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2018년 일어난 '미투 운동'은 공연예술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돼온 문화예술계의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그 이후 성평등한 창작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로부터 7년,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지난 4일 오후 2시, 2025년 상반기 문화예술분야 성희롱·성폭력 예방 특강을 개최했다. 이번 특강에서는 '성평등한 창작 환경을 위한 실천가이드'를 주제로 이지현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강사가 강연을 맡아 안전한 예술 창작 환경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공유했다.
이지현 강사는 "성희롱은 불쾌한 농담이 아닌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이라며 "성희롱과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성인지 감수성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법과 제도, 문화가 성별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성차별을 인지하고 바꾸고자 하는 태도와 실천 능력을 말한다.
강의에 따르면 예술계는 프리랜서 고용 비중이 높고 위계적 구조가 뚜렷해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인식하고 신고하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다. 실제로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문화예술계 종사자 중 40.7%가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문화예술계 대학(원)생 중 62.5%가 '다른 사람의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문화예술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성희롱·성폭력 유형도 소개됐다. 가장 많은 응답이 있었던 것은 음란한 이야기나 성적 농담이었고 외모에 대한 평가, 불필요한 신체 접촉, 회식 자리에서의 옆자리에 앉도록 요구하거나 술을 따르게 하는 행위 등이 뒤를 이었다. 예술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노출이나 신체 접촉을 강요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들이 여전히 반복되는 이유는 '예술은 자유롭기 때문에 성적인 표현도 허용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강사는 이를 '예술이라는 이름의 성희롱'이라 명명하며 오랜 시간 정당화되어 온 폭력의 문화를 꼬집었다. '예술가라면 성적으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식의 말들이 아직도 현장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계의 구조적인 특성도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게 막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전문가의 길에 들어섰고 대부분이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 일을 하며 인맥과 네트워크 위주로 일자리가 주어지는 예술계에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려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로 임해야 한다.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일상이 깨질까 봐 무서워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 부담스러워서, 이 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 봐,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78.4%는 참고 그냥 넘어가는 해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교육에서는 피해자의 대응과 조력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도 다뤄졌다. 사건 발생 시 중요한 첫 단계는 상황 인식과 초기 진술 확보다. 피해자 본인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가능한 한 빠르게 전문가나 전문 기관에 상담을 요청해야 한다. 사진이나 녹음, CCTV 등의 자료를 빠르게 수집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행법상 성희롱은 가해자의 의도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불쾌하고 모욕적인 성적 언행이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된다.
국내외의 제도적 변화도 주목됐다. 우리나라는 2018년 공연예술계의 자발적 참여로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KTS)'을 마련했으며 2021년 제정된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비 예술인을 보호 대상에 포함하며 법적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 법은 피해자에 대한 심리·의료 지원, 법률 상담, 수사기관 조사 조력, 피해자 보호 시설 연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의 올드빅 극장은 내부 직원 중 상담 역할을 수행하는 가디언을 지정해 피해자가 보다 안전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는 민감한 신체 접촉 장면을 조율하는 인티머시 디렉터 직군을 신설해 배우와 스태프 간 사전 합의를 체계화하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성희롱·성폭력 신고와 예방은 모두가 지켜야 할 책임이자 필수 과제다. 이제는 개인의 용기나 피해자의 희생이 아닌 구조와 시스템으로 안전한 예술 창작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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