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피플] '중앙동의 적막' SK해운 박상익···"해운은 국가 전략산업"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부산 중앙동은 한때 해운사 간판이 즐비했던 '해운인의 성지'였다. 바다를 오가는 선박의 기적이 곧 대한민국 경제의 박동이던 시절, 이 거리는 해운인들의 일터이자 삶의 무대였다. 그러나 화주를 따라 본사가 서울로 떠난 뒤, 중앙동에는 지사만 남으며 적막이 내려앉았다.

얼추 6년 전 본지 기자는 SK해운연합노조 박상익 본부장과 이곳에서 '해운인(선원)의 거리' 조성에 대해 처음 대화를 나눴다. 그는 "해운산업의 성장과 달리 선원들의 땀과 희생을 기억하는 상징은 부족하다"며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부산은 북항에서 신항까지 항만을 키우며 국내 물동량의 70%를 처리하는 세계 4위권 환적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경제를 떠받쳐온 사람들의 자긍심을 담아낼 기반은 여전히 미완이다. 영화의 거리, 문화의 거리는 많지만 선원의 삶을 기리는 상징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박 본부장의 문제의식은 해운 대기업 본사 부산 이전 논의로 확장됐다. SK해운을 비롯한 해운 4개사 노조위원장들이 뜻을 모았고, 정치권도 움직였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는 HMM 등 대형해운사 본사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 직후 지난해 말 부산 개청식이 열리며 기대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 12월 8일 본지 프라임경제가 주최한 '해운 포럼'에서는 부산시·노사·학계가 함께한 '미래비전 공동선포식'을 통해 부산의 글로벌 해운 허브 도약 의지도 공식화됐다.

박상익 본부장은 전국해운노조협의회 운영관리본부장을 겸직하며 외항선 승선 경험(5년)을 지닌 실무형 인물이다. 해양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는 등 현장과 학문을 아우른다. '선원의 거리'에서 출발한 그의 문제의식은 이제 부산을 넘어, 한국 해운산업과 선원 일자리의 미래를 다시 묻고 있다.

SK해운 본사 부산 이전…"상징성은 크지만 인프라가 관건"

SK해운은 에너지 자원 수송을 중심으로 한 물류기업이다. 국내 정유 물류 비중도 30~40% 내외로 추정된다. 박 본부장은 본사 부산 이전을 두고 "상징성은 크지만 서울에 집중된 물류 네트워크와 화주 기반이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영업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으로 내려온 인력은 30명 내외다. 향후 확대 여부는 부산이 해운기업이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해운기업만 내려온다고 화주까지 따라오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며 "기업이 옮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국적선사도 모이고 외국 기업도 부산을 거점으로 삼게 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선원 확대…"비용 논리가 안전과 미래를 갉아먹는다"

박 본부장이 가장 강하게 경고한 대목은 외국인 선원 확대였다. 그는 "선원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교육과 경험을 통해 숙련되는 전문직"이라고 말했다.

저임금 외국인 고용이 늘면 검증되지 않은 인력이 투입돼 안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비용 절감 논리가 현장을 지배하면 산업의 지속가능성도 흔들린다는 지적이다.

그는 "고급 사관은 한국인이 맡고 하부를 외국인으로 채우는 구조가 지속되면 다음 세대를 키우지 못한다"며 "결국 해상뿐 아니라 육상 인력까지 잠식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재 부원은 외국인이 80~90% 수준으로 역전됐고, 해기사도 60%에 육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국인 승선 확대는 제도의 폐해…"연대와 소통 혁신이 과제"

외국인 선원 확대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제도 변화가 만든 결과라는 진단이다. 외국인에 대한 노사정 합의와 승무 정원 구조조정 이후, 비용 격차를 이유로 한국인 부원 고용이 급격히 줄었고 현장 일자리도 수백 명 규모로 축소됐다.

