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국내 기업들이 200조원이 넘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HL-GA 공장 한국인 직원 구금 사태를 비롯해 비자 문제, 고율 관세, 보조금 축소, 현지 반발 등 불확실성이 겹치며 ‘미국 시장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이에 투자 기업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관세를 내는 편이 낫다”는 자조 섞인 불만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 대미 투자 금액만 209조원인데…한국인 구금 조치에 불확실성↑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 20여곳이 미국에 공장을 신설 또는 증설을 진행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삼성전자, 삼성SDI, SK하이닉스, SK온, CJ제일제당, LS전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 현지 투자 규모는 1500억달러(약 209조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LG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 공장)은 2023년 두 회사의 합작법인 설립 계약에 따라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년 초부터 연간 전기차 약 30만 대 분량의 배터리 양산을 목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루이지애나주에 현대제철 신규 설비 구축과 2029년까지 연 3만대 규모의 로봇 공장 건설도 계획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서 370억달러(약 46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내년 말부터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건설해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HL-GA 배터리 공장 직원 구금 조치로 이들 기업의 미국 내 신규 사업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졌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공장 건설을 진행하며 숙련 인력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앞서 지난 4일 오전 국토안보수사국(HSI) 요원들은 HL-GA 공장을 급습해 한국인 직원을 상대로 체류 자격 조사를 벌이고 300여 명을 구금한 바 있다.
특히 HL-GA 배터리 공장의 경우 이번 단속으로 연행된 한국인 직원들이 자진출국 형식으로 귀국하더라도 당장 재입국을 할 수 있다는 기약이 없어 대체 인력을 확보할 때까지 공장 건설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결국 비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전반적인 생산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커지는 ‘미국 시장 리스크’…“차라리 관세를 내고 말지”
예상치 못한 ‘미국 시장 리스크’에 대미 투자 기업들의 주름살은 깊어지고 있다.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섰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하는 ‘보조금 축소’와 ‘이민 단속 강화’ 등 여러 정책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어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미 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관세를 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은 한국에 비해 인건비는 턱없이 비싼데, 정작 숙련 노동자는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장 운영 비용도 마찬가지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 지난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첨단 시스템반도체 공장을 미국에서 10년간 운영하는 총비용은 한국보다 28% 비싸다. 현재 한국에 적용 중인 상호 관세(15%), 자동차 품목 관세(25%, 15%로 합의했지만 미적용)보다 인건비 격차로 인한 부담이 더 큰 셈이다.
환율과 물가가 동반 상승에 따른 인건비와 원자재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정부가 수입 철강 관세를 50%로 매기는 등 고율 관세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국내 기업의 미국 공장 설립 비용은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현지 대규모 보조금 지원 혜택도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 들어 보조금 축소, 폐지를 넘어 ‘투자 기업의 지분 확보’라는 상상 초월의 카드까지 꺼냈다. 전임 바이든 미 행정부가 고비용 구조 상쇄와 제조업 투자 유치를 위해 내걸었던 보조금 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현지 건설 업계와 근로자들의 방해 공작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HL-GA 배터리 공장 단속 배경으로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SK온이 포드와 손잡고 세운 블루오벌SK을 비롯해 LG엔솔이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설립한 오하이오주 공장과 테네시주 공장, 현재 건설 중인 미시간주 3공장 등 현지 업체들이 시공에 참여한 현장에서는 단속이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에도 단기 출장을 갔던 LG에너지솔루션 소속 직원들은 대부분 ESTA로 입국했지만, 미국 이민 당국은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았다. 반면 단속이 이뤄진 HL-GA 배터리 공장 시공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담당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미국 밖에서도 韓기업 발목 잡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국 기업 괴롭히기는 미국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상무부는 자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 공장으로 반입할 시 연간 승인을 받도록 하는 ‘사이트 라이선스(site license)’ 제도를 지난주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간 필요 장비 목록과 수량을 사전에 정확히 명시한 후 미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해당 품목을 중국에 들여올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9일 한국 측에 내년 1월부터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중국 공장 반입 시 ‘건별 승인’을 받도록 한 것에서 완화된 조치이지만, 경영활동에는 제약이 불가피하다.
특히 승인 과정에서 중국 내 반도체 공장 운영 계획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일정 부분 제공해야 될 수도 있어 영업 기밀 유출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황에 따라 달라지는 장비 수요를 1년 단위로 예측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