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터뷰] "출산, 새로운 시작점 될 수 있어"

맘스커리어

▲ 박라영, 인아린, 김보미로 구성된 PIK 타악기 트리오[사진=PIK 트리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REUNION(재회)’이라는 제목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던 여성 타악기 연주자 세 명이 다시 무대에 섰다. 박라영, 인아린, 김보미로 구성된 PIK 타악기 트리오다. 팀 이름인 PIK엔 타악기 음악의 정수(peak)를 보여주고, 대중의 첫 번째 선택지(pick)가 되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세 사람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만나 대학 시절을 함께 보냈고, 이후 교향악단 단원, 예술학교 출강, 언론사 기자 등 각자의 길을 걸었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거쳐 이젠 엄마 연주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쳤다. 음악으로 돌아온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PIK 타악기 트리오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PIK 타악기 트리오는 저희 세 명, 박라영·인아린·김보미가 함께 만든 타악기 앙상블 팀입니다. ‘PIK’는 저희 이름의 이니셜이기도 하고 대중의 첫 번째 선택지(Pick)가 되고 싶다는 의미와 타악기 음악의 정수(Peak)를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강렬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지닌 타악기 특유의 다채로운 소리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 공연 모습[사진=PIK 트리오]

 

- 세 분이 함께 준비한 이번 공연 제목이 ‘REUNION’입니다. 어떤 의미로 지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랜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살다가 다시 모여 하게 된 첫 번째 공연이었습니다. ‘재회’라는 단어만큼 지금의 저희를 잘 표현하는 말이 없더라고요. 다사다난한 삶의 여정을 각자 걸어온 세 사람이 다시 음악으로 연결됐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또 벅차기도 해서 공연 제목을 ‘REUNION’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 김보미와 딸[사진=김보미]

 

- 멤버 모두 결혼, 출산을 거쳐 육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주자로서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김보미: 아이를 낳고 연주는 물론, 음악 자체와 멀어졌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도 연주자이기에 부부가 모두 연주 활동을 하려면 24시간 상주 이모님을 구하는 방법밖엔 없었거든요. 그러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컸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아기를 직접 돌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커리어가 단절된다는 불안감은 있었으나 아기를 위해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박라영: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하긴 했으나 출산 후엔 연습과 공연 모두 육아와 병행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체력도 떨어지고 마음의 여유도 부족했죠. 둘째 출산 후 출산휴가와 남은 육아휴직을 연달아 사용할 수 있어서 그나마 두 아이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소속된 오케스트라 연주만 겨우 할 수 있었어요. 다른 앙상블이나 솔로 연주는 엄두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또한 그날에 양가 부모님이 교대로 아이들을 돌봐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인아린: 출산 후 곧바로 연주자로 복귀하고 싶었으나 산후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와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회복 후 교육자로 활동을 이어갔으나 연습 시간이 많이 필요한 연주 무대는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현실적인 제약이 정말 많았거든요. 무대에 서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아이 얼굴을 생각하며 이번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 인아린 가족사진[사진=인아린]

 

- 사실 아이를 양육하며 일을 계속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보미: 모든 워킹맘이 그렇듯 육아와 연주를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출산 이후 손의 감각도 예전 같지 않고 연습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연주는 보통 오후 8시에 시작해 오후 10시가 넘어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학교 오케스트라 방과 후 강사로 일했습니다. 오후 4시 전에 모든 수업이 끝났거든요. 이런 와중에도 ‘언젠가 아이가 자라면 다시 무대에 설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습니다.

박라영: 육아휴직 중엔 제가 전적으로 아이 둘을 돌봤습니다. 아이만 돌보다 보니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로서의 보람도 있고 순간순간 벅찬 감정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연습도 하지 못하는데 과연 내가 다시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이 시기에 남편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또 ‘임신해 출산하고 아이도 양육하는데 내가 뭐는 못 할까’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다시 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인아린: 끝없는 헌신이 필요한 육아를 하면서 다시 무대로 돌아가긴 힘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좋은 엄마와 훌륭한 연주자 역할을 동시에 완벽히 해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힘든 시기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특히 전적으로 믿어주는 남편이 있어 버텨낼 수 있었죠.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어’라는 말이 큰 힘이 되었고, 그 말이 결국 현실이 되었네요. (웃음)

 

▲ 박라영과 딸[사진=박라영]

 

- 육아와 연주 활동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모여 연습하는 시간조차 내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김보미: 저희 세 명 모두 일과 육아를 하면서 이번 연주를 준비했습니다. 연습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는데요. 저는 연습하면서 아이의 밥과 학원 스케줄, 그리고 숙제 챙겨주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라 엄마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엄마 잔소리 없이 스스로 모두 알아서 할 나이도 아니거든요. 가끔 저녁에 혼자 밥을 챙겨 먹으라고 돈을 놓고 나올 때는 미안한 마음도 컸습니다.

박라영: 셋이 일정을 맞추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일정이 다 엉키니까요. 연습 장소 섭외, 이동 시간, 가족의 협조까지 다 신경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연습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인아린: 학교 출강, 레슨, 육아에 연습 일정까지 맞추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습 중간 중간 아이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옆에서 챙겨줄 수 없어 걱정만 해야 했습니다. 그런 제약을 감수하고도 이번 연주는 꼭 하고 싶었습니다.

