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전두성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하 대통령)가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자, ‘첫 경기지사 출신 대통령’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 이재명의 정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2022년 국회에 입성한 이재명 대통령의 3년 여의도 정치 인생은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통령도 지난 3년에 대해 ‘참혹한 살육전’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이 당 대표로 선출된 후에 당은 극심한 계파갈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사상 초유의 ‘제1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로 이어졌다. 당 밖에선 윤석열 정부와 싸워야 했다. 부산에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사법리스크는 대선 직전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 ‘소년공’이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
1964년 경북 안동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 대통령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그는 최근 펴낸 자서전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 “나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 다른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내내 소년공이었다"고 적었다.
공장에서 일하던 중 팔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를 당해 장애를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 1986년 사법고시까지 통과했다.
이후 이 대통령의 인생을 바꾼 한 인물이 있었다. 이듬해 사법연수원에서 특별 강사로 초청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들은 이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고도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했고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 대통령의 정치 입문 결심은 2004년이었다. 그는 성남의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주민 발의로 만든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당시 성남시의회 다수를 차지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시의원들에 의해 토론 없이 부결되자 분노했고, 이를 계기로 이 대통령은 정치 입문을 결심하게 됐다.
2006년 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민선 4기 성남시장 선거·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낙선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첫 당선은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이었다. 이후 2014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이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부각한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그는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받게 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19대 대선에 출마한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하게 된다. 다음 해인 2018년, 이 대통령은 민선 7기 경기도지사에 출마했고, 당선된다.
소년공 출신의 정치인이 공식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지난 20대 대선이었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경험을 바탕으로 20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0.73%p(포인트) 차이로 석패하게 된다.

◇ 체포동의안·단식·피습 그리고 ‘사법리스크’
이 대통령은 20대 대선에서 패한 후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다.
이 대통령의 국회 생활 3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이 대통령조차 “대선에서 패배하고 여의도로 갔더니 그때부터는 참혹한 살육전이 벌어져서 매우 힘들었다”(5월 12일 동탄 유세)고 밝힐 정도였다.
우선 민주당 비주류 정치인으로 당내 기반이 부족했던 이 대통령은 2022년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이후 당내 계파갈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계파갈등은 2023년 9월 정점에 달했다. 검찰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이다. 이른바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였다. 다만 법원에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며 이 대통령은 구속을 피하게 된다.
당내에서 계파갈등이 있었다면, 당 밖에선 윤석열 정부와의 전면전이 치러지고 있었다. 2023년 8월 31일 당 대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에 맞선 ‘무기한 단식’을 선언한 것이다. 단식은 24일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 측근 의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단식 때) 정말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도 있었다. 지난해 1월 2일 부산 강서구에서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 방문’ 일정을 소화하던 중 60대 남성에게 피습을 당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흉기로 왼쪽 목 부위가 찔렸지만, 다행히 치명상은 피했다.
사법리스크는 이 대통령의 3년 국회의원 생활 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은 지난해 11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후 이 대통령은 사법리스크로 롤러코스터를 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같은 달 위증교사 사건에서 1심 무죄를 선고받으며 한숨을 돌리게 된다. 또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이 대통령은 선거법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대권 가도에 탄력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3 대선’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대법원이 선거법 사건에 대해 2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이는 민주당 내부의 ‘사법부 개혁 목소리’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논란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법원이 선거법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연기하면서 대선 국면의 사법리스크는 일단락됐다.

◇ ‘총선 압승’과 ‘계엄 해제’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시절 성과도 있었다. 우선 지난해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어 낸 것이다.
민주당은 당시 비례대표 의석을 포함해 총 175석을 얻었다. 다만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명계(비이재명계) 인사들이 대거 탈락하는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해제’를 주도하기도 했다. 한밤중 갑작스러운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 이 대통령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방송에서 “윤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시민들을 향해 “국회로 모여달라”고 호소했다.
그날 밤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모여들어 계엄군을 막아섰고, 당시 야당 의원들과 일부 여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를 열고 계엄을 해제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번 대선의 발단이 됐다. 이 대통령은 선거에서 ‘내란 종식’과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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