박 본부장은 "이대로 가면 사관 영역까지 초급부터 외국인 대체가 확산될 수 있다"며 "단기 비용이 아닌 해운 인력 생태계 전반을 놓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조가 풀어야 할 과제로 '연대'와 '소통 시스템 혁신'을 제시했다. 선원 노동은 현장이 바다 위로 분산돼 위기감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 이어 "환경이 바뀐 만큼 과거 방식의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노조 내부 전문성을 강화와 변화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선 중심 교육 탈바꿈…"AI·자율운항 시대 곧 도래"


내국인 선원 확대 전략의 핵심은 '양성'이 아니라 '고용'에 있다는 지적이다. 박 본부장은 "해사고·해양대에서 인력을 배출해도 실제 고용이 이어지지 않으면 인력 기반은 결국 소멸한다"고 했다.

현행 교육만으로는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승선만을 목표로 하면 자율운항·피지컬 AI 시대에 교육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며 직무 전환을 포함한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기사 양성기관 역시 AI·자율운항 기술 확산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본부장은 "기술은 이미 와 있고, 적용 시점을 좌우하는 건 IMO 같은 국제 규정"이라며 "20년 내 자율운항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해기사의 역할도 배 위가 아니라 육상에서 원격으로 관제·관리하는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선원의 미래를 지금부터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드라마, '뱃놈' 비하···"전문성·지속성·고임금 매력적인 직업"

선원 직업의 자긍심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사회적 인식이다. '배 타면 뱃놈' 같은 오래된 프레임과 일부 사건의 과장된 재생산이 젊은 세대의 직업적 자부심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박 본부장은 "이런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선원의 위상도 달라지기 어렵다"며 "영화·드라마 같은 대중문화가 직업 이미지를 바꾸는 가장 강한 힘"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선원이 여전히 경쟁력 있는 전문직이라고 강조했다. 선박 운항은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영역이며 대체인력이 부족해 직업적 지속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임금과 승선 이후 육상 진출 등 경력 확장성도 장점으로 꼽았다. 

박 본부장은 "통신 환경(스타링크) 개선으로 선상 고립감도 줄고 있다"며 "선원을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전문직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모펀드 체제…"장기 성장보다, 쪼개기 매각 우려"

해운업계는 사모펀드 경영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 본부장은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회수와 매각을 전제로 움직이는 구조"라며 "산업 전문성이나 국가 물류 전략과는 무관하게 단기 수익만 추구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운은 단순한 투자 대상이 아니라 국가 전략자산"이라며 "장기적으로 키우기보다 돈을 벌고 빠지는 방식이 반복되면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통매각이 어려울 경우 사업을 쪼개 매각하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와 고용 안정이 훼손될 가능성도 경계했다. 그는 "단기 수익 논리가 해운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운은 국가 전략산업…"에너지 선단이 북극항로의 출발점"


박 본부장은 해운을 단순한 기업 경쟁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극항로 시대 초기에는 컨테이너보다 에너지 자원 선단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며 "에너지 중심 선사를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개별 기업이나 노사 협상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해운은 물류이자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이 동시에 걸린 분야"라며 "정부가 투자와 정책으로 일정 수준 개입해야 할 영역"이라고 했다.

글로벌 해운기업과 비교하면 국내 선사의 규모는 여전히 작은 편이고, 경영 구조가 단기 수익 논리에 흔들릴 경우 고용 안정성과 산업 기반이 함께 위협받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깔려 있다. 그는 "선원을 포함한 인력 기반과 산업 생태계를 함께 지켜내는 방향으로 논의가 확장돼야 한다"며 "국가가 일정 수준의 책임과 역할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 중앙동에서 시작된 '선원의 거리'라는 작은 화두는 이제 한국 해운산업의 미래와 선원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 해운사 간판이 빼곡했던 거리의 적막은, 바다 위 노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지켜낼 것인가라는 과제를 남겼다.



SK해운연합노조 박상익 본부장은 

<학력>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선박운항시스템공학과(학사)
-국립한국해양대학교대학원 해양경찰학과(석사)

<경력>
-외항 냉동운반선·액체화물운반선 승선(5년)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한나라호 승선(겸임교수)
-현 국립목포해양대학교 겸임교수 
-전국해운노조협의회 운영관리본부장 등





Copyright ⓒ 프라임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프라임피플] '중앙동의 적막' SK해운 박상익···"해운은 국가 전략산업"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