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 = 박미리 기자] 임팩트 네트워크 창출을 위한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공유하는 시간이 진행됐다. 과거의 몬드라곤 인터코퍼레이션 문화와 현재 광진구 지역 및 소셜벤처 등 사회혁신기업이 추구하는 임팩트 네트워크 창출 사례를 짚어봤다.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연대경제교육원(이하 교육원)은 29일 종로구에 소재한 사회연대경제교육원 교육실에서 연중 기획포럼 월간 불턱(BULTUK)의 세 번째 행사를 진행했다. 교육원은 사회적경제의 질적 성숙을 도모하고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연중기획포럼 월간 불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임팩트 네트워크’에 집중했다. 특히 임팩트 네트워크는 연대와 협력, 콜렉티브 임팩트, 인터코퍼레이션 등 다양한 형태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으며, 최근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주목하고 있는 개념 중 하나다.
월간 불턱 세 번째 시간은 협동조합의 경영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책 ‘몬드라곤은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잡았나’ 역자 송성호 HBM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이 ‘몬드라곤의 DNA, 인터코퍼레이션 컬쳐, 제도, 시스템, 임팩트’에 대해 강연했고, 박용수 광진주민연대 대표&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이 ‘지역기반 임팩트 네트워크 광진주민연대 WHO&WHY&HOW&WHAT&FUTURE’를 주제로, 전일주 임팩트얼라이언스 기획운영팀장이 ‘소셜벤처&사회혁신기업이 추구하는 임팩트 네트워크’ 사례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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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월간 불턱 세번째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박미리 기자] |
“몬드라곤을 버텨내게했던 ‘인터코퍼레이션’이란”
“몬드라곤에서 인터코퍼레이션에 대해 듣다 보니 단순한 협동조합간의 협동을 넘어서 조합원 간의 협동, 프로젝트를 공유한다는 의미도 강합니다. 또 지역사회의 커뮤니티나, 지역사회의 정부기관, 주식회사, 대학 등과 협동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더라고요.”
송성호 조합원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몬드라곤을 버티게 한 ‘인터코퍼레이션(Intercooperation)’에 대해 강연을 시작했다.
스페인 몬드라곤은 내전으로 쇠락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몬드라곤에 호세 마리아 신부가 부임하면서 지역은 조금씩 달라졌다. 당시 몬드라곤에 살던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고 먹고살기 힘들어 다른나라로 이민을 가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인구는 줄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렇게 이민을 가는 사람이 증가하면 공동체가 붕괴하겠다고 생각해 연대와 협동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기술학교를 설립했고, 도덕성, 재능과 업무역량이 있는 인재를 발굴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도왔다. 이들 중 5명과는 함께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최종적으로 3명이 남아 호세 마리아 신부가 강조한 노동, 공동체, 연대, 절제를 실천하며 끝까지 이어갔다. 1956년에는 난로를 제작하는 협동조합 울고(ULGOR)를 설립했고, 1959년 노동인민금고가 설립되면서 첫 번째 인터코퍼레이션을 위한 제도화가 이뤄졌다. 1966년에는 울고(ULGOR)가 이름을 바꿔 첫 번째 지역그룹 Fagor가 생겼고, 그러면서 재무성과의 리컨버전(재무성과 통합 재분배)이 시작됐다.
리컨비전은 부문의 경우 가입할 때 공유비율을 15%~40% 범위에서 먼저 정한다. 그 다음 지역 그룹들은 그룹 자체에서 정한다. 개별 협동조합이 정하는게 아니라 "우리 그룹은 40%공유한다, 50%공유한다" 등과 같이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이다. 송 조합원은 “쉽게 말하면 각각의 협동조합이 소생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자리를 재배치 해 주는 것보다, 각자가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가 재무성과 리컨비전 제도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터코퍼레이션 시스템은 다양한 임팩트를 창출했다. ▲노동인민금고로 70년대 초 오일쇼크의 충격에서도 부도를 피하고, 새로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었다. ▲Fagor 그룹을 시작으로 재무성과의 리컨비전을 함으로써 연대의 정신을 실천했다. ▲몬드라곤 그룹 본부(MCC)가 운영하는 여러 기금에 출연해 연구개발, 스타트업 투자, 위기 협동조합을 지원함으로써 일자리를 새로 만들거나 유지한다 ▲몬드라곤 그룹 본부(MCC) 가입조건과 인터코퍼레이션 시스템을 통해 몬드라곤 정체성과 문화를 지켰다는게 대표적이다. 송성호 조합원은 노동인민금고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연합체를 구성해야 하고, 인터쿱 시스템이 관료제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깨어있는 조합원 참여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현대사회의 자본주의 문화를 과소·과대평가해서는 안되며 연대의 정신과 문화를 배우고, 그것을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삼을지에 대한 여부를 성장해 조합원 간 나눠야 한다는 점을 배울점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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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 대표가 광진구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박미리 기자] |
“사회변화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광진주민연대
