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서현우가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감독 김태준)로 글로벌 시청자 앞에 섰다. 수상한 아우라의 윗집 남자 진호로 분해 또 한 번 강렬한 캐릭터 변신을 선보인 그는 “검증된 선택만 유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는 연기 철학을 전했다.
서현우는 지난 18일 공개 후 공개 2주차 글로벌 톱 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에 등극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84제곱미터’는 아파트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영끌족 우성(강하늘 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층간 소음에 시달리며 벌어지는 스릴러를 담은 작품이다.
극 중 서현우는 우성의 윗집에 사는 진호를 연기했다. 진호는 온몸에 흉터와 문신이 있고 무슨 사연을 지녔는지 알 수 없는 수상한 아우라와 함께 위압감 넘치는 모습으로 우성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을 완성하는 서현우는 이번에도 있을 법한, 그래서 더 섬뜩한 캐릭터를 세밀하게 빚어내며 영화의 긴장감을 이끄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날 것’의 얼굴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서현우를 만나 캐릭터 구축 과정부터 촬영 비하인드 등 ‘84제곱미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결정적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강렬한 캐릭터 변신이었다. 구축 과정은.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과격함과 폭력성이 탑재된 역할이었고 이렇게까지 작품에서 소리 지르고 발광하고 미쳐 날뛰어본 게 있었나 싶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감독님이 패셔너블한 근육질이 아니라 산전수전 다 겪은 파이터 같은 느낌을 원해서 비주얼적으로 위화감이 느껴져야 했다. 처음 우성이 따지러 올라왔을 때 아무말 못하고 ‘깨갱’할 수밖에 없는 비주얼을 만들고자 했다. 이미지적인 느낌도 있지만 대화하기 불편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고민하다가 팬티만 입고 나오는 게 어떨까 의견을 냈고 팬티만 입었더니 허벅지 흉터 노출도 가능하더라. 그렇게 쌓아 올렸다. 복싱 연습도 3개월 정도 했다.”
-말한 것처럼 첫 등장이 중요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공을 많이 들였다. 머리 스타일부터 서 있는 형태라든지 문신도 그렇고.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건달이나 깡패의 형상보다는 분쟁 지역이나 테러 지역에 가서 잠입 취재를 한 인물로 전사를 꾸렸다. 그래서 문신도 어떤 집단에 위장으로 소속하기 위해서 새겨넣은 것이고 허벅지 흉터를 통해서도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비주얼적으로 노출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잠입 취재를 하면서 폭력성도 자연스럽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해버리는, 자기 성격대로 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의 성분 자체를 가져가려고 했다.”
-레이어가 많은 인물이었고 반전도 있는 캐릭터였다.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미묘한 뉘앙스를 가져가야 했는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첫 등장이 중요했다는 게 뒷걸음칠만한 존재감이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청년이 나오면 어떨까 접근도 했는데 오히려 그 평범함이 ‘저 인물 뭔가 있네’라는 여지를 남길 것 같았다. 그래서 약간 건달 같기도 하고 단순히 말 걸기 힘든 사람이라는 정도의 위압감으로 시작하자고 했다. 반전을 염두에 두고 반전을 위해 연기하진 않았다. 영진호는 자기 일만 하고 있거든.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를 하고 있었던 거다. 다만 도적성이 결여된. 그런 텐션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영진호의 방을 보면 굉장히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인데 그것에 스크래치가 났을 때 굉장히 잘못된 형태로 분노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아이디어를 낸 지점도 있나.
“감독님이 이미 설계한 진호의 모습 자체에 이런 면모가 되게 뚜렷했다. 내가 조금 더 추가하고 아이디어를 낸 지점은 장도리를 들고 통화를 한다든지 인터뷰할 때 마이크처럼 쓴다든지 같은 것들이다. 또 이 사람의 말투가 자연스러운 일상과는 조금 다른, 혼자 ‘그것이 알고 싶다’ 사회를 진행하는 듯한 느낌으로 설정했다.”
-영진호의 서사가 부족해 아쉽다는 반응도 있는데.
“영진호의 과거 이력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설명이 있지 않은데 오히려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장면에 등장하는 게 소정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인물이길 바랐고 그 방식이 이미 예견되는 방식은 절대 아니었다.”
-강하늘과의 호흡은 어땠나.
“노우성으로서 현장에 그냥 귀신같이 있더라. (강하늘이) 정말 많은 회차를 소화했다. ‘아이디어 뱅크’였다. 리허설 하면서 다 같이 아이디어를 내며 만들어갔다. 마치 공연 연습을 하는 것처럼 같이 구축해 나갔다. 다 퇴근한 텅 빈 세트에서 회의도 하고 연구를 했다. 잊지 못할 작업이었다.”
-연기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데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맞춤옷을 입은 듯 소화한다. 비결이 있다면.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된 것 같다. 생각보다 복잡하게 접근하진 않는다. 대본에 충실하려고 한다. 자기주장을 많이 내려놓는 게 오히려 다양성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계속 익숙해지고 검증된 연기가 내 안에 생기거든. 많은 배우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런 결의 연기, 이런 톤의 목소리, 표정을 지을 때 반응이 좋더라’ 같은 것에 빠지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 고착화된 형태로, 이미 대중에게 사랑받은, 검증된 선택만 유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어떨 때는 나도 욕심이 난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본전은 될 것 같은데, 안전한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현장에서 모든 걸 열어두고 의견을 귀담아들으려고 한다. 나도 취향이 있고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걸 내려놓고 보니 인물이 풍성해지기 시작하더라. 그런 착장을 하고 이런 분장을 받고 전사를 가지고 연기를 하니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인물을 만들 때 자신만의 방법과 루틴이 있는 배우로 알고 있는데 역할이 많아지고 롤이 커지면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이에 대한 고민과 걱정도 있나. 어떻게 해소하나.
“맞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진 건 사실이다. 관찰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해졌다. 스스로 놓지 말아야 할 게 관찰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소스가 없다. 요즘에는 유튜브나 영상 콘텐츠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경험하고 싶고 관찰하고 싶으면 지금도 나가서 관찰하려고 한다. 관찰할 때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든지 내가 저 사람이 된다고 막연히 믿는다든지, 몰입을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배우는 관객, 시청자들에게 대신해서 전달해 주는 소위 메신저라고 생각하거든. 내가 이 인물을 어떻게 구축했고 이 인물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감상하는 것은 시청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막 도취돼서 집에서도 눈뜨자마자 살인마로 일어나고 그럴 필요까진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위험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절대 접근하지 않고 내가 어떤 행위를 하고 행동할 때 이 인물로 보일까에 대해 파헤치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접근하고 구축한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게 알려지고 주목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을 떠올리면 어떤가. 또 재능은 있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숨은 고수들이 많다. 틈틈이 연극도 보러 가고 영화 아카데미에서 액터스 과정이 신설돼서 분에 넘치게 강의도 하고 있다. 정말 짧은 강의지만 소위 독립 전사들을 보면 겸허해지고 고군분투하던 나의 모습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요즘 산업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좋은 배우들이 많기 때문에 이 배우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되고 표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후배들을 보면 지칠 새가 없구나, 무조건 달려가야 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또 그 친구들도 좋은 응원을 많이 해주고 있어서 사명감도 느낀다. 지치지 말자, 계속 나아가자.”
-차기작과 올해 남은 계획은.
“운 좋게도 ‘착한 여자 부세미’와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두 작품을 병행하고 있다.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 스케줄이 있다는 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 그동안 외형적인 변화를 많이 주는 배우였다면 앞으로는 내면의 감정 변화라든지 섬세함을 더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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