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광주=손지연 기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7일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계엄령 위반으로 수감돼 옥중 단식 투쟁 끝에 숨진 박관현 열사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후보는 박 열사 사망 뒤 해당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며 “저 역시 오월의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신군부의 비상계엄 선포 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운동권 출신’임을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로 파면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선 명확한 선 긋기 없이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권유한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과 자신의 입장은 다르다며 “대통령 탈당 문제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고 일축한 바 있다. 그는 광주를 찾은 이날 윤 전 대통령이 탈당 선언하며 “백의종군하겠다”는 데 대해 “그 뜻을 존중한다”고 답했다. 계엄을 옹호해 온 윤 전 대통령 강성 지지층의 이탈을 우려한 소극적인 태도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운동권 강조하며 울먹... 비판 목소리엔 “아무것도 모르고 소리 질러”
김 후보는 이날 오전 8시 30분께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김 후보 도착 전 광주전남촛불행동 대학생 6인은 ‘내란후예 광주방문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내란세력 물러가라”, “내란공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참배 방문을 반대했다.
마이크를 든 대학생은 “내란공범, 내란세력이 대통령 후보라고 뻔뻔하고 당당하게 이곳을 찾았다”며 “5·18 당시 정호용은 계엄군이었다”며 일침했다. 국민의힘이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가담한 정호용 전 국방장관을 상임고문으로 임명했다가 논란이 되자 5시간 만에 철회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른 시간대인 만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민주묘지를 방문했을 때와 같이 참배를 반대하는 인파가 몰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묘역을 방문한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김 후보의 참배에 거부감을 보였다.
김 후보는 민주묘지 방명록에 “오월 광주 피로 쓴 민주주의”라고 적은 후 묘역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 소복을 입은 고령의 유족들을 만나 계단 오르는 것을 부축했지만 유족은 부축에 응하지도, 김 후보를 바라보지도 않고 냉랭한 모습을 보였다. 김 후보는 묘역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추도식 참여를 위해 마련된 의자에 착석한 유가족들을 만나 목례를 보냈지만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김 후보는 박 열사의 묘비 앞에서 “단식하던 박관현 열사가 죽음을 뒤로 한 광주 교도소 방에서 1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며 “박관현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다. 5월을 생각하면 늘 너무나 아픈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발언 도중 여러 차례 울먹이며 비통함을 드러냈다. 발언 뒤 묘비 옆에 앉아 묘와 비석을 함께 쓰다듬기도 했다.
이후 광주교도소 터를 찾아 “교도관이 독방에 (나를) 집어 넣으면서 하는 얘기가 ‘여기가 박관현이 죽어나간 데니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하라’고 했다”며 “저로서는 교도소에서 만난, 죽고 난 뒤 만난 인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광주에 오면 매년 박 열사 묘소 참배하는데 (박 열사) 누님이 아직 살아있다”며 “누님이 동생 생각하며 계속 우는 데 아픈 추억이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5월 정신은 남을 미워하거나 공격하는 수단이 아니다”라며 “아까 저보고 고함치는 사람들 있지만 그 사람들이 5월의 아픔을 알겠나. 아무것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는 데 그 모든 게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인권을 향상시키는 그런 아픔으로 생각하고 정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김대중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전북 현장 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도 “그 현실과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저에게 여러 가지 험한 말을 쏟아붓는 것을 보며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게 할 수도 있고 좋아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역사란 것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상 민주묘역 앞에서 참배 반대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들을 향해 ‘자신이 경험한 5월의 아픔을 모르면서 공격한다’고 반발한 셈이다.
또 “우리는 계엄은 겪어봤지만 이런 독재는 처음”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을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수사 검사를 탄핵하고 검찰총장, 감사원장, 대법원장 청문회에 더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리스크를 법 개정을 통해 막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이 탄핵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게 민주주의냐. ‘5월 정신’이냐”며 “5월의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서 5월을 뜨겁게 아파했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고 했다.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로 파면에 이른 점은 ‘그렇다 치자’며 그 위헌성에 대해 짚지 않고 넘어가면서도 상대 당의 잘못에 대해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독재다’라는 논리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그러면서 “저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유, 인권을 지켜야 할 숭고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민주주의 승리, 광주 5월 정신의 승리를 향해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울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 5·18민주묘역에선 ‘독재 피해자’, 尹 탈당엔 ‘친윤’… 엇갈린 행보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당을 위해 떠난다”며 자진 탈당을 선언했다. 이에 이날 현장을 찾은 기자들은 선대위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이후 김 후보에게 ‘입장을 밝혀 달라’며 캠프 측에 질의응답을 요청했다.
김 후보 측 이충형 대변인은 “다음 일정에 늦어 질답(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수 없다”며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기자들은 전날에도 김 후보가 현장에서 질의응답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점을 들며 탈당 관련 입장 표명을 꺼리는 모습에 거세게 항의했다. 이 대변인이 두 차례 거절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대변인은 기자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앉아있자 다른 질문은 받지 않고 탈당 관련 입장만 밝히겠다고 강조한 뒤 김 후보가 등장했다.
그간 당내에서 출당과 제명,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요구하며 계엄과의 선 긋기를 명확히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강성 지지층과 자유통일당 등 극우세력의 지지율에 편승한 김 후보는 “당을 위해 백의종군하고자 탈당한다”는 윤 전 대통령의 뜻을 ‘존중’했다.
김 후보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께서 탈당의 입장을 본인 페이스북에서 밝히셨는데 대통령의 탈당을 저는 존중한다”며 “앞으로 대통령께서 이제 재판 잘 받으시고 잘 되길 바라고 그 뜻을 저희들이 받아들여 당이 더 단합하고 혁신해 국민의 뜻에 맞는 그런 당으로, 그런 선거운동으로 그런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어 “건강 잘 유지하시길 바란다”는 당부까지 덧붙였다. 당내 일각에선 계엄과 탄핵에 선을 긋기 위해 윤 전 대통령의 ‘출당’ 필요성까지 제기됐지만 김 후보는 “사전 조율은 없었다”며 손을 내저은 뒤 서둘러 퇴장했다.
사실상 윤 전 대통령 지지층을 껴안기 위해 ‘윤석열 책임론’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후보가 운동권 출신이자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유권자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있지만, 계엄을 선포하며 국론 분열에 가장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판단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묘역 참배 당시 김 후보를 마주한 유가족은 “내란범이”라며 거세게 항의했고, 소복을 입은 한 유가족은 “사람 두 번 세 번 염장 지르냐. 내란 세력들이 어디 오냐”고 격노했다. 김 후보가 강조한 ‘오월의 아픔’이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단순한 감정 표출을 넘어 보수 정치권 내부의 과오에 대한 실질적 책임 묻기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부분이다.
김 후보는 이날 광주에서 “이 영령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정치를 똑바로 해야 한다. 부패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독재하는 그런 정치는 ‘절대 안 된다’는 명령이 광주 5.18의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명령’ 앞에서, 김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아무런 책임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17일 오전 광주 북구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기 위해 당 지도부와 대열을 정리하는 모습. 뒷편에서는 광주전남촛불행동 대학생들이 “내란세력 물러가라”, “내란공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참배 방문을 반대했다. 김 후보는 시위대의 반발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바로 뒤 일정인 광주교도소 터에서 이들을 "아무 것도 모르고 소리 지른다"며 비판했다. / 촬영=손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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