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조선 단종의 애달픈 유배 시절을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극장가를 압도적인 기세로 장악했다. 어린 왕의 안타까운 생애를 다룬 이 영화의 여운은 관객들을 스크린 너머 실존 인물의 흔적으로 이끌었고, 이는 곧 온라인 지도 플랫폼 위에서 '디지털 성지순례'라는 독특한 사회 현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주말 사흘 동안에만 7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단숨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누적 관객 100만 명 돌파까지 걸린 시간은 단 닷새로, 과거 사극 열풍을 주도했던 천만 영화 ‘왕의 남자’와 비견될 만큼 가파른 상승세다. 이번 흥행은 전작 ‘리바운드’의 부진으로 눈물을 훔쳐야 했던 장항준 감독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준다. 개봉 5일 만에 전작의 최종 스코어를 가볍게 추월하며 연출력과 대중성을 동시에 입증하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스크린 밖의 풍경은 더욱 흥미롭다. 영화를 관람한 이들이 네이버와 카카오 등 지도 앱을 통해 실존 인물의 묘역을 찾아가 리뷰를 남기는 이른바 ‘지도 플랫폼 성지순례’가 본격화됐다. 단종의 묘인 영월 장릉 리뷰 페이지에는 어린 왕을 향한 위로와 추모의 글이 줄을 잇는 반면, 단종을 몰아낸 세조의 광릉이나 책사 한명회의 묘역 리뷰에는 날 선 비판과 풍자가 쏟아지고 있다.
“한명회 선생, 마음은 편하신가요” 혹은 “수양대군, 너무하십니다”와 같은 댓글들은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형성된 역사적 공감대를 디지털 공간에서 재해석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방식의 사극 소비 문화를 보여준다.

이처럼 세조를 향해 차오른 대중의 분노는 올해 개봉을 앞둔 또 다른 화제작 ‘몽유도원도’로 이어질 전망이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이상향을 그린 그림을 중심으로 형제간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이 작품에서, 배우 김남길이 다시 한번 욕망에 눈먼 수양대군으로 분한다. 김남길은 동생 안평의 욕망을 읽어내려 하며 점차 잔혹하게 변해가는 수양의 내면을 이를 갈고 연기했다는 평이다. 이에 맞서는 안평대군 역은 박보검이 맡아 예술을 사랑하는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현실화한다. 형 수양에 대항하는 곧고 단단한 사상을 통해 박지훈이 남긴 단종의 여운을 또 다른 결로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이를 소비하는 대중의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스크린 속 갈등이 지도 앱의 리뷰창을 거쳐 다음 작품의 기대감으로 이어지는 2026년, 안방과 극장을 가리지 않는 ‘세조 빌런’ 연대기가 올 한 해 사극 시장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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