 

▲ 공연 모습[사진=PIK 트리오]

 

- 반대로 육아의 경험이 연주자의 삶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이었나요?

김보미: 저는 감정의 동요나 예민함이 줄어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해심이나 인내심이 강해졌고 이런 마음이 음악을 표현하는 데에도 그대로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더 부드러워졌고 음악도 예전보다 더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 같으면 용납하지 못할 실수에도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박라영: 관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화려한 모습과 기술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감정과 공감에 집중하게 됐죠. 또 우리 연주회에 오는 어린이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더 연주회를 재미있게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육아하기 전까지는 절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인아린: 스스로 훨씬 유연해졌음을 느낍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음악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며 함께 나누고 더 깊어진 소리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사진=PIK 트리오]

 

-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아닌 이상 클래식 공연에선 대부분 7세 이상 입장이 가능합니다. 이번 PIK 트리오 공연은 3세 이상 입장이 가능했는데요. 이런 결정을 한 이유가 있습니까?

부모 관점에서 클래식 공연은 굉장히 진입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대부분 초등학생 이상부터 입장이 가능하니까요. 조용하고 경건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분위기에서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힘드니까 그렇게 정했을 것입니다. 저희도 아이가 어릴 때는 어린이 뮤지컬이나 인형극을 많이 보러 다녔습니다. 클래식 공연은 나이 제한 때문에 갈 수가 없었거든요. 이번만큼은 아이도 와서 들을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중간에 아이들이 지루해서 돌아다니거나 큰 북소리에 놀라 울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영유아에게도 클래식 공연장 문화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또 영유아를 양육하는 부모에게도 클래식 음악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어린아이가 많이 왔는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연주를 집중해서 경청했습니다.

-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여가·문화생활비 지출은 자녀 없는 가구의 1/3에도 못 미친다는 통계 결과도 있습니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 모두 부족한 현실인데요. 예술가 부모로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영유아를 데리고 공연장에 가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비용도 부담되지만 옆 관객에게 폐가 될까 봐 가지 못하거든요. 저는 예전에 5세 이상 입장이 가능한 디즈니 영화음악 콘서트에 딸과 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딸아이는 유치원생이었는데 음악을 듣다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제게 귓속말로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이때 옆자리에 앉은 20대 여성 분이 제게 “음악회 왔으면 아이 좀 제대로 건사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속으로 ‘아이인데 이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 일 이후론 음악회에는 더 이상 가지 않게 됐습니다. 저는 더 많은 예술이 영유아 가정의 일상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관과 예술가들이 가족 친화적인 공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아빠는 문화예술로 마음을 재충전하고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란다면 더 건강하게 성장할 것으로 믿습니다.

- 세 분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팀으로 모였습니다. 어떤 계기와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셋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애들도 많이 키워 놨는데 우리 이제 다시 연주할까?”라는 한마디로 시작됐습니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는데도 서로의 마음이 닿아 있었기에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아이들과 배우자의 협조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무엇보다 20대 때 같이 연습하던 그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서 첫 연습 때는 저희도 울컥하더라고요.

- 엄마가 되어 만난 세 분이 서로에게 달라진 점이나 그대로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라영: 예전보다 대화가 더 깊어진 느낌이에요. 이젠 음악뿐 아니라 인생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신기하게도 저희 셋 모두 출산 시기가 비슷하고 모두 딸을 키우고 있어서 이야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고, 변하지 않은 점은 여전히 20대 같은 저희 마음입니다. (웃음)

김보미: 20대 초반에 만난 저희가 어느덧 모두 40대에 접어들었는데, 놀랍게도 말투나 성격, 서로를 위하는 마음, 음악을 대하는 모습은 그대로예요. 그래서 연습을 할 때마다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그때와는 다릅니다. 챙길 가족이 있고 오롯이 내 연주 준비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럼에도 모두가 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공연 준비에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

인아린: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훨씬 깊어졌습니다. 엄마가 된 이후에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큰 위로를 받습니다. 연습하다가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나누며 눈시울이 붉어진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나 열정 가득한 마음은 대학 시절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이 다시 연주하려면 어떤 사회적 변화나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장, 예술기관, 교육 현장에서 경력이 단절된 예술가를 위한 무대와 채용 기회가 더 많이 마련돼야 합니다. 하나 우리나라에 경력단절 연주자를 지원하는 정책은 전무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예 결혼이나 임신을 계획하지 않는 연주자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연주자로서 삶을 다시 시작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라는 것과 ‘설 무대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육아를 이해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연주자들이 무대로 다시 돌아오는 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PIK 트리오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공연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특히 가족 단위 관객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무대를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영유아와 부모를 위한 음악회, 그림책과 함께하는 음악회 등 서서히 활동 분야를 넓혀가며 타악기의 가능성을 널리 알리는 팀이 되고자 합니다.

- 엄마이자 워킹맘 선배로서 출산을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아린: 출산, 육아로 누구나 힘든 순간이 찾아오지만 아이 덕분에 더 단단해진 자신을 만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곧 꿈을 이뤄나갈 날들이 펼쳐질 겁니다.

박라영: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잠시 멈췄더라도, 음악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모든 걸 할 수 있답니다!

김보미: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분명히 포기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연주를 하는 제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육아로 잠시 경력을 내려놓을 수는 있으나 마음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기회가 또 찾아옵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요. 임신과 출산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출산이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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