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기후변화의 가속화로 ‘에너지 빈부격차’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매일 급변하는 날씨에 냉난방기기 사용량이 크게 늘면서 전력 소비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전기요금은 날이 갈수록 비싸진다. 하지만 이로 인해 취약계층, 전력공급이 어려운 도서지역은 냉난방 혜택을 보기 어려워졌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연구기관, 에너지 업계에선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기술 분야가 바로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이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지역 등 전 세계 국가들이 서둘러 실증에 나서고 있는 만큼, 국내 에너지 업계도 관련 기술 개발 및 도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열낭비 최소화한 ‘5세대 지역냉난방’
‘5세대 지역냉난방(5th Generation District Heating and Cooling Systems, 5GDHC)’란 저온 열원 기반의 분산 에너지망를 이용한 차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이다. 지열·하수열 등 미활용 열원 등을 하나의 에너지 네트워크로 통합, 열손실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고효율 냉난방 가동이 가능하다.
시스템의 특징은 크게 △저온·저온차 운영 △양방향성 △분산형 △효율 극대화다. 이를 통해 온도 차이를 작게 유지,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다. 또한 대규모 중앙 열원이 아니라, 지열·폐열·저온 산업폐열·재생에너지 등을 지역에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이 중 열손실을 최소화하는 ‘분산형’ 특징은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신재생시스템연구실 연구진이 2023년 발표한 연구를 보면 확인 가능하다.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 이전, 4세대 시스템은 30~70°C의 중저온수를 열원으로 사용한다. 때문에 열네트워크 배관에서의 열손실이 발생한다. 반면 5세대 시스템은 5~35°C인 저온수를 활용해 열네트워크 내 온도는 10°C에서 25°C를 유지한다.

시장 가능성도 긍정적으로 점쳐진다. 지역냉난방 시장이 전체적으로 빠른 성장 추이를 보이고 있어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인사이트파트너스’에 따르면 지역냉난방 시장은 지난해 기준 2,140억1,000만달러(약 297조1,742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오는 2031년엔 2,987억3,000만달러(약 414조8,165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서울에너지공사 관계자는 “기존 3세대 냉난방시스템은 화석연료 기반의 고온 열 공급 방식으로 효율은 우수하지만 열손실 문제엔 한계가 있다”며 “이를 대체하는 4세대 시스템은 열원망 운영이 복잡하고 다양한 열원의 통합운영이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5세대 시스템은 지열, 하수열 등 분산된 미활용 열원을 현장 인근에서 활용해 하나의 인프라로 통합 운영한다”며 “때문에 열손실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차세대 친환경 냉난방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후변화·에너지 양극화 ‘두마리 토끼’ 잡는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최근 5세대 지역냉난방이 주목받는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차세대 친환경 냉난방솔루션’이라는 점에 있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기존 냉난방 솔루션 대비 획기적으로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의 연계시 효율적 탄소배출 감축이 가능해서다.
하지만 일부 에너지 업계선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 도입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시스템 도입 후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확실한지 의문을 갖는 것이다. 특히 국내 기후, 에너지 상황에서 시간과 인프라 초기 구축 비용 등 투자 대비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에너지 분야 연구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과 유사한 온화한 기후 조건인 호주 지역에서 5세대 냉난방시스템의 도입이 경제와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최신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지난해 호주 멜버른대학교 공학정보기술학과 재생에너지효율 연구실에서 진행한 연구다.
