수·정비(MRO)용 공유형 도크 △인공지능(AI) 기반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 △영농형 태양광 RE100 산업단지 조성 등 전략 산업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에너지·방산·반도체·바이오 등 미래 산업 전반에서 자금 수요가 몰린 셈이다.
접수 규모가 당초 계획을 20조원가량 초과한 데 대해 첨단 산업 분야의 자금 수요가 상당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지원 확대 필요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앞서 국민성장펀드 목표 규모를 100조원에서 150조원으로 상향한 바 있다.
이 경우 정책금융의 설계와 집행을 담당하는 산업은행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투자 대상 선정과 자금 배분 구조, 민간 금융 유인 방식에 따라 산업계 파급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에서 첨단산업으로…정책금융 축 이동
국민성장펀드는 단순 재정 보조가 아니라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는 ‘마중물’ 성격을 띤다. 신안우이 해상풍력 사업의 경우 국민성장펀드가 7500억원을 투입하고 장기 거치 조건을 제시하자 5대 금융지주도 여러 금융기관이 위험을 나눠 자금을 대는 방식의 신디케이션론(공동 대출) 참여를 약속했다. 금리는 기존 대비 약 1.5%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책금융이 초기 위험을 일부 흡수해 민간 자금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다.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향후 반도체·AI·수소·로봇 등 전략 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 회장은 1954년 산업은행 설립 이후 첫 내부 출신 회장으로 1990년 산업은행에 입행해 구조조정·법무·준법감시 업무를 두루 거쳤다. 기아그룹·대우중공업·대우자동차 구조조정 TF에 참여한 실무형 인사로 평가받아왔다. 과거 산업은행이 위기 기업 정상화의 상징이었다면, 최근에는 미래 산업 투자 플랫폼으로 역할이 재정립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정부 산업 전략을 금융으로 구현하는 기관”이라며 “정책금융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조율 기능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력 지형 속 정책금융의 향방
정치권에서는 현 여권 인맥 축으로 거론되는 ‘전북·중앙대·법조’ 키워드와 박 회장의 이력이 겹친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다만 산업은행은 법과 절차에 따라 운영되는 국책은행인 만큼, 개인적 친분을 정책과 직접 연결 짓는 해석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170조원이 몰린 국민성장펀드와 첨단산업 투자 확대 기조 속에서 산업은행의 결정은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박 회장은 단순한 국책은행 수장을 넘어, 정권의 산업 전략과 금융 정책을 연결하는 접점에 서 있다”면서 “국민성장펀드 증액 여부와 대규모 프로젝트 선정 과정에서 그의 판단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지 관심”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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