서울시 광진구 지역에서 임팩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광진주민연대는 주민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지역이 갖고 있는 이슈와 문제에 대해 직접 참여하며, 지역사회를 바꾸는 네트워킹 활동을 하고 있다. 박용수 광진주민연대 대표는 “우연히 광진주민연대가 자활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게 되면서, 그동안 수혜자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거나 지역의 문제를 대변하는 운동을 했다. 자활센터를 운영하면서 지역에 사는 가난한 분들을 처음으로 대면해서 만났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이들과 함께 공동체 기업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다”라고 설명했다. 가난에서 시작했지만, 공동체의 협동과 연대를 통해 가난을 이겨낸 것이다. 또한 지역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생협을 조직해서 행복중심생협이 만들어졌고, 지금은 늘푸른가게로 전환해서 지역생협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늘푸른 사회적협동조합은 신용불량자, 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자신 명의의 통장을 개설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갑자기 응급실에 가야하는 등 위급한 상황에 놓은 사람들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5000원~1만씩 모아 급전의 문제를 무담보 무보증, 신용으로 대출해 주는 사업을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빌라 한 호를 임대해 주거 환경이 어려운 3명에 대해 주택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했다. 박용수 대표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난의 문제를 혼자서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광진주민연대가 자활센터를 통해 주로 하려고 했던 것은 가난한 사람끼리 연대와 협동하고, 가난의 문제를 하나씩 극복해 왔던 경험을 해 온 것”이라고 했다.
또한 광진복지네트워크(광사넷)은 광진구 민간복지단체의 연대를 통해 지역사회복지운동을 강화하여 광진구 구민의 사회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 및 실현한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광사넷은 ▲종사자 역량강화 교육 ▲민·관 복지리더 워크숍 ▲광진복지재단 연계와 협력 활동 ▲구내 복지 정책 모니터링 및 제안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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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주 팀장은 소셜벤처&사회혁신조직의 임팩트 네트워크 사례를 발표했다.[사진=박미리 기자] |
소셜벤처·사회혁신기업의 연대와 협력: 임팩트 얼라이언스
2019년 설립된 임팩트 얼라이언스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협의체다. 그 방식 중 하나가 소셜벤처이다 보니 소셜벤처 협의체로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임팩트 얼라이언스는 내부적으로는 네트워크의 커뮤니티를 어떻게 운영하고 만들지에 대해, 외부적으로는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공공에 전달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전일주 임팩트 얼라이언스 기획운영 팀장은 “사회적경제 안에서 무를 자르듯이 딱 떨어지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연대를 통한 돌봄과 나눔에 좀 더 집중하는 조직이 있고, 효과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조직으로 나뉠 수 있는데, 우리는 후자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사회적기업을 창업해 몇년간 운영해 보기도 했고, 소셜벤처 영역으로 넘어온지도 6~7년 되어가는데,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수평적 네트워크에서 조금 더 다층적인 네트워크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경우 아이디어로만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아 불안전한 조직으로 시작을 하는데, 이들 조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조직이 기능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것. 그는 “기본적으로 창업자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단위로 움직여야 한다. 생태계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한 명의 창업자가 해결하지는 않는다”면서 “창업자들에 대한 투자, 교육멘토링, 인력, 커뮤니티 조직화하는 공간, 그 공간을 운영하는 조직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임팩트 얼라이언스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태계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고,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갖고 출발했다”고 했다.
실제로 임팩트 얼라이언스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인 2014년 경부터 청년들을 중심으로 (기존과는) 다른 종류의 사회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소셜벤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따로 진행 하다보니 함께 할 동료가 필요했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빈집을 빌려 셰어하우스를 만들었다. 그러다 몇몇 조직이 성수동으로 이전해오면서 소셜벤처들이 모인 작은 마을이 만들어졌다. 점점 사람이 늘고 조직이 확대되면서 생태계가 더욱 커지려면 ‘우리를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운 좋게 자원이 연결되면서 성수동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공유오피스, '헤이그라운드'를 짓게 됐다. 헤이그라운드는 점차 클러스터로 성장하면서 특히 문재인 정부 때에는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협의체 조직을 준비해 2019년 현재의 임팩트 얼라이언스가 만들어졌다.
전일주 팀장은 “네트워크가 작동될 때 대부분 조직들이 튼튼하고, 허브는 약간만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허브가 제일 튼튼해야 된다”면서 “결국 숙제는 네트워크에서 단단하고 지속가능한 허브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맘스커리어 / 박미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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