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비하인드] 공간으로 완성한 감정… ‘폭풍의 언덕’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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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폭풍의 언덕’이 프로덕션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
영화 ‘폭풍의 언덕’이 프로덕션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폭풍의 언덕’은 원작의 정서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제작진은 고전 멜로의 비극적 사랑을 화려한 볼거리로 치환하기보다 인물과 공간이 서로를 잠식하는 과정을 통해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을 택했다.

‘폭풍의 언덕’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의 캐시(마고 로비 분)와 히스클리프(제이콥 엘로디 분) 두 사람의 폭풍처럼 강렬하고 파괴적인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제작진은 원작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요크셔’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는데 공을 들였다.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공간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에 실제 요크셔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구현된 안개 낀 황야와 거친 자연의 질감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의 운명을 압박하는 환경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런던 세트장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바위가 벽을 뚫고 들어온 듯한 구조, 습기가 느껴질 만큼 집요하게 설계된 질감은 저택 자체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만든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황야가 집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인상은 캐릭터들이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굴레를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에머랄드 펜넬 감독은 캐시가 ‘폭풍의 언덕’을 떠나 ‘드러스크로스’ 저택을 처음 마주하는 장면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설정했다. 이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흑백 세계에서 컬러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대비다. 이를 위해 드러스크로스 저택은 공간마다 서로 다른 색감과 소재를 적용해 화려함을 극대화했고 각 방은 거주 인물의 성격과 서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됐다.

그중에서도 캐시의 침실은 이 영화의 미술적 실험이 가장 집약된 공간이다. 마고 로비의 실제 피부 스캔본을 라텍스에 인쇄해 벽면을 덮는 방식은 캐릭터의 내면을 물리적 공간으로 치환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핏줄과 점까지 구현된 벽면의 질감, 머리카락 색과 땋은 머리 모양을 응용한 장식 요소들은 방 전체를 캐시라는 인물의 연장선으로 만든다.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보이게 만드는 연출이 ‘폭풍의 언덕’의 핵심이다. 오는 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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