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바다가 ‘유독(有毒)’해지고 있다. 이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독극물 때문이 아니다. 바다 스스로 독극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바다가 내뿜은 치명적인 독소들은 해양 생태계 전체를 위협한다. 그 원인은 ‘기후변화’에 있다. 해수온 상승으로 뜨거워진 바다.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도모산’이 습격한 미국 바다, 고통받는 해양포유류들
지난 7월, 시사위크 취재팀은 미국 캘리포니아 소살리토(Sausalito)에 위치한 ‘해양포유동물센터(The Marine Mammal Center, TMMC)’에 방문했다. 이곳은 지난 1975년 설립된 해양동물보호 비영리기관이다.
TMMC 내부로 들어서자 바다사자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 대부분은 야생에서 부상을 당해 죽어가던 동물들이었다. TMMC에서는 이처럼 부상 당하거나 버려진 해양포유류를 구조와 재활, 방생을 목표로 운영된다. 이곳에선 지난 50년간 약 2만4,000여마리의 해양포유류를 구조했다.

TMMC의 시민 봉사원인 마크 브로커링은 “소살리토 해안에는 바다사자를 비롯한 수많은 해양포유동물이 살고 있다”며 “이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노력하고 있고 저처럼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해양동물병원’인 만큼 TMMC에 다친 바다사자가 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날 하지만 연구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독성물질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된 바다사자가 구조됐기 때문이다. 센터로 실려 온 바다사자는 연신 입에서 거품을 토해냈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기도 했다.
바다사자가 중독된 것으로 추정되는 독소는 ‘도모산(DA)’이었다. 이는 단세포 식물플랑크톤의 일종인 ‘규조류(硅藻類)’에서 자연 발생되는 독성물질이다. 1959년 일본 홍조류에서 처음 발견됐다. 도모산에 오염된 조개류와 어류를 섭취한 바다사자, 해달, 고래 등 해양포유류들이 중독될 위험이 있다.

도모산 중독은 ‘기억상실패류중독(ASP)’라는 치명적인 증상을 유발한다. 체내로 유입된 도모산은 AMPA 수용체와 카이네이트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칼슘을 신경으로 유입시킨다. 신경세포 내부에 급증한 칼슘은 세포 퇴화를 유발한다. 최종적으로 뇌의 해마와 편도체핵이 손상된다.
크리스탈 크루식 TMMC 공공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도모산은 정어리, 멸치, 조개 등 작은 어류와 어패류에 축적돼 해달, 바다사자와 같은 해양포유류가 대량 섭취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뇌와 심장이 영향을 받아 발작, 심부전, 마비 등 증세가 유발되고 치료하지 않을 시 영구적 장애와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다”고 우려했다.

◇ 독성 규조류가 만드는 도모산, 추정 원인은 ‘기후변화’
최근 바다사자들 사이에서 도모산 중독 문제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해양보호위원회(OPC)에 따르면 지난 2023년 5월부터 7월 사이 약 1,000마리의 해양포유류가 도모산 중독 증상을 보이며 해안가에 떠밀려 왔다. TMMC에서 구조된 150여마리의 바다사자들도 도모산 중독으로 입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도모산 중독이 급증하는 이유를 ‘기후변화’에 의한 것으로 추정했다. 해수온 상승으로 ‘유해조류 대번식(Toxic algal bloom)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이는 도모산을 만들어내는 규조류가 최근 해수온 상승 등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도모산은 ‘수도니치아(Pseudo-nitzschia)’라는 규조류가 만들어낸다. 이때 수도니치아는 고수온 현상에서 급격히 번식한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대 산타크루즈 캠퍼스 해양과학과 연구팀이 2020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이 수도니치아의 번식을 활성화해 도모산 확산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에 은 캘리포니아 유해조류 위험매핑(C-HARM) 예측 통계모델을 이용, 2013년부터 2015년 북동 태평양 지역 폭염 발생 이후 유해조류 대번식 현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 연안 지역은 새로운 수도니치아의 주요 번식지로 변모했음을 확인했다. 해안 근처의 상승류 수역에서 영양소와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 공급이 늘어나면서 수도니치아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연구팀은 “관찰 결과, 험볼트(트리니다드 헤드) 지역에서 2015년 도모산 독성이 강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며 “최대 도모산 농도는 1리터(L)의 바닷물 당 1만5,000ng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평균 바닷물의 도모산 농도가 1리터당 0.01ng임과 비교하면 150만배 높아진 수준이다.

