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폐경호르몬치료, 유방암에 대한 누명을 드디어 벗나?

맘스커리어
▲ 김태희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산부인과 교수
[맘스커리어 = 김태희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5년 11월, 폐경호르몬치료제에 부착돼 오던 박스 경고문(유방암·심혈관질환·치매 위험)을 삭제하기로 했다. 20년 만에 ‘공포의 시대’가 끝나고, 여성 건강을 과학적 근거로 다시 바라보는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지난 20여 년간 폐경기 여성의 호르몬치료(HRT)는 ‘위험한 치료’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 잡았다. 2003년 미국에서 시행된 대규모 연구(WHI)가 유방암 발생 위험 가능성을 시사한 뒤, 미국 FDA가 박스 경고를 부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폐경호르몬치료는 급격히 감소했다. 꼭 필요한 여성들조차 호르몬치료를 두려워했고, 의사들 역시 환자와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자 처방을 망설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결과는 컸다. 폐경으로 인한 불면, 우울감, 심혈관질환 위험 증가, 골다공증 등 다양한 건강 문제가 늘어났으나 호르몬치료의 이점은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많은 여성이 수면제, 항우울제, 골다공증 치료제, 진통제, 당뇨병 약제, 고지혈증 약 등을 새로 복용했으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폐경호르몬치료를 처방하는 의사와 관련 교육도 급격히 줄었다. 그 사이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버렸다. 폐경 여성 건강관리에서 사실상 ‘잃어버린 20년’이 된 것이다. 처방 경험이 풍부한 의사는 줄었고, 대학에서도 경험 많은 교수나 전문가가 정년퇴임해 일선에 거의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과학은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늦었지만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FDA의 이번 결정이 폐경호르몬치료가 모든 폐경 여성에게 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위험이 사라졌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폐경호르몬=암’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점만은 분명해졌다. 호르몬치료는 적절한 나이·시기·제형을 선택할 경우 많은 여성이 건강한 노년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폐경호르몬치료는 사회적 오해와 낙인 속에서 크게 위축됐다. 이 시기에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필요한 여성에게 호르몬치료를 지속해 온 의료진으로서, 이번 FDA의 결정은 매우 뜻깊게 느껴진다. ‘잘못된 공포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여성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의료현장에서 늘 안타깝게 체감해 온 현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개인 맞춤 상담이다. 누구에게 호르몬치료가 도움이 되는지, 언제 시작하는 것이 안전한지, 어떤 제형이 가장 적절한지 등은 호르몬치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의료진과 결정해야 한다.

20년 전 공포 속에서 급감했던 폐경호르몬치료는 이제 과학적 검토를 거쳐 본래의 자리를 되찾고 있다. 여성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건강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수명 증가로 폐경 여성의 수는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건강을 책임질 의료진이 필요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폐경기 관리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의사도 크게 줄었다. 무려 두 세대의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FDA의 발표는 대한폐경학회를 중심으로 한 후학 양성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폐경호르몬치료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의사 양성이 매우 시급하며, 처방 경험이 부족한 젊은 의사에 대한 교육 또한 절실하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맘스커리어 / 김태희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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