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박단비] 모든 것을 숫자로 치환해 해석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하지만 기어코 숫자를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노래방 점수, 사람 사이 궁합, T와 F의 퍼센티지 같은.
숫자처럼 누군가의 주장을 견고히 만들어 주는 도구가 있을까? 그것도 아주 쉽고 빠르게 말이다.
학교에서 과제를 제출하거나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해 본 사람은 잘 알 테다. 숫자의 위력을. 사람에게 내 생각을 어필할 때 숫자만큼 좋은 무기도 없다. 대부분 숫자와 가깝게 지내진 않아도 숫자의 힘을 믿기에, 숫자를 들이대면 후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러하다. 특히 몇 년 치 숫자 데이터를 들이대면 ‘그렇네’라고 생각한다. 숫자가 틀렸을 수도 있고, 들고 온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보여줬을 수도 있는데 일단은 수긍한다. 숫자는 줄글이나 말처럼 애매하지 않고, 어떠한 배경 없이 띡- 나오는 숫자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숫자에 대한 이 지독한 믿음은 위험하다. 누군가 마음먹자면 숫자를 조작하는 일도,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공개하며 의도적으로 왜곡하기도 쉽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SNS, 언론, 수많은 매체에서 제공하는 편향된 숫자에 휘둘린다. 그 숫자로 자신만의 믿음을 공고히 하며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기도 한다.
하여 나는 숫자와 데이터를 맹신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며, 이 책을 펼쳤다. <숫자 한국>.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숫자는 매력적이고, 동시에 굉장히 위험하다. 하지만 숫자가 위험하다고 안 쓸 수 없다. 숫자를 똑똑하게 사용하되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지, 얼마나 제대로 된 숫자를 모을지, 어떻게 해석할지가 중요하다.
저자 박한슬은 말한다. “사람들이 통계를 수월하게 찾아보고 널리 숫자를 해석할 줄 아는 세상은 좀 덜 피곤한 세상일 것이다. 갈등의 규모는 줄어들고 문제 해결의 속도는 빨라질 테니까.”
부정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숫자를, 제대로 해석한다면, 이것을 제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조금 단순해질 수 있다.
인구, AI(인공지능), 기후 등 20가지 숫자를 통해 저자가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처참하다. 대신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응시하게 한다. 대신 그만큼 냉정하게 해결책을 모색하게 만든다. 저자가 보여준 숫자는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움직일 이유와 힘을 만들어낸다.
물론 뻔히 아는 숫자도 있었고,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숫자도 있고, 납득할 수 없는 숫자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괜찮았다. 저자 역시 모든 숫자를 보여줄 수는 없으므로, 해석에는 항상 주관이 들어가므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간격만 존재했다.
다행히도 이러한 부분이 책의 장점을 크게 가리지는 않는다. <숫자 한국>을 읽고 나면 스스로 숫자를 찾고, 해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동안 타인이 제공하는 숫자와 해석만을 보고 듣고 믿으며, 타인의 숫자 해석에 자신을 휘둘리게 두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숫자를 바르게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런 숫자를 누가 무슨 의도로 생산한 것인지까지도 한 번 정도는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의도가 내가 생각하는 더 바람직한 세상과 맞지 않다면, 그 숫자를 억지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반박할 새로운 숫자를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저자 말처럼 새로운 숫자를 만드는 것까지는 어려워도, 한 번 정도는 고민해 보면 좋겠다. 나, 이 숫자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북에디터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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