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역주택조합(이하 지주택)이 제도 도입 45년 만에 전면 손질에 들어간다. 그동안 부실한 조합 운영과 자금 투명성 부족 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던 지주택 제도가 대통령 지시를 계기로 '수술대'에 향한 것이다.

"분양가보다 저렴하게, 청약통장 없이, 원하는 동·호수를 지정해 내 집을 가질 수 있다"
얼핏 보면 꿈같은 이야기다. 지주택 제도는 이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많은 사업장이 진행 도중 멈춰 섰고, 조합원들은 수년째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사업 추진 중' 문구만 바라보고 있다.
실제 국토교통부 조사에서도 지주택 '구조적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전체 618개 조합 가운데 절반 이상(316개 조합·51.1%)이 설립인가조차 받지 못하고 모집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이 중 3년 이상 장기 지연 조합도 208개(33.6%)에 달한다. 전체 분쟁 발생 조합 55.1%는 '사업 초기' 조합원 모집 단계에 불과하다. 조합설립인가와 사업계획승인을 받은 조합도 각각 22.5% 수준에 그쳤다.
주요 분쟁 사유로는 △조합원 탈퇴·환불 지연 △토지 확보 지연 △시공사와의 갈등 △공사비 증가 △대행사 자격 미비 등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주택 사업 좌초 사례로는 최근 들어 경기 지역에서 속출하는 분위기다.
# 남양주시 창현 지역주택조합은 토지 확보율을 허위로 공표하고, 조합비를 신탁사가 아닌 일반 계좌에 보관한 사실이 드러나 '주택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조합 내부에선 무더기 제명과 탈퇴 소송이 잇따르는 등 극심한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 하남시에서는 조합 설립 전 토지 미확보 상태에서 '더블역세권 반값 아파트' 문구로 조합원을 모집해 허위·과장 광고 논란이 일었다. 일부 시민은 피해 직전 가입을 철회했지만, 고령층과 무주택 서민이 여전히 광고에 노출됐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 김포 '통합사우스카이타운' 조합은 토지 소유권 분쟁과 함께 930억원 규모 추가 공사비 요구로 인해 분담금이 증가하면서 결국 사업이 무산됐다. 이에 조합원 2500여명이 피해를 면치 못했다.

◆ "계획보다 계약 먼저" 거꾸로 시작하는 사업 구조…조합원 "탈퇴마저도 어렵다"
지주택 제도는 말 그대로 조합 주체로 주택을 짓는 구조다. 무주택자 또는 기존 소형 주택 보유자가 모여 △토지 매입 △시공사 선정 △인허가 △분양에 이르는 모든 사업 과정을 스스로 진행한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지주택 제도 자체가 시작부터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대다수 지주택 사업은 토지 매입 및 인허가에 앞서 조합원을 먼저 모집한다. 즉 확보된 토지나 사업인가도 없이 홍보만으로 계약을 통해 자금과 가입자를 확보한다. '토지 95% 이상 확보'라는 설립 인가 요건은 나중 문제인 셈.
이런 구조 때문에 적지 않은 변수가 발생한다. 토지 확보 과정에서 토지를 팔지 않고 버티는 '토지주'가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토지 확보'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서 사업 인허가는 지연되고, 이에 따른 분담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지주택은 제도적 허점과 관리 부재로 인해 무분별한 모집과 부적격 대행사 개입, 과도한 추가 분담금 요구 등 분쟁이 구조화됐다"라며 "특히 사업 '첫 단추'인 토지 확보 요건이 미비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될 경우 추후 공사비 증액은 필연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수로는 조합 내부 갈등이다. 내홍으로 인해 조합 집행부 또는 시공사가 바뀔 뿐만 아니라 일부 조합원은 '계약 무효'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지주택 사업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대다수 사업 리스크를 조합원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사업 실패나 공사 지연, 조합 운영 차질 등이 발생하더라도 조합원은 납입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계약서에는 '환불 불가 조항'이 명시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탈퇴를 위해선 총회나 조합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물론 이미 납부한 자금은 회수하기 쉽지 않다.
최근 대법원 역시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산 지주택 조합에 가입한 A씨는 지난 2016년 '토지 확보에 실패하면 전액 환불한다'는 조합 확약서를 받았다. 이후 조합은 2019년 조합 설립 인가를 획득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조합 설립 3년 후인 2022년 A씨는 "해당 확약이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 무효"라며 납입금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조합이 실제 사업을 추진했으며, 분담금까지 납입했다는 점에서 A씨 측 계약 무효 주장은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유사한 사례는 서울 지역에서도 발생한 바 있다.
수년째 지주택 사업 진척을 보이지 않자 일부 조합원이 납입금 환불을 요구했지만, 조합 측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지만, 법원은 조합 손을 들어줬다.
업계 관계자는 "다수 지주택 분쟁 사례는 조합원이 기대하는 환불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증명한다"라며 "오히려 환불은커녕 탈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임이 확인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지주택 제도는 남았지만, 신뢰는 떠났다
이처럼 부실 조합 운영과 자금 운영 문제 등으로 분쟁이 잇따르는 지주택이 제도 도입(1980년) 45년 만에 처음으로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이는 '지역주택조합 문제를 살펴보라'는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다.
더군다나 국토교통부 실태 조사에서도 10개 현장 가운데 3개 이상 조합에서 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사업 구조 전반에 대한 제도적 재정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울은 조사 대상 110개 조합 중 절반이 넘는 64곳(57.3%)에서 분쟁이 발생해 수도권 전역 구조적 위험으로 확대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관리 당국은 내달 말까지 실태 점검을 이어가며, 분쟁 조합에 대해 관계기관과 함께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중재에 나설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업 초기부터 공공이 개입해 감시·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할 예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구조적 개편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지주택 제도 개선'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이다. 지주택 제도 본질적 한계와 부실한 관리감독 체계가 문제 근원이라는 점에서 보다 정밀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단순 자격 요건 완화에 그칠 게 아닌 △정보공개 의무 강화 △조합 회계 감시 체계 마련 △탈퇴 시 환급 기준 명확화 등 조합원 보호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주택은 토지 확보 전 조합원을 모집해 사업을 시작하는 구조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라며 "서민이 스스로 개발사업자가 되어야 하는 방식으로, 실패 시 피해가 고스란히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구조"라고 전했다.
이어 "제도적 보호 없이 방치할 게 아니라 공공택지 우선 공급 등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첨언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사업이 멈춰도 조합원은 빚, 돌아가도 빚"이라며 "보다 정밀한 수술이 병행되지 않으면 지주택 제도는 사실상 제도만 남고 신뢰는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서민 주거 안정의 대안'으로 소개됐던 지주택 제도. 그러나 불투명한 사업 추진과 느슨한 규제 틈을 탄 각종 갈등과 피해는 오히려 서민을 등지게 만들었다. 정부가 예고한 제도 수술이 구조적 모순을 해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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