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리조선산업(상)] "깡깡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부산의 해안선을 따라 울려 퍼지던 망치 소리. 단순한 금속음이었던 이 소리는 한때 대한민국 수리조선산업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산업의 울림이었다. 선박을 고치고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 수리조선은 화려한 신조선 건조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한국 조선산업의 성장과 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해온 핵심 축이었다. 대한민국 수리조선산업의 궤적은 곧 부산, 그리고 영도의 산업사와 맞닿아 있다.

조선의 시작, 수리의 씨앗이 뿌려지다

대한민국 수리조선산업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부산을 전진기지로 삼아 근대적 조선시설을 구축했고, 그 중심에는 영도 대평동 일대에 조성된 '다나카조선철공소'가 있었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로, 발동기가 장착된 선박이 제작되며 한국 조선기술의 출발점이 됐다.

1916년 매축공사를 통해 해안이 확장되자 조선소와 선박 부품업체들이 잇따라 들어섰고, 선박 건조와 함께 유지·보수, 수리를 담당하는 작업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당시에는 '수리조선'이라는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았지만, 바다와 선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고치는 기술이 필요했다.

국영조선과 산업기반의 형성

해방 이후 부산의 주요 조선시설은 국내 기업들에 불하됐고, 1950년 '조선중공업'은 국영기업 '대한조선공사'로 재편된다. 이는 현재 'HJ중공업(본사 영도)'의 전신이다.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라는 격변기 속에서도 선박 수리와 정비는 항만 도시 부산의 필수 산업으로 기능했다.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거치며 조선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됐고, 1974년 항만 관련 법령 개정으로 어선과 통선의 출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수리조선 수요는 급격히 늘어났다. 이 시기 수리조선은 신조선 건조를 뒷받침하는 보조 영역을 넘어, 독자적인 시장과 기술을 축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깡깡'의 전성시대, 세계 1위에 오르다

1970~80년대 원양어업 붐은 대한민국 수리조선산업의 황금기를 열었다. 대형 원양어선들이 부산으로 몰려들며 영도 대평동 일대는 작업의 열기로 가득 찼다. 선박을 육지로 끌어올려 녹슨 철판을 두드리고, 조개와 부식물을 제거하는 공정이 쉼 없이 이어졌다. 
이때 반복되던 망치 소리는 산복도로까지 퍼졌고, 사람들은 이곳을 자연스럽게 '깡깡이마을'이라 불렀다.

당시에는 "대평동에서는 못 고치는 배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숙련공들의 기술력과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 빠른 작업 속도를 바탕으로 한국 수리조선산업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깡깡이마을은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라, 세계 해운산업을 지탱하던 현장이었다.

"배 한 척을 고치는 데는 설명서보다 손의 기억이 더 중요합니다. 녹슨 철판을 보면 어디가 약한지 감이 와요. 이 일은 기계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결국 마지막은 사람 손이죠.”
— 영도 남항동 수리조선 기술자 A씨(경력 30년)

변화의 파도, 산업은 흔들리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산업 환경은 급변했다. 선박의 대형화와 자동화,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수리조선업체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일부는 신조선 건조로 전환했지만, 대규모 자본과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소규모 업체들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갔다.

여기에 세계 경제 위기까지 겹치며 수리조선업은 빠르게 위축됐고, 깡깡이마을을 포함한 부산의 수리조선 현장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인구 감소와 산업 침체 속에서 대평동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항동에 편입되며, 하나의 산업 중심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한때는 배 한 척만 들어와도 골목이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밤낮없이 작업이 이어졌죠. 자본과 설비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작은 수리조선소들은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그래도 이곳이 부산 조선의 심장이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습니다.”(전 영도 대평동 수리조선업체 운영자)

◆다시 찾은 기회, 미래를 고치는 산업으로

2000년대 이후 세계 해운시장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선박 수 증가와 노후화, 국제 환경 규제 강화로 선박 수리와 정기검사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된 것이다. 부산 감천항과 남항 일대의 중소형 수리조선업체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 왔다.

2020년대 들어 수리조선 산업은 다시 변곡점에 서 있다. 노후 선박 증가와 친환경 규제 강화로 수리·개조 수요가 확대되며 '고치는 기술'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pherical Insights & Consulting에 따르면 글로벌 선박 수리 및 유지보수 시장은 2033년까지 약 554억 달러(약 8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광역시(시장 박형준)와 부산테크노파크(원장 김형균)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스마트수리조선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자동화·디지털 기반의 산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 장비 공동 활용과 공정 개선, 디지털 전환,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해 영세한 중소 수리조선소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핵심이다.

◆깡깡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요즘은 3D 스캐닝으로 배를 먼저 읽고 들어갑니다. 예전엔 귀와 손으로 하던 일을 이제는 데이터로 시작하죠. 그래도 마지막 판단은 사람이 한다.”(스마트수리조선지원센터 장비 활용 업체 기술자 C씨)

수리조선은 단순한 정비 산업을 넘어, 바다와 함께 축적된 기술의 역사다. 영도에서 시작된 수리의 현장은 한때 세계 해운산업의 흐름을 떠받쳤고, 우리나라 조선산업 성장의 이면을 묵묵히 지탱해 왔다.

이제 그 현장은 자동화 장비와 데이터 기반 기술로 재편되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해 4월 총사업비 77억6000만원을 투입해 '스마트수리조선지원센터'를 개소하며 디지털·친환경 기술을 현장에 접목하고 있다. 산업유산과 미래 산업이 맞닿은 부산의 해안에서, 수리조선은 형태를 바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수리조선산업의 시간은 오늘도 바다 가까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부산, 수리조선산업 (하)]에서는 글로벌 수리조선 시장의 규모와 경쟁 구도를 살펴보고, 부산 수리조선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와 정책 과제를 짚는다. 아울러 스마트수리조선지원센터가 도입한 첨단 기자재와 현장 적용 사례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조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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