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편의점과 쿠팡 등 유통업계가 의약품 유통 확대를 추진하면서 약사회와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의약품 판매에 대해 소비자 접근성을 앞세운 유통업계와 전문성을 내세운 약사회 간 충돌이 보건 정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약국 외 판매로는 13년 전 편의점 상비약 판매가 개시된 이후 제자리 상태다.
편의점업계는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현행 약사법은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을 최대 20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판매되는 품목은 해열진통제·소화제·감기약 등 11종에 불과하다.
제도 도입 초기였던 2012년 13개 품목에서 시작했지만, 2022년 어린이용 타이레놀 2종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현재는 11종으로 줄어든 상태다. 지사제, 상처·화상 연고, 알레르기약 등 생활 밀착형 품목은 여전히 빠져 있다.
업계는 제도 도입 이후 13년째 단 한 차례도 확대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긴 연휴나 심야 시간대 약국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자가 응급 대응 수단을 확보하지 못해 불편을 겪는다는 이유에서다.
편의점 등 다양한 유통 채널에서 수천종의 상비약을 취급하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국내 제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미국은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약국뿐 아니라 슈퍼마켓·편의점·온라인몰 등에서도 일반의약품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일본은 일반의약품을 1~3등급으로 나눠 2·3등급은 약국 외 소매점에서도 판매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편의점 내 안전상비약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안전상비약 매출은 2018년 504억원에서 2023년 832억원으로 5년새 65% 증가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상비약 매출은 전체 매출의 0.3% 수준으로 수익 사업이라 보기 어렵고 공익적인 측면이 강하다"며 "전국 5만여 점포의 24시간 운영 인프라를 활용해 국민 약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약사회는 오남용 문제를 강하게 지적한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편의점 도입 이후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판매량이 늘었지만, 환자가 늘어난 게 아니라 불필요하게 약을 더 먹는 상황이 된 것"이라며 "곧 오남용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전상비약 제도는 애초부터 완결성이 떨어지는 제도였고, 법에 20개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무조건 20개를 채울 이유는 없다"며 "편의점 업계가 말하는 공익은 결국 영리적 목적을 위한 미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편의점뿐 아니라 이커머스와 할인형 유통매장도 의약품 유통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쿠팡도 퀵커머스를 통해 의약품 유통을 확대하려 했지만 약사회 반발로 발을 뺐다.
쿠팡이츠는 올해 초 강남 일대 약국 입점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최근 강남구에서 운영하던 '쿠팡이츠 쇼핑' 서비스를 서초구·마포구까지 확대하며 지역 기반 퀵커머스를 강화하면서다. 현재 입점 업종은 동네 슈퍼, 정육점, 꽃집, 안경점 등 13개로, 주문 시 30분~1시간 내 배송이 이뤄진다.
하지만 건기식과 마스크 같은 의약외품을 1시간 내 배송하겠다는 계획이 약사회 반발에 부딪혀 철회됐다.
약사회는 "전문성 훼손과 유통 질서 위협"을 문제삼았다. 쿠팡 측은 "약국 입점 및 판매 계획은 없다"고 일축했다.
유통업계와 약사회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다이소는 종근당건강, 대웅제약, 일양약품 등과 협업해 건기식을 판매했지만 약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일부 약사 사이에 불매운동까지 나서자 일양약품은 입점 닷새 만에 철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9년 안전상비약 확대를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 과제’로 채택했지만, 보건복지부 지정 심의위원회가 약사단체 반발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올해 들어서도 공정위는 제약사들의 유통 채널 진출을 막은 혐의로 대한약사회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의약품·건기식 관련 규제 완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약품은 약국이나 약사, 의료기관 같은 통제 체계 안에서 안전하게 쓰이도록 관리하는 게 맞다"며 "정부가 규제 혁신을 강조하더라도 국민 건강과 안전만큼은 예외로 두고, 의약품 영역만큼은 명확한 기준을 지켜야 나중에도 관리·통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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