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의 시대 "SSN-K는 국내에서, 버지니아급은 필리에서"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 대한민국의 핵추진잠수함(SSN) 개발 논의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해군이 사용할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000880)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히면서, 한국은 세계 7번째 핵잠수함 보유국으로 향하는 첫 번째 현실적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관심은 '어디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만들 것인가'에 맞춰지고 있다.

핵심은 한·미 양국이 '공동 조선체제(Joint Shipbuilding Regime)'라는 새로운 협력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추진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미국 현지 건조'에 대한 복합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양국 간 논의돼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한국이 국내에서 한국형 핵추진잠수함(SSN-K)을 설계·건조하고, 미국은 필리조선소를 통해 버지니아급(SSN) 일부를 병행 생산하는 '이원적 조선 시스템 구축'이다.

한국은 기술 주권을 강화하고 미국은 생산 병목을 해소하며 양국은 기술과 산업, 안보를 동시에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전략 동맹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MASGA 펀드, 기술·안보·산업 '핵심'

한국은 이미 30년 이상 재래식 잠수함(SSK) 건조 기술을 축적해왔다. 장보고급에서 출발해 손원일급, 장보고-Ⅲ급으로 이어지는 진화 과정에서 확보된 △모듈화 블록 생산 기술 △초저소음 선체 설계 △고강도 압력함 제작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한화오션(舊 대우조선해양·042660)은 이러한 기술력에 더해, 소형모듈원자로(SMR) 기반의 추진체계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현 단계의 기술력이라면 핵연료와 원자로 모듈만 확보될 경우 SSN-K 초도함은 8~10년 이내 실전 배치가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추진체계의 핵심은 단순한 조선기술이 아니라, 원자로 설계와 핵연료 공급 시스템이다. 한국은 군사용 고농축 우라늄 농축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핵연료를 미국으로부터 공급받고 사용 후에는 환수하는 '공급·감독형 모델'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비확산 체제 안에서의 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독자 설계·조립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절충안이다. 이런 구조는 '기술 이전' 대신 '기술 공유와 통제된 자율성'으로 정의된다.

특히 한·미 양국은 이번 프로젝트를 MASGA 펀드(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와 직접 연결해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이 대미 투자금 중 1500억달러를 MASGA에 배정한 만큼 해당 자금의 양방향 투자, 즉 한국에서는 SSN-K 전용 시험·정비 인프라를 구축하고 미국에서는 필리조선소의 군용 특수선 생산라인 확충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평가다.

이 방식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이 산업의 구조를 공유한다는 의미다. 한쪽은 기술, 다른 한쪽은 생산 기반을 맡아 동시 발전하는 체계적 동맹으로의 진화다.

◆'한화표 글로벌 핵잠 생태계'의 탄생

미국이 한국과 손을 잡은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미국 내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제너럴다이내믹스 일렉트릭보트(코네티컷)와 헌팅턴잉걸스 뉴포트뉴스(버지니아) 두 조선소는 모두 생산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미국은 연간 3척의 버지니아급 잠수함 생산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1척도 버거운 상황이다.

AUKUS 협정으로 인해 호주 잠수함 건조까지 병행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새로운 생산 거점이 절실한 상태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필리조선소(Philadelphia Navy Yard)'는 미국 동부 조선 인프라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다. 필리조선소는 과거 미 해군의 전략적 조선시설로, 1970년대까지 40척 이상의 군함과 잠수함을 건조하던 핵심 군수 거점이었다.

한화는 이곳을 인수한 뒤 50억달러 규모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연간 20척의 군함 건조 능력 확보와 12만평 규모의 블록 생산기지 신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블록 기지는 대형 잠수함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있으며, 밀폐형 조립동과 핵연료 차폐시설까지 포함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필리조선소는 단순한 조선기지가 아니라, 한·미 군수 동맹의 상징적 허브로 변모할 것이다"고 평가한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를 단순히 미국 내 생산기지로 활용하지 않는다. 한국의 숙련 기술진과 엔지니어를 순환 파견해 현지 인력을 교육하고, 부산·거제·창원 지역의 협력업체 16곳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구조를 만든다. 이는 단순한 수출이 아닌 공동 조립·검증·정비 생태계 구축이다.

특히 미국 해군의 차세대 공격 원자력 잠수함으로 현재 전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은 2025년 현재 24번함까지 취역했으며, 건조 중인 것과 계획된 것을 합해 총 66척을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연간 3척의 버지니아급 잠수함 생산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 건조 속도는 1척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화는 50억달러를 투입해 필리조선소에서 연간 20척 건조가 가능한 설비로 재편하고, 12만평 규모의 군용 특수선 블록 생산기지를 신설할 계획이다. 이 기지가 완성되면 미국의 버지니아급 잠수함 생산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즉 필리조선소에서 버지니아급 일부가 생산되고 한국에서 SSN-K가 병행 제작되면, 양국의 기술 표준이 사실상 통합된다. 이로써 한국의 조선 기술은 미국 방산 공급망 안으로 들어가며, K-방산의 글로벌 입지가 한층 강화될 것이다.

◆병행 건조와 글로벌 밸류체인의 재편

핵심은 '산업 동맹의 전략화'다. 이 체계가 완성되면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 핵잠 건조 능력과 해외 생산 동맹을 동시에 보유한 국가가 된다. 이는 단순히 함선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조선·원자력·군수·외교가 통합된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핵연료의 안전성 △방사선 관리 △지역사회 수용성 △미국 의회의 예산 승인 등은 여전히 변수다. 그러나 한국은 △원전 △조선 △방산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기술 신뢰도를 입증해왔다. IAEA의 감독 하에 투명한 안전 관리 체계를 확립한다면, 국제사회와의 마찰은 최소화될 수 있다.

한·미 공동 조선체제는 '한 척의 잠수함'이 아닌 '한 세기의 시스템'을 만드는 사업이다. 한국은 국내 건조를 통해 주권 전력을 확보하고 미국은 필리조선소를 통해 생산 여력을 보완하며, 양국은 MASGA 펀드를 통해 기술과 자본을 결합한다.

그 결과 한국은 '조선 강국'을 넘어 '표준 강국', '방산 플랫폼 국가'로 진화하게 된다. 동맹은 군사 협력을 넘어 산업·기술·경제를 공유하는 구조로 확장되고, 한·미는 새로운 냉전 구도 속에서 규범을 만드는 조력자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논쟁이 아니라 실행이다. 한국이 SSN-K의 실전 배치를 통해 주권 전력을 갖추고 미국이 필리조선소를 통한 생산 동맹을 실현한다면, 그날은 단지 잠수함 한 척의 진수가 아니라 한·미 동맹이 산업과 안보를 결합해 세계 질서를 다시 쓰는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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