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외국인 비자 제도 그림자…'원청확인서' 사실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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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국 조선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법무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해소한다며 E-7-3(일반 기능인력) 비자를 확대하고, 지자체가 산업 특성에 맞춰 요건을 설계하는 광역형 비자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비자 제도 안에서 '원청확인서'라는 서류가 과도한 관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본지는 원청확인서의 법적 위치와 실제 작동방식, 그 부작용과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원청확인서, 어디까지 공식인가?

원청확인서는 대형 조선소(원청)에서 자사 협력사(하청업체)가 실제 조선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외국인 인력 투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매우 특수한 문서다.

법 조문에 '원청확인서'라는 표현이 직접 적혀 있지는 않지만, 조선업 외국인 비자를 실제로 운영할 때 사용하는 정부 지침에는 포함돼 있다.

산업부-법무부가 함께 만든 광역형 비자 지침에는 '원청확인서와 조선업 전업률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할 것'이라는 내용이 삽입돼 있고, 조선업 협회가 안내하는 예비추천 단계 서류 목록에도 원청확인서는 '필수 제출 서류'로 명시돼 있다.

공문서에 쓰인 용어와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행정상 원청확인서는 공식적으로 요구되는 요건이며 협회가 자체로 만든 사적 서류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지가 통화한 경남도 담당 공무원은 "법무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런 구조를 전제로 한 해명으로 볼수 있다. 문제는 '존재 여부'보다, 이 서류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현 시점 제도의 취지와 그늘

원청확인서의 본래 취지는 분명하다. 원청이 확인함으로써 협력사가 실제 조선소 공정에 참여하는 합법 사업자임을 증명하고, 외국인 기능인력이 무단 이탈이나 불법 파견 없이 현장에 투입되도록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운영 과정에서는 몇 가지 그늘이 드러난다.

◆첫째, 하청업체의 선택권 제한

비자 발급은 협회 예비추천과 법무부 비자 승인, 두 단계를 거치는데 원청확인서를 요구하는 예비추천 단계에서 협력업체는 대형 조선소의 승인에 종속된다.

원청과 형식적인 협력관계가 없으면 출발부터 원청확인서를 받을 수 없으며, 외국인 인력 채용 자체가 막힌다.

특히 일부 현장에서는 원청이 사실상 특정 송입업체(브로커)만 지정해 주는 관행이 형성되면서, 협력업체가 다른 경로로 인력을 데려올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결과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중소 협력업체가 숙련 외국인력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둘째,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 침해 가능성

E-7-3 비자는 1~2년 단위 갱신이 기본인데, 연장 시에도 원청확인서가 필요하다. 즉 '지금도 이 원청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다'는 보증이 없으면 체류 연장이 쉽지 않다.

하청업체가 원청과 계약을 종료하거나 다른 현장으로 이직하는 순간, 노동자는 비자 연장에 어려움을 겪고 불법체류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다.

게다가 취업을 위해 한국 이주 과정에서 이미 높은 송출비용을 부담한 노동자들은 이동의 자유까지 제한되면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셋째, 시장 왜곡과 투명성 부족

원청확인서가 협회 내부 지침과 예비추천 단계에서 당연한 서류처럼 쓰이면서 '누구에게는 잘 나오고 누구에게는 안 나오는' 불투명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발급 기준이 공개돼 있지 않고, 거부되더라도 사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원청·협회 재량이 과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구조는 일부 브로커와 송입업체가 이권을 독점하는 통로로 변질될 소지가 있다는 게 노동·시민단체의 공통된 목소리다.

원청확인서 제도가 조선업 인력 수급과 현장 관리에 일정 부분 필요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수 대기업과 중개업체의 이해에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큼 폐쇄적으로 운영된다면, 제도에 대한 신뢰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비가 필요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법적 근거와 대체 수단 명확히 

원청확인서 요구 근거를 법령·시행규칙·고시 수준에서 분명히 규정하고, 원청이 부당하게 발급을 거부하거나 지연할 경우에는 도급계약서, 전업률 증명 등 다른 서류로 대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둘째, 발급 절차의 투명화

발급 기준과 절차, 발급·거부이력을 일정 수준까지 공시하고, 거부 시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하면 임의적 운용을 줄일 수 있다. 필요한 경우 이의제기·재심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송입 구조의 공정성 강화

송출·도입경로를 공공 플랫폼이나 다수의 등록업체로 분산해 특정 브로커·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부·지자체가 관리하는 공적 인력풀을 통해 업체와 노동자를 매칭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넷째,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 보장

비자 갱신 시 '원청 프로젝트 지속'에만 과도하게 묶지 말고,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사업장 변경 후에도 체류를 유지할 수 있는 요건을 넓힐 필요가 있다. 통합정보시스템으로 이동 이력을 관리하면서도,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현재 조선업 외국인 비자 시스템은 인력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정책 목표와, 원청·협회·브로커 중심으로 굳어진 현실 구조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6월2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고,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성장'의 문을 열어야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하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 한 바 있다. 

앞서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도 "이재명 정부의 3대 국정원칙으로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를 제시하며, 불공정과 특권 해소를 국정운영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국정 기조에 맞추려면 비자 제도의 모든 요건이 법과 공개된 규정에 근거해 누구에게나 예측 가능하게 집행돼야 한다.

원청확인서는 협력업체의 자격을 검증하는 수단일 수 있지만, 동시에 시장과 노동자의 목줄을 쥐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협회와 정부가 함께 투명성과 경쟁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쳐 나간다면, 조선업 숙련인력 도입은 더 많은 중소 협력업체와 외국인 노동자가 혜택을 누리는 공정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력난을 덜겠다는 정책이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지 않도록, 지금이 원청확인서 제도와 조선업 비자 구조 전체를 차분히 재점검할 때로 보여진다.

끝으로 본지 기자는 원청확인서 제도와 조선업 외국인 비자 구조가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추고 자리 잡을 때까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제도의 변화를 끝까지 추적·보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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