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중견 제약사 환인제약이 적잖은 규모의 자사주 처분을 단행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자사주 처분 계획이 없었다고 밝혔던 데다, 자사주 처분 목적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의 ‘자사주 처분 의무 제도화’ 공약이 빠른 속도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것을 의식한 조치이자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처분 계획 없다더니… ‘이재명 공약’ 의식했나
중견 제약사이자 코스피 상장사인 환인제약은 지난 7일 공시를 통해 자사주 처분 계획을 밝혔다. 보유 중인 자사주 333만3,000주(17.9%)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00만주, 지분 기준 5.38%를 처분키로 한 것이다. 처분단가는 주당 1만2,170원으로 자사주 처분 결정 전날 종가에 5%의 할인율을 적용했다. 이에 따른 총 자사주 처분 규모는 121억7,000만원이다.
자사주 처분 대상은 케이프투자증권 외 국내투자자다. 이에 대해 환인제약은 “회사 및 최대주주와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자사주 처분엔 다소 물음표가 붙는다. 우선, 환인제약은 지난 5월 중순 공시된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에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증대 목적으로 자사주를 취득 후 보유하고 있다”며 “자사주 처분 계획이 없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런데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아 입장을 바꾼 것이다.
또한 환인제약은 이번 자사주 처분 목적을 “유통주식수 증가를 통한 거래 활성화 및 운영자금 확보”라고 밝히고 있다. 우선, 유통주식수 증가를 통한 거래 활성화는 주가 상승 등 주주가치 제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보다 확실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은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이다.
운영자금 확보도 필요성이 모호하다. 환인제약은 뚜렷한 실적 성장세 속에 수익성 또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 매출 2,595억원에 영업이익 214억원을 기록했다. 재무적인 측면도 탄탄하다. 올해 1분기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400억원대이며, 부채비율은 14%에 불과하다.

이에 환인제약의 이번 자사주 처분은 이재명 정부 출범 및 정책 기조를 의식한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본시장 개혁을 통한 주식시장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그 방안 중 하나로 ‘자사주 소각 의무 제도화’를 제시했다.
자사주는 주주가치와 직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자사주를 매입 및 처분은 유통주식수에 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기업의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가에 영향을 준다. 특히 자사주 소각은 기업가치가 그대로인 가운데 총 발생주식수를 줄어들게 해 실질적인 주주가치 상승을 가져온다. 반면, 자사주 보유를 경영권 방어나 승계에 활용할 경우 주주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에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자사주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공약으로 내건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국거래소를 찾아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주식시장 활성화 공약 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정부·여당 차원에서 상법 개정 등 공약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돌파하며 주식시장이 활기를 띄고 있고, 자사주 소각·처분 등 기업들의 대응 움직임도 분주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환인제약은 그동안 자사주 보유를 통해 경영권 방어 효과를 누려왔다. 환인제약은 창업주인 이광식 회장과 장남 이원범 대표의 보유 지분이 23.27%다. 지배력이 공고하지 않은 가운데, 과거 해외 사모펀드들의 공세에 직면해 최대주주 지위를 빼앗기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7.9%에 달하는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대주주 측 지분과 자사주를 더하면 지분율이 40%대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환인제약의 이번 자사주 처분은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를 역행하는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아울러 남아있는 자사주의 향방도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처분 이후 남아있는 자사주는 12.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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