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빈의 건강노트] 직장인 ‘번아웃 증후군’ 확산…버티기보다 회복 구조 필요

마이데일리
지속적인 업무 부담 속에서 번아웃을 겪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경기도 판교의 한 IT기업에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임모 씨는 퇴근 후에도 업무 메신저 알림을 끄지 못한다. 밤늦게 울리는 메시지에 답하지 않으면 다음 날 업무에 불이익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 때문이다.

주말에도 노트북을 완전히 덮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지만, 월요일이 되면 피로는 그대로다. 최근에는 예전처럼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 어렵고, 사소한 업무에도 짜증과 냉소가 먼저 나온다. A씨는 “단순히 힘든 수준을 넘어 감정이 사라진 느낌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최근 직장인 사이에서 흔히 들리는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피로나 의욕 저하가 아니라 ‘번아웃 증후군’의 전형적인 양상일 수 있다.

번아웃 증후군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나타나는 심리적·정서적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다. 극심한 피로감과 정서적 고갈, 업무에 대한 냉소, 성취감 저하 등이 동반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판(ICD-11)에서 번아웃을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 직무 스트레스’에 기인한 증후군으로 설명하면서도, 개인의 성향보다는 스트레스 관리에 실패한 업무 환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규만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번아웃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책임과 높은 요구 수준, 통제감 부족, 회복 자원의 결핍이 누적된 직무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며, “역할 수행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는데도 회복이 어려운 구조가 지속될 때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직장에서는 과도한 업무량과 장시간 노동,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 업무에 대한 낮은 통제감 등이 번아웃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업무 강도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질수록 심리적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된다. 지속적인 피로와 업무에 대한 냉소, 성취감 저하가 일정 기간 이어진다면 단순한 컨디션 문제로 넘기지 말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응의 핵심은 ‘더 버티기’가 이나라 ‘회복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데 있다. 업무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휴식 시간을 명확히 구분하는 등 회복을 전제로 한 업무 조절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교수는 “번아웃 상태에서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인내나 긍정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스스로의 소진 신호를 인식하고 회복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는 태도도 중요하다. 상급자나 동료와의 업무 조정 논의, 조직 내 지원 제도 활용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현실적인 대응이다.

한 교수는 “번아웃은 개인이 혼자 버텨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업무 수행에 지장이 생기거나 수면 장애가 지속되고, 불안·우울 증상이 동반되는 등 소진 상태가 이어진다면 이는 개인의 일시적인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 직무 환경에서 비롯된 번아웃 신호로 볼 수 있다”며 “더 악화되기 전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통한 평가와 개입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호빈의 건강노트] 직장인 ‘번아웃 증후군’ 확산…버티기보다 회복 구조 필요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