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영양군=박설민 기자 과거 우리 하천, 그러니까 아직 강에 사람의 손길이 깊이 닿기 전엔 물살마다 생명이 가득했다. 수많은 민물고기, 저서생물, 수생식물이 어우러져 살았던 낙원이었다. 하천변의 수초 주변에는 민물조개와 새우 등 생물이 가득했다. 발목 정도만 잠기는 얕은 개울에서도 물고기들이 헤엄치곤 했다.
애석하게도 다 과거의 이야기다. 하천과 개울, 강은 메워졌고 그 위로 도로와 다리가 들어섰다. 하수와 공업 처리수의 유입으로 수많은 생물들이 사라졌다. 하천의 풍요는 과거의 그림자가 됐다. 이제 생명이 살아 숨 쉬던 우리의 강은 과거 조사 기록과 주민들 기억에만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첨단기술사회와 생태계가 조화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밤낮 진행한다. 그 중심에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있다. ‘시사위크’ 취재팀은 국립생태원 연구팀의 멸종위기종인 ‘꼬치동자개’ 복원 연구 현장을 찾았다.
◇ ‘꼬치동자개’ 복원부터 방류까지… 멸종위기종복원센터의 노력
지난 7일 오전 9시, 경상북도 영양군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를 방문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환경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생태원 소속으로 2018년 10월 개원했다. 국내 멸종위기종 복원 및 보전계획 수립, 증식‧복원 기술 개발을 목표로 운영된다.
기자가 방문한 곳은 ‘어류·양서파충류복원팀’이었다. 이곳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담수어류와 양서류, 파충류의 복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날 연구원들은 각종 장비와 물품들을 차에 싣는 등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멸종위기종인 ‘꼬치동자개’ 자연 방사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꼬치동자개(Pseudobagrus brevicorpus)는 메기목 동자개과 동자개속에 속하는 민물고기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이다. 낙동강 지류 일부 구간에 주로 서식한다. 성체는 보통 6~9cm 정도 길이로 납작한 머리, 짧고 둥근 주둥이, 네 쌍의 수염이 특징이다. 맑은 중상류 하천의 바닥이나 자갈, 큰 돌에서 서식한다. 야행성이며 수생곤충 등을 잡아먹는다.
시골의 어르신들이 ‘빠가사리’라 불렀던 동자개과 물고기 중 하나가 꼬치동자개다. 꼬치동자개란 이름도 ‘새끼 빠가사리’라는 뜻이다. 위협을 느끼면 가슴지느러미 관절을 움직여 ‘빠각빠각’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어류·양서파충류복원팀의 멸종위기 담수어류 사육장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수조들이 가득했다. 이곳에서는 꼬치동자개를 비롯, 여러 국내 멸종위기 담수어류의 복원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조 속 꼬치동자개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메기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고 귀여웠다. 또한 갈색과 회색, 흰색이 섞인 무늬가 인상적이었다.
이때 강동원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이 큰 고리처럼 보이는 전자기기를 가져왔다. 국립생태원 연구팀은 사전에 이미 각 개체별로 무선개체식별장치 이식을 완료한 상태였다. 강동원 선임연구원은 꼬치동자개 치어 한 마리 한 마리를 소중하게 잡아 칩을 인식시켰다.
각각의 꼬치동자개에 이식된 칩은 ‘PIT tag’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하이패스’ 방식과 동일한 ‘RFID’ 방법을 사용한다. 최근 반려동물에 삽입하는 식별장치와 동일한 장치라 볼 수 있다. 인식된 칩은 꼬치동자개의 개체별 식별번호와 위치정보를 수신기에 저장한다. 이를 통해 연구원들은 꼬치동자개가 방류된 이후에도 잘 적응하는지를 연구할 수 있다.
강동원 선임연구원은 “멸종위기종인 꼬치동자개 자연 방사 연구의 핵심은 이들이 생태 환경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며 “개체인식칩은 이 꼬치동자개들의 이동 습성, 핵심 서식지 범위, 미소서식지 환경 특성 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 금호강으로 향하는 ‘200마리 꼬치동자개’
국립생태원 연구팀은 꼬치동자개 준성체를 차로 운반했다. 운반 수족관에는 기포발생기가 설치돼 있었다. 물에 공기를 공급해 장시간 이동에도 치어들이 생존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날 방류되는 꼬치동자개 치어 증식개체는 성체 20개체, 준성체 180개체로 총 200마리였다. 성체와 준성체는 각각 분리해 이동했다. 준성체(5~7cm)가 덩치 큰 성체(10cm)들에게 피해를 받을 수 있어서다.
