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4차 산업시대, 에너지는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특히 ‘인공지능(AI)’의 상용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는 깨끗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원 기술 확보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에너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전문가들은 하나의 에너지원이 아닌, 여러 에너지원을 함께 사용하는 ‘에너지 믹스(Energy Mix)’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친환경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상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친환경’ 아닌 ‘천연가스’의 함정
“일반적으로 친환경 에너지원이라 오해할 수 있는 천연가스는 사실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평균적으로 이산화탄소보다 20~30배 이상의 온실효과가 있다.”
김용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장)은 11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국가미래전략기술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한 전략’이다. 국회와 연구기관, 기업이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형두 국민의힘 국회의원,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이 주최하고 KAIST 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가 주관한 행사다.
포럼 발제를 맡은 김용희 소장의 말처럼 천연가스는 현재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에너지원 중 하나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대표적인 천연가스인 ‘메탄(CH₄)’은 이산화탄소(CO₂)보다 80배가 넘는 지구온난화 효과가 있다.
실제로 메탄은 전체 천연가스 공급망에서 가장 큰 비중의 온실가스 배출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LNG 공급망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30%가 메탄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메탄의 온실효과는 IT산업 발전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오히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었지만 메탄 배출량은 크게 급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IT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에너지 소요가 크게 늘면서다.
김용희 소장은 “최근 소버린 AI를 기반으로 한 AI 대전환 시대가 다가오고 있어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탄소중립과 AI시대라는 거대하고 다양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선 새로운 에너지 정책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상생이 곧 ‘탄소중립’
전문가들은 천연가스의 한계를 극복하고 탄소중립과 AI대전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KAIST 과학자들이 제시한 해답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상생을 통한 ‘에너지 믹스’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이산화탄소, 메탄을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이 사실상 없다. 또한 발전시설을 한번 설치하면 추가적으로 물질 자원도 거의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시설 보수만 정기적으로 이뤄지면 지속적인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정성’의 부족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각각 햇빛, 바람으로 전력을 생산한다. 즉, 그날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언제든 안정적으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기저전력원’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실제로 재생에너지는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이라는 문제가 늘 뒤를 따라다닌다. 둥켈플라우테는 독일어로 ‘어둡고 고요한 침체’라는 뜻이다. 최근엔 겨울철 구름이 많고 바람이 적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감하는 시기를 일컫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국내의 경우 매년 3개월 둥켈플라우테 현상이 발생한다.

반면 원자력 발전은 완벽한 기저전력원이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1년 24시간 꾸준한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발전에 필요한 플루토늄, 우라늄의 양도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량도 매우 적다. 즉, 재생에너지와 결합해 사용한다면 매우 우수한 상생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경제적 관점에서도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 에너지 믹스는 상당한 이점이 있다. ‘한국원자력학회’가 발표한 ‘탄소중립 비용 규모(2021)’자료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80% 이상일 경우 필요한 발전비용은 123조8,000억원에서 147조1,000억원이다. 반면 원전 규모를 유지하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50%로 유지할 경우 발전 비용은 91조9,000억원에서 99조5,000억원 규모다. 약 30% 정도 발전비용이 저렴한 셈이다.
김용희 소장은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소위 겨울철에 거의 며칠 동안엔 일광이 없어 태양광으론 발전을 거의 못한다”며 “독일은 재생에너지를 위해 굉장히 많은 돈을 투자해 에너지 저장장치를 구축했지만 이걸론 택도 없이 부족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조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가 의미 있게 사용되기 위해선 원자력 발전도 확대돼야 한다”며 “전력 생산의 40%에서 최대 60% 내외를 원자력 발전이 담당하게 된다면 국내 그리드 전력망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원전-재생에너지 믹스 시대, ‘SMR 시장’을 잡아라
김용희 소장의 말처럼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의 에너지 믹스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정책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원전-재생에너지 상생 트렌드는 빠르게 확산됐다.
먼저 미국의 경우 2050년까지 국내 원자력 발전량을 4배 이상 확충한다는 계획을 올해 발표했다. 기존 탈(脫)원전을 선언했던 유럽 국가인 이탈리아, 벨기에, 스위스는 원자력 발전을 재사용한다는 기조로 에너지 정책 노선을 변경했다.
이 가운데 주목받는 기술은 단연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다. SMR은 하나의 용기에 냉각재 펌프와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한꺼번에 담아 일체화시킨 원자로다. 노형에 따라 72종으로 구분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경수로 △소듐냉각고속로(SFR) △고온가스로 △용융염로 등 4종이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경수로형으로 전체 72종의 SMR 중 31종이 경수로형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에 따르면 SMR은 300MWe 미만이다. 기존 원자로 대비 출력이 3분의 1 수준이다. 이는 원자로의 구조가 작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즉, 기존 대형 원자로보다 건설 비용이 적고 건설 기간도 짧다. 일반 원전은 건설 기간이 4년 이상인 것에 비해 SMR은 2년에 불과하다.
안전성에서도 SMR은 우수하다. SMR은 기존 대형 원자로와 달리 주요 기기를 원자료 용기 내부에 일체형으로 설치한다. 이를 통해 대형 배관의 ‘파단사고(배관이 끊어지는 것)’가 원천 차단된다. 또한 구조 자체가 단순하기 때문에 고장 발생 가능성이 낮고 수리도 쉽다.
우리나라도 SMR 관련 투자 및 지원정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SMR 개발 및 상용화 촉진을 위한 ‘SMR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기술력도 우수하다. 황정아 의원이 8일 국회입법조사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형 혁신소형모듈원자로(i-SMR)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 평가에서 전체 SMR 노형 중 10위로 평가받아 높은 기술 수준을 입증했다.
김용희 소장은 “한국을 포함한 많은 주요국들이 SMR을 개발하고 있는데 현 시점에서 120개 이상의 SMR 모델이 개발되고 있다”며 “특히 미국의 경우 소위 4세대 선진 원자로 관련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에도 많은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어 큰 시장적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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