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이재명 정부가 대한상공회의소의 ‘고액 자산가 해외 유출’ 자료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감사와 문책까지 예고하자 정치권 공방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를 두고 “비판을 감사로, 문제 제기를 처벌로 대응하는 경제단체 길들이기”라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은 9일 논평에서 “정책적 논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을 행정 권한으로 맞서는 모습은 비판을 통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대통령의 공개 발언 직후 감사와 제재가 거론된 것은 정책 비판을 위축시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상의는 법률에 따라 설립된 독립 경제단체”라며 “주무 부처 장관이 직접 처벌을 언급하는 것은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정책 비판을 ‘가짜뉴스’로 규정한 뒤 행정 조치까지 예고한 점을 문제 삼으며, 사실관계 검증과 공개 토론 대신 권한을 앞세운 대응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상속세 논쟁이 정책을 넘어 정치적 충돌로 번지는 양상이다.
논란은 대한상의가 지난 4일 배포한 ‘상속세수 전망 분석 및 납부 방식 다양화 효과 연구’ 보도자료에서 시작됐다. 대한상의는 이 자료에서 한국의 상속세 부담 때문에 고액 자산가 유출 규모가 세계 4위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영국 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파트너스’ 통계를 인용해 한국의 고액 자산가 순유출 규모가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1년 새 두 배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통계의 신뢰성과 해석을 둘러싼 비판이 잇따랐다. 헨리앤파트너스 조사 방식이 불투명한 데다 원문에서도 상속세가 자산가 유출의 직접 원인이라는 인과관계는 명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어 대한상의가 통계를 정책 주장에 맞게 해석했다는 비판이 확산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7일 X(옛 트위터)에 “사익 도모와 정부 정책 공격을 위해 가짜 뉴스를 생산해 유포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며 대한상의 자료를 공개 비판했다. 이어 “법률에 의한 공식 단체가 이런 짓을 벌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고의적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페이스북을 통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김 장관은 “공신력 없고 사실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은 정보를 유통해 국민과 시장, 정부 정책 전반에 혼선을 초래했다”며 즉각 감사에 착수하고 결과에 따라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또 검증되지 않은 정보 유통 구조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행정적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상의는 7일 사과문을 내고 “외부 통계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해 혼란을 초래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도 “책임 있는 기관인 만큼 면밀히 데이터를 챙겼어야 했다”며 재발 방지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도 대한상의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8일 최근 3년간 해외이주 신고자를 전수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며, 연평균 해외이주자는 2,904명이고 이 가운데 자산 10억원 이상 보유자는 연평균 139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대한상의가 인용한 ‘고액자산가 2,400명 해외 유출’ 주장과 큰 차이를 보이는 수치다. 국세청은 또 최근 3년간 해외이주자 중 상속세가 없는 국가로 이동한 비율은 전체의 39%에 그쳤고, 자산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는 오히려 25%로 더 낮았다며 “고액 자산가들이 단순히 상속세 부담만으로 해외이주를 결정하는 경향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상속세를 둘러싼 정책 논쟁이 ‘가짜뉴스’ 규정과 행정 대응 문제로 확대되면서, 경제단체의 정책 제언 범위와 정부의 대응 수위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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