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금 한국은 디지털 노마드 시장을 선점할 절호의 기회에 놓여있다. 한류로 전 세계 젊은 층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치안·교통·음식 같은 생활 인프라가 이미 세계 최상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원격 근무자가 한국을 거점으로 장기 체류한다면, 이는 단순 관광을 넘어 글로벌 인재 유치와 지방 소멸에 대한 해법이 된다."

조정현 호퍼스(Hoppers) 대표의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인의 일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재택·원격근무가 보편화되면서 국경을 넘어 이동하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새로운 인구 집단이 급부상했다. △스페인△포르투갈 △발리 △치앙마이 등 지역이 대표적인 디지털 노마드 성지로 꼽힌다.
최근 그 흐름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 외국인들은 서울을 포함한 부산, 제주, 홍성군 같은 농촌 지역에도 외국인 노마드들이 찾고 있다.
호퍼스는 이 흐름을 기민하게 읽어낸 국내 최초의 디지털 노마드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노마드를 위한 커뮤니티·공간·프로그램을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 대표가 디지털 노마드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은 팬데믹 이전이다. 그는 한샘DBEW(현 태재)연구재단에서 스마트시티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어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당시 그는 원격 근무의 보편화가 대도시 인구 집중 문제를 완화하고 지역 불균형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원격근무자를 위한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 디자인'을 연구하기도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툴사 리모트(Tulsa Remote)' 사례를 접했다. 원격 근무자를 유치해 세금 수입, 소비, 문화적 활력을 동시에 끌어낸 성공 모델이었다. 조 대표는 "원격 근무자와 디지털 노마드는 도시와 지역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이어 2021년 귀국 후 창업을 결심했지만, 초기 사업 모델은 지금과 달랐다. 코로나 시기에는 도시 유휴 공간과 공원 등을 활용한 아웃도어 오피스 키트, 업사이클 가구 등 하드웨어 중심 아이디어를 시도했으나 시장 수요를 찾기 어려웠다.
그는 "본질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향을 전환했다. 한국에서 리모트워커·디지털 노마드를 대상으로 가장 큰 수요는 커뮤니티와 업무공간에 대한 정보 부족이라고 판단, 외국인 노마드를 대상으로 매주 밋업(교류 행사)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영어 기반의 디지털노마드 커뮤니티 '디지털 노마드 코리아(Digital Nomads Korea, DNK)'다.

DNK는 2023년 초 시작해 불과 2년만에 회원 수 5000명을 돌파했다. 회원들의 국적은 북미·유럽·호주 출신 원격 근무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운영 언어는 영어다. 회원들은 한국 체류 중 다양한 정보를 얻고 이벤트에 참여하며 지역과 연결된다.
DNK를 통해 잠재 고객의 수요를 확인한 조 대표는 2023년 10월, 서울 연남동에 첫 번째 '호핑 하우스(Hoppin House)'를 열었다. 외국인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코리빙·코워킹 공간으로, 방 5개와 좌석 16석 규모의 소규모 시설이지만 '외국인 노마드의 한국 생활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가격대는 월 110만원 도미토리부터 250만원 프라이빗룸까지 다소 높은 편이지만, 주 고객은 외국인 고소득 원격 근무자들이다. 조 대표는 "연남점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코리빙·코워킹 모델을 실험해보는 테스트베드"라며 "수익성은 크지 않지만 글로벌 운영자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었고, 일본·대만 등에서 파트너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호퍼스는 공간을 넘어 지자체와 협력해 장기 체류형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지난 2023년에는 홍성군에서는 농촌 마을과 함께 워케이션을 운영했다. 참가자들도 "한국에서 가장 인상깊은 경험"이라고 평가했다. 인기에 힘입어 2024년에는 부산 80명, 제주 30명이 장기 체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단순 관광객이 아닌 일하며 교류하는 장기 체류자로서 지역경제에 기여한 셈이다.
현재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Hoppin Busan 글로벌 워케이션'을 운영 중이다. 10주 동안 200여 명의 글로벌 워케이션 고객을 모집할 계획이다. 조 대표는 "워케이션은 단순 체험이 아니라 글로벌 인재 유치와 스타트업 네트워크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Hoppin Busan 글로벌 워케이션'을 운영 중이다. 조 대표는 "워케이션은 지역의 관광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향후 글로벌 인재 유치와 스타트업 네트워크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제도다. 2023년 정부가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도입했지만,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체류 요건으로 중도 포기 사례가 많았다. 그 결과 디지털 노마드들은 차선책으로 대만·일본을 선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조 대표는 "관광부문이 아니라 과기부·산업부 차원의 글로벌 인재 유치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협회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대만의 사례를 눈 여겨 보고있다. 대만은 국가발전위원회(NDC) 차원에서 디지털 노마드 유치와 비자 제도를 적극 추진 중이다.
그는 "외국인 노마드는 단순 관광객이 아니라 생활 인구에서 정주 인구로 이어질 수 있는 장기 체류형 관광객"이라며 |이들은 한 달 이상 지역에 머무르며 숙박·교통·식음료 지출로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주민과 교류해 지역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노마드 정주환경을 개선하려면 24시간 이용 가능한 업무 공간, 장기 체류에 적합한 숙소, 글로벌 커뮤니티와 로컬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을 찾는 디지털 노마드 중에는 외국인 창업자·개발자 등 고소득 전문직이 많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을 거점으로 사업을 확장하거나 창업·이직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강화와도 연결된다.

호퍼스는 이제 한국을 넘어 아시아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부산·제주를 거점으로 시작해, 올해는 일본 오사카와 UAE 두바이로 '호핑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탭엔젤파트너스가 운영하고, 서울관광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조 대표는 "서울에서 사용하던 서비스를 오사카·두바이에서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게 연결하겠다"며 "해외 체류 중인 디지털 노마드의 한국 유입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3년 내 한국에 '호퍼스 시그니처 공간'을 완성하고, 아시아 워케이션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끝으로 조 대표는 "노마드라는 단어는 흔히 '떠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을 거점으로 삼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은 이제 막 노마드 시장에 발을 들였을 뿐이고,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미래 인재 유치 경쟁에서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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