연구팀은 5세대 지역냉난방시스템을 대학 캠퍼스에 도입할 시 얻을 수 있는 경제적·환경적 영향 평가를 진행했다. 그 결과. 5세대 지역냉난방은 일반 에너지시스템 대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25~28% 저감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소비 비용도 같은 기간 9~29% 절감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지역 내 전기요금 절약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멜버른대 연구진은 “피크, 오프피크 요금제와 소비전력에 대한 시간당 배출 계수를 사용해 전력 비용을 계산한 결과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은 유연성있는 전력 운영을 가능케했다”며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우수해 온화한 기후 지역에서 경제적·환경적 실행가능한 솔루션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주에서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 상용화를 성공적으로 구현하면 새로운 시장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며 “유사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지역의 냉난방 시스템의 확립된 역사가 없는 다른 국가에서도 도입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뿐만 아니라 도심지역 내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이 에너지 공유 측면에서 큰 이점을 가져온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2022년 에스토니아 탈린공과대 연구팀은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의 도심·거주 지역 내 도입시 발생할 수 있는 저온 자원의 통합, 양방향성, 분산형 에너지 흐름 및 가능한 에너지 공유 측면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주거용 건물, 사무실 빌딩, 쇼핑몰, 데이터센터, 전기변압기 등이다.
탈린공과대 연구팀은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은 초저온 난방 및 냉방 온도와 재생 에너지원을 위한 새로운 인프라의 초기 도입 비용은 장애물이 맞다”면서도 “산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적 자원에서 발생하는 저온 폐열을 재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과 지역 경제적 가치와 일자리 발전은 이를 상쇄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이 지금 현재 4세대 시스템을 대체하진 않겠지만 경우에 따라 열 공급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기술 솔루션이 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기술적·경제적 측면은 국가별 사례 연구를 기반으로 추가적인 도입과 사업 진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서울에너지공사, 지열 기반 5세대 도입 추진… ‘에너지 취약계층’ 도움 기대
국내선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 사업은 ‘서울에너지공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너지 공사는 6월부터 서울연구원 부지 일대를 대상으로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 실증사업을 시작했다. 실증 대상지는 서울인재개발원, 서울연구원, 서울데이터센터 등이다.
서울에너지공사에 따르면 이번 사업은 ‘공동주택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 의무화’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제2조 제4호’에 따르면 ZEB는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을 뜻한다.
정부는 이달부터 ZEB 인증 의무화를 확대 시행한다. 최저등급인 5등급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자립률을 2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맞춰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 실증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 서울에너지공사 측 전략이다. 주거·상업·특수 목적 등 건물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구성한다. 그 다음 시간대별 부하 차이를 활용한 냉·온열 상호 교환과 열원 통합 운영하는 방식이다.

서울에너지공사에서는 이번 실증사업이 지역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ZEB 인증 시 최대 20%의 취득세 감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이 활성화될 경우 지역 내 전기요금 감면 효과가 있는 만큼 에너지 취약계층의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서울시 ‘모아주택 사업’과의 연계는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때 핵심이 되는 에너지원은 ‘지열(地熱)’이다. 지열에너지는 말그대로 땅 속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열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서울에너지공사는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을 저층·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지열에너지’ 적용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지열에너지는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과 연계할 시 뛰어난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환경과학연구소 연구팀이 202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지중축열형(BTES) 지열 냉난방 시스템을 적용할 경우 일반 열에너지 시스템들과 비교해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에너지공사는 지열 기반의 5세대 지역냉난방 시스템을 300세대 이상 1,000세대 미만의 민간 공동주택에 우선 적용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공동주택은 ‘서울시 녹색건축물 설계기준’에 맞춰 ‘에너지효율등급 1+등급(에너지소비 120kWh/㎡·yr 이하)’ 이상의 성능이 확보돼야 한다. 이를 통해 최소 ‘ZEB 5등급’인 자립률 20% 혹은 에너지소비 90kWh/㎡·yr 이하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황보연 서울에너지공사 사장은 “지열 기반의 5세대 냉난방 시스템은 건축물의 설계 초기 단계부터 계획에 반영돼야 설비 최적화가 가능하다”며 “초기 기획 단계부터 공사에서 기술 지원 등을 제공해 사업주체인 주택조합의 부담은 줄이고 실질적인 에너지 절감효과는 극대화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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