특히 물새 등 해양 생물들의 주 먹이인 맛조개류에서 발견된 도모산 농도는 340ppm 수준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해산물 내 도모산 농도 기준을 20ppm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무려 17배에 달하는 양이다. ppm은 1kg의 해산물에 몇 mg의 도모산이 들어있는지를 나타내는 단위다.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도모산의 확산이 더욱 심각해 수 있다.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WHOI) 연구팀은 걸프 메인만(Gulf of Maine) 지역에 미래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2073~2097년엔 도모산을 만드는 수도니치아의 개화 시기가 가을 후반부터 겨울, 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즉, 사실상 1년 내내 수도니치아가 개화해 도모산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WHOI 연구팀은 “수도니치아는 7~8월에 일반적으로 걸프 메인만에서 개화하던 온난 조류였으나 기후변화로 수온이 상승하면서 10~12월 사이에도 번식할 가능성이 생겼다”며 “걸프 메인만의 온도가 증가하게 되면 수도니치아에서 만들어지는 도모산 독성 역시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해양동물 ‘기형아’ 출산에 경제적 피해까지… 국내선 아직 보고 안돼
우려스러운 것은 도모산 확산이 해양포유류 종 유지 자체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바다사자들의 경우 기형아 출산 확률이 증가할 수 있다. 임신한 암컷 바다사자가 도모산에 정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신경 기형 유발 물질이 태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TMMC 연구진은 야생의 암컷 바다사자에서 36마리의 태아 체액을 채취했다. 그 다음 체액 내 도모산 농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양수에서 79%, 요막액 67%, 태아의 소변 75%, 태아의 대변 41%, 위장 내용물 29%에서 도모산이 검출됐다. 어미 바다사자를 통해 태아가 도모산에 노출될 수 있음이 나타난 것이다.
TMMC 연구진은 “임신 중 도모산 노출은 바다사자의 자궁 내 태아 사망, 유산, 신생아 사망 등, 기형아 출산과 관련이 높다”며 “바다사자 태아의 체액에서 도모산이 검출됐다는 것은 태아의 해마 손상, 지속적 행동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어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도모산의 위험은 해양생물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도 매우 위협적인 신경 독소다. 도모산에 중독되면 30분에서 24시간 이내에 구토, 설사, 복통, 두통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이어 위장염, 심부전, 혈압 불안정, 부정맥 등이 이어진다. 드물지만 기억상실과 신경장애, 사망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다.
도모산 확산은 경제적 피해로도 연결된다. NOAA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미국 서부 해안에 발생한 대규모 도모산 확산 사태 당시 근처 어업인 84%가 경제적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워싱턴주에 위치한 롱비치 마을 한 곳에서만 총 84만3,675달러(약 11억7,144만달러)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국내 역시 매년 상승하는 해수온으로 해조류, 식물성 플랑크톤 개체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아직까지 국내서 도모산 중독에 의한 피해 사례가 보고된 바는 없다. 다만 도모산 중독 피해가 발생할 잠재적 가능성이 충분한 만큼 모니터링과 사전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양현성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열대·아열대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도모산으로 인한 중독이 발생한 일은 없으나 남해안에 중독의 원인인 플랑크톤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불특정한 시기에 산발적으로 검출된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해수온 상승과 맞물려 확산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에서는 도모산으로 인한 직접 피해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해수온 상승과 영양염 변화가 계속된다면 국내 연안에서도 잠재적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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