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부산 김희수 기자] 늙어서 변한 게 아니었다. 원해서 변한 것이었다.
13일 부산 강서체육관에서 치러진 OK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의 진에어 2025~2026 V-리그 남자부 2라운드 경기, 경기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4세트 듀스 접전에서 번개처럼 날아오른 선수가 있었다. 바로 전광인이었다.
전광인은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의 파이프를 귀신같이 블로킹으로 잡아내며 포효했다. 그렇게 팀을 5세트로 견인한 전광인은 두 개의 서브 득점을 터뜨리며 구도 부산에서의 첫 홈경기 승리(20-25, 25-20, 18-25, 27-25, 15-6)라는 역사를 직접 새긴 장본인이 됐다.
경기 종료 후 전광인이 인터뷰실을 찾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뿌듯한 미소도 숨길 수 없었다. 전광인은 “사실 이전 경기에서 더 빠른 첫 승을 바랐는데,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이번 경기에서 승리를 선물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힘든 경기였는데, 끝까지 응원하고 지켜봐주신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승리 소감을 전했다.
전광인은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또 한 번의 진심을 더 전했다. 그는 “열기가 뜨겁다.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시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선수들을 위해 박수쳐주시고 환호해주신다. 우리만 잘한다면 이곳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의 첫 프로 배구팀이 우리지 않나. 좋은 추억을 많이 선물해드리고 싶다”고 팬들을 향한 진심을 드러냈다.

이후 전광인과 경기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4세트 절체절명의 순간 레오를 상대로 잡아낸 파이프 블로킹에 대해 전광인은 “4세트 막바지에는 오른쪽으로 갈 확률이 적다고 생각해서 배제하고 레오의 파이프와 허수봉의 C를 두고 고민했는데, 결국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블로킹이 파이프밖에 없어서 파이프에 떴다. 운이 좋게 걸렸다. 레오한테 고맙다고 인사했다”며 겸손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전광인은 친정팀이자 이날 명경기의 파트너가 된 현대캐피탈에도 존중을 표했다. 그는 “현대캐피탈은 너무 강하다. 내가 있을 때도 느꼈지만, 나오고 나서도 여전히 그렇다. 너무 잘 아는 상대라서 오히려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현대캐피탈전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러나 전광인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OK저축은행은 그런 현대캐피탈을 두 번이나 꺾을 정도로 강한 팀이 됐다. 전광인은 “하지만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과 많이 달라졌다. 내가 왔다고 달라진 게 아니다. 팀적으로 지난 시즌과는 다른 팀이 됐다. 현대캐피탈이 공격적인 배구를 하는 팀이기 때문에 공격 시도 횟수를 줄이면서 흔들 수 있다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거라고 믿고 경기에 임했다”고 현 소속팀에 대한 강한 신뢰도 표했다.
이날 전광인은 중요한 순간마다 득점을 올린 뒤 신영철 감독과 함께 환호하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두 사람이 지금보다 젊었을 때 의기투합했던 한국전력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전광인은 “옛날 생각 많이 난다(웃음). 옛날에는 점수를 더 많이 내서 하이파이브를 지금보다 더 많이 했다. 요즘은 사실 기회가 많지 않아서,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려고 한다”며 유쾌하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전력과 한국 남자배구의 독보적 에이스였던 전광인도 시간이 흘러 어느덧 리그에서 손에 꼽는 베테랑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그 이름 석 자의 존재감은 크다. 당장 이번 경기에서 또 한 번 자신을 증명했다. 그런 전광인에게 “여전히 변함없이 가슴이 뜨겁고, 아직 보여줄 게 남았다고 느끼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전광인은 한참을 고민했다. “어려운 질문이다”라며 운을 뗀 전광인은 “나이가 들었다는 걸 느끼고는 있다. 점프와 공격력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는 걸 인정한다. 옛날에 내가 했던 스타일과 지금의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고 자신의 변한 모습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전광인의 변화는 세월이 강요한 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속에서 더 강해지기 위해 본인이 선택한 것도 있었다. 전광인은 “하지만 신체능력 외에 다른 변화는 내가 원해서 만든 변화다. 그리고 그 변화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이 정도로 버티는 선수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리고 수많은 변화 속 변치 않은 한 가지도 있었다. 바로 그의 야망과 투쟁심이었다. 전광인은 “그리고 늘 무언가를 갈망하고 욕심내는 마음가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다. 그 마음가짐이 내가 나이가 들더라도 급격히 꺾이지 않도록 만들어줬다. 앞으로도 노쇠화를 늦추겠다는 마음을 넘어서, 갈수록 더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예전과 같은 눈빛과 목소리로 포부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함께 고생한 동료들에게 “동료들이 끝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것에 너무 고맙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며 지극히 전광인다운 감사 인사와 당부를 전했다.
세월 속에 도태되기보다는 변화로 그 세월을 이겨내겠다는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험난한 길을 힘껏 걸었다. 그 길의 중간 지점에는 구도에 자신의 손으로 역사를 쓸 수 있는 순간이 놓여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자에게만 주어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제 그는 그 길의 끝을 향해서 다시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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