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포르쉐가 브랜드의 또 다른 축인 카이엔을 마침내 전기차로 가져왔다.
새로 공개된 카이엔 일렉트릭과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단순히 카이엔의 전기 버전이 아니라 포르쉐가 앞으로 2030년 이후까지 전기·하이브리드·내연기관 세 가지 파워트레인을 동시에 가져가겠다는 선언을 상징하는 모델이다.
포르쉐가 이 차를 두 번째 순수 전기 SUV라고 강조하면서도 기존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카이엔 판매를 '지속한다'고 못 박은 대목은 매우 포르쉐다운, 동시에 상당히 전략적인 선택이다.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정지상태에서 100㎞/h까지 2.5초, 최고속도 260㎞/h, 런치 컨트롤 기준 최고출력 1156마력(PS)라는 수치를 내세운다. 종이 위 숫자를 놓고만 보면 이건 이미 전통적인 슈퍼카가 아니라 슈퍼 스포츠카의 영역에 SUV를 끌어다 앉힌 셈이다.

흥미로운 건 포르쉐가 이 성능을 단순한 쇼포인트로만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리어 액슬의 전기모터에 오일 냉각 같은 모터스포츠에서 가져온 냉각 솔루션으로 지속 출력과 효율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노멀 모드에서도 857마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굳이 짚는다.
다시 말해 숫자만 크게 찍은 전기 괴물이 아니라 계속 달려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전기 SUV라는 이미지를 심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여기에 최대 600㎾급 회생제동은 포뮬러 E 수준이라는 비교로 강조됐다. 일상주행의 97%를 회생제동만으로 커버할 수 있는 점은 고성능 EV의 고질적인 약점인 브레이크 페이드나 마찰 브레이크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메시지다. 필요할 때는 PCCB(포르쉐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 옵션으로 다시 포르쉐답게 수렴시키는 구조도 포르쉐다운 장치다.

카이엔 일렉트릭의 또 하나의 축은 극단적인 성능과 장거리 실용성을 동시에 가져가려는 시도다. 113㎾h 배터리, WLTP 기준 최대 642㎞(터보 623㎞)는 멀리 간다 수준을 넘어 이 클래스에서 사실상 종합 스펙 최상단을 노린 구성이 됐다.
800V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대 390㎾, 조건에 따라 400㎾까지 지원하는 DC 충전 성능 역시 이런 방향성의 연장선이다. 10→80% 충전에 16분이 걸리지 않고, 10분 충전으로도 300㎞ 이상의 주행가능거리 확보는 고성능 SUV를 주말 서킷용 장난감이 아니라 실제로 장거리 고속도로를 누비는 패밀리 및 그랜드 투어러로 쓰라는 제안이다.
여기에 포르쉐 최초 무선충전 옵션까지 붙인다. 플로어 플레이트 위에 주차만 하면 11㎾로 자동충전되는 시스템은 포르쉐가 고객경험을 어디까지 끌고 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양이다. 전기차를 충전 스트레스가 아닌 충전 편의성으로 인식 전환시키려는 포석이다.

디자인에서는 포르쉐가 꽤 노골적으로 '이건 그냥 전기 파워트레인이 들어간 카이엔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슬림한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와 더 낮아진 보닛, 프레임리스 도어, 강한 캐릭터 라인, 터보나이트 컬러 등은 겉으로 보이는 요소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건 공력 설계다. 카이엔 일렉트릭의 공기저항계수는 0.25Cd. 2톤이 훌쩍 넘는 전기 SUV가 600㎞를 넘기는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PAA(포르쉐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 시스템, 가변 냉각 에어 플랩, 액티브 루프 스포일러, 액티브 에어로 블레이드, 거의 완전히 밀폐된 언더바디, 전용 에어로 휠, 후면 디퓨저까지 공력 패키지가 총동원됐다.
실내는 플로우 디스플레이, 커브드 OLED 계기판, 옵션 조수석 디스플레이, AR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 겉만 보면 요즘 나오는 프리미엄 전기차들이 다 하는 스크린 전쟁 같아 보인다. 하지만 포르쉐가 강조하는 지점은 조금 다르다.

새로운 디지털 인터랙션 콘셉트는 위젯, 테마, 애플리케이션 연동, 스트리밍, 게임 등으로 확장되는 동시에 에어컨·볼륨 같은 핵심 조작부는 아날로그 버튼으로 남겨두고, 역동적인 주행 상황에서도 조작성을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핸드 레스트까지 적용했다. '완전 디지털화' 대신 '드라이빙에 방해되지 않는 디지털화'를 선택했다.
여기에 무드 모드, 표면 발열 시스템, 슬라이딩 파노라믹 루프의 액정 필름 제어, 확장된 앰비언트 라이트 등은 전형적인 럭셔리 EV 문법을 따랐다.
이번 공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포르쉐가 카이엔 일렉트릭을 추가하면서도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모델을 계속 개발하고 판매하겠다고 못 박았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향후 모든 세그먼트에서 순수 전기와 내연기관 파워트레인을 고객이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포르쉐가 전동화 전환 흐름을 적극적으로 타되, 완전한 내연기관 퇴출 전략에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규제 환경은 강해지고 있지만, 고성능·고급차 시장에서 여전히 내연기관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고, 특히 신흥시장과 특정 지역에서는 연료 인프라·주행 패턴·문화적 요소가 내연을 여전히 지지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카이엔 일렉트릭은 그래서 카이엔의 미래가 아니라 카이엔의 선택지를 하나 더 늘린 모델이다. 전동화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를 지우지 않는다. 이는 규제·시장·고객 성향이 뒤섞여 있는 전환기의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매우 현실적인 전략이다.
국내 판매가격은 카이엔 일렉트릭 1억4230만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 1억8960만원부터다. 출시는 2026년 하반기 예정이다.

카이엔 일렉트릭은 포르쉐가 △고성능 EV 기술을 어디까지 끌어올렸는지 △전동화와 효율, 실용성을 어떻게 조합하려 하는지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 세 가지 파워트레인을 어떻게 병행 운용할 것인지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시장에서 어떤 고객에게 어떤 선택지를 주려는 지를 한 번에 보여주는 전략의 집약체에 가깝다.
그동안 포르쉐에게 카이엔은 단순한 SUV가 아니라 브랜드의 비즈니스 모델을 지탱해 온 실질적인 캐시카우였다. 이제 그 카이엔이 전기 파워트레인을 품고 등장했다. 포르쉐가 이 차를 통해 증명하려는 건 아마도 단 하나다. '전동화 시대에도, 포르쉐는 포르쉐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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