국립생태원 연구팀을 돕기 위해 한국가스공사 ESG팀도 함께 동행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국립생태원과 2022년 ‘멸종위기종 생물다양성 보전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3년간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보호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센터에서 약 2시간을 이동, 자연 방사 장소인 ‘금호강’에 도착했다. 수심이 깊지는 않았지만 물이 매우 깨끗했다. 물밖에서도 바닥의 자갈과 식물들이 전부 보일 정도였다. 근처에는 왜가리 등 물새들이 날아다니며 물고기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주변에 하천공사 등 큰 위협요인이 없어 꼬치동자개가 살아가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하천 옆 도로 표지판에는 ‘이곳은 꼬치동자개 보호지역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있었다. 표지판에는 꼬치동자개의 모습 사진과 습성, 보호 이유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일부 낚시꾼, 어민들이 실수로 꼬치동자개를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금호강 방류 지역에 도착하자 연구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커다란 비닐백에 담긴 꼬치동자개를 그 상태로 강물 속에 넣고 약 20분의 시간을 기다렸다. 기존 사육환경 수온보다 방류지의 수온이 더 낮아 꼬치동자개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처음엔 놀란 듯 빠르게 헤엄치던 꼬치동자개들은 시간이 흐르자 천천히 움직였다.
적응을 마치자 연구원들은 금호강에 꼬치동자개들을 방류했다. 물 속으로 헤엄쳐 나간 꼬치동자개들은 재빠르게 돌 틈과 수초 사이로 몸을 숨겼다. 야행성인 꼬치동자개는 낮에는 큰 돌이나 자갈 밑에 은신한다. 센터의 인공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유전자에 각인된 야생의 본능은 놀라웠다.
강동원 선임연구원은 “오늘 방사된 꼬치동자개는 만 3년생 이상의 성체와 1년생의 준성체로 구성됐는데 성체는 비교적 빠른 적응력을, 준성체는 향후 산란을 통한 개체수 증가에 도울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립생태원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꼬치동자개 복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나아가 생물다양성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쉽지 않은 복원의 노력… “대중들에게 꼬치동자개를 알리는 것이 중요”
사실 꼬치동자개는 과거 낙동강 수계 전역에서 서식이 확인된 물고기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개체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 현재는 자연에서 보기가 굉장히 힘들어진 상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선 꼬치동자개를 ‘취약(VU, Vulnerable)’종으로 분류한다. 이는 판다, 백상아리 등 멸종취약종들에 부여되는 등급이다.
한반도의 꼬치동자개가 사라져가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IUCN에 따르면 △생물자원 이용 △어업 및 수생자원 수확 △인간의 침입 및 방해 △여가 활동(낚시) △자연 시스템 및 생태계 변화 △외래종 침입 및 질병 △도시화 및 환경오염이 꼬치동자개 개체수 감소의 원인이다. 사실상 직간접적으로 ‘인간 활동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여러 요인으로 꼬치동자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환경부에서는 1996년 특정 야생동·식물로 처음 지정했다. 이후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종으로도 지정, 꼬치동자개를 보호 중이다. 또한 국가유산청은 꼬치동자개를 2005년 천연기념물 제455호로 지정했다. 이번 멸종위기종복원센터의 자연 방류도 꼬치동자개 복원을 위한 연구 사업의 일환이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센터와 협력기관에서 공동 양식한 꼬치동자개 증식개체들을 자연 방류 중이다. 센터 측에 따르면 △2021년 3지점 각 1,000개체씩 총 3,000개체 △2022년 1지점 1,000개체 △2023년 1지점 500개체 △2024년 1지점 500개체 △2025년 1지점 3회 총 1,400개체가 자연에 방류됐다.
강동원 선임연구원은 “꼬치동자개는 과거 국내 하천에서 피식자와 포식자 중간 단계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생태계 일원이었다”며 “국립생태원에서는 이들의 개체수 회복을 위해 매년 낙동강 지역 주요 지점에 꼬치동자개를 방류한 후 추적 연구를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라졌던 꼬치동자개의 개체수를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하천에서는 이미 ‘배스’, ‘블루길’과 같은 생태계 교란종이 꼬치동자개를 위협한다. 또한 일반인들은 꼬치동자개를 비롯한 멸종위기종과 민물고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보호종임에도 낚시를 하거나 심지어 식자재로 활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꼬치동자개 자연 방사 지역에 공사가 진행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 9월 성주군은 수륜면 사창교 대가천에 교량 공사를 진행했다. 경북 고령군 안림천, 영천시 자호천에서도 하천 공사가 이뤄졌다. 모두 최근 5년 사이 꼬치동자개 1,000개체 이상을 방류한 하천이었다.
강동원 선임연구원은 “꼬치동자개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다보니 방사를 해도 보호가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대중들에게 꼬치동자개를 비롯한 민물고기 보호종, 서식지 위치를 제대로 알리는 것도 복원 사업과 더불어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꼬치동자개를 복원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 하천을 살리는 길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망가진 톱니바퀴의 부분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멸종위기종 복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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