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손태규 칼럼니스트] “한국의 축구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일본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의 말. 기분은 나쁘지만 새겨듣지 않을 수 없다.
파울루 벤투가 이끌던 대표 선수들이 일본에 연거푸 3대0으로 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제축구연맹 순위 일본 15위, 한국 23위는 허투루 매겨지지 않았다. 이제 두 나라 수준 차는 웬만한 축구인들도 인정할 정도.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3대0 패배 등 시합 전적만이 두 나라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두 나라 선수들의 해외 진출 현황은 실력 비교를 위한 객관 지표의 하나. 한국축구가 일본을 따라잡기 쉽지 않음을 알게 해준다. 양과 질 모두 한국은 상당히 뒤져있다. 차이는 커 보인다.
현재 두 나라 축협의 공식 발표 명단을 보면 한국은 국가대표 28명 가운데 18명, 일본은 27명 가운데 22명이 해외파. 일본이 4명 더 많다. 언뜻 보기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나라 선수들이 뛰는 리그와 구단의 질은 아주 다르다.
한국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손흥민·황희찬, 독일 분데스리가 1 이재성, 프랑스 리그 1 이강인에다 영국 2부 챔피언십 엄지성·배준호·양민혁 등 유럽 5대 리그 선수는 7명.
나머지 11명은 아랍에미리트 박용우·정승현·조유민·원두재·권경원 등 5명, 스코틀랜드 양현준, 네덜란드 황인범, 세르비아 설영우, 벨기에 오현규, 일본 오세훈, 영국 3부 백승호 등이다. (독일 바이에른 뮌헨의 김민재 선수가 복귀하면 1명이 더 늘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리그 1 이토 준야(랭스)·미나미노 다쿠미(모나코) 등 5명, 프리미어리그 미토마 카오루(브라이튼)·엔도 와타루(리버풀)·카마다 다이치·스가와라 유키치 등 4명, 분데스리가 1 이토우 히로키(뮌헨)·마치노 슈토(킬)·도안 리츠 (프라이부르그) 등 4명, 스페인 라리가 1 쿠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 이탈리아 세리에 A 스츠키 자이온(칼초).
여기에 영국 챔피언십의 다나카 아오(리즈 유나이티드)를 포함하면 유럽 5대 리그 선수만 16명. 나머지 6명은 스코틀랜드 2명, 네덜란드 1명, 포르투칼 1명, 벨기에 1명, 스위스 1명 등이다.
한국은 국가대표 18명 해외파 가운데 12명이 유럽 구단 소속. 일본은 해외 진출 22명 모두 유럽파다. 유럽 5대 리그 1부만 비교하면 리그 1 1명(한국)대 5명(일본), 프리미어리그 2대 4, 분데스리가 1대 4, 라리가 1 0대 1, 세리에 A 0대 1. 한국은 4명뿐이나 일본은 15명. 일본이 4배 가까이 많다. 압도하는 숫자라 할 만하다. 리그도 더 다양하고 명성 높은 구단 수도 더 많다.
특히 일본의 15명 가운데 13명이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뛴다. 한국은 손흥민 외에 확실한 주전 선수가 없다.

◆ 세계 최고 리그의 구단이 일본 선수 선호하는 이유는 ‘실력’
두 나라 선수들의 실력 차는 세계 최고 리그의 구단들이 얼마나 많은 선수를 데려가고,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 데서 확연히 구별할 수 있다. 구단들은 일본 선수들이 한국 선수보다 더 낫다고 판단하기에 더 많이 이적시키고 주전으로 뛰게 할 것이다.
또 하나 두드러진 점은 중동에는 한 명의 일본 대표 선수도 없다는 것. 한국의 5명과 현격한 대비. 아무래도 유럽보다는 수준이 떨어지는 곳임을 생각하면 썩 유쾌한 실상은 아니다.
세리에 A에 일본 골키퍼 스즈키가 진출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 원래 한국 골키퍼들이 우수해 일본 J리그에서 많이 영입해 배운다고 한국 축구인들은 얘기한다. 그러나 한국 골키퍼가 유럽에 진출한 적은 없다. 일본은 후지타 조엘 치마도 벨기에 신트트라위던 주전 골키퍼로 활약 중.
국가대표를 포함한 일본의 해외 진출 선수 전체 숫자는 물론 리그나 구단 수준에서 한국에 많이 앞서 있다.
한국은 유럽의 각국 1·2부 리그에 31명이 나가 있다. 그러나 5대 리그에는 프리미어 1부 2명·2부 3명, 분데스 1부 2명·2부 1명, 프랑스 리그 1 1명 등 6명뿐이다.
일본은 영국 1부 6명·2부 8명, 독일 1부 8명·2부 4명, 프랑스 1부 6명, 스페인 1부 2명, 이탈리아 1부 1명 등 35명. 한국보다 6배가량 많다.
한국은 유럽 각국 1·2부 리그 31명 외에 3·4부에 10여 명이 나가 있다. 중동에는 사우디아라비아 1명, 아랍에미리트 6명, 카타르 1명 등 8명이 진출했다.
그러나 일본은 벨기에 15명, 네덜란드 6명, 포르투갈 4명 등 63명이 유럽에 있다. 일본은 몇 년 사이에 2명이 중동 구단으로 갔으나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한국은 유럽 3·4부에다 중동까지 합쳐도 50명 남짓. 그러나 일본은 유럽 1·2부에만 68명이 해외파다. 유럽 전체 나라의 1·2부만 따져도 일본이 한국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렇게 해외 진출 숫자가 많은 것은 일본 인구가 한국보다 2.4배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축구 선수도 많은 결과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 많다고 축구 잘하지 않는다. 유럽 축구 강국들 가운데 한국보다 인구가 적은 나라가 많다. 스페인은 한국보다 적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 모두 한국보다 1천만-1천5백만 명쯤 많을 뿐. 다들 일본보다 인구는 훨씬 적으나 일본보다 축구를 훨씬 더 잘한다.
◆ 축구계 풍토와 축협 쇄신없이 한국 축구 발전 없다!
그러한 변수보다는 축구인들의 태도·문화와 축구협회 조직 등 두 나라 축구계의 풍토·환경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결과를 빚은 것으로 봐야 한다.
첫째 축구계의 나쁜 풍토.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독일 청소년 대표 감독 데트마어 크라머를 초빙했다. 크라머가 가르친 일본은 도쿄 올림픽에서 사상 첫 8강 진출. 68년 멕시코 올림픽 동메달. 모두 그가 뮌헨 감독을 맡아 일본을 떠난 뒤의 일.
그런데도 일본 기자는 “크라머를 얻은 것은 더 없는 행운. 그 없이 일본축구의 오늘은 없을 것이라 단언해도 좋다”고 적었다. 일본 대표 감독·축구협회장·IOC위원을 지낸 오카노 쥰이치로는 “그는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기본을 일본에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그런 크라머를 총감독·기술고문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는 1년 남짓 만에 쫓겨났다. 일본 축구인들의 열린 자세와는 달리 축구인들의 꽉 막힌 자세와 심한 텃세 때문. 김삼락 감독·김호곤 코치 등이 그를 아예 무시했다. 혼자서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주전 선수 혹사 등 축구계의 온갖 악습을 고칠 수 없었다.
크라머를 몰아냈던 축구계 풍토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30여 년 뒤 그런 풍토가 위르겐 클린스만을 만들고 한국축구는 크게 실패했다. 같은 1년 반 동안 일본은 100년의 가르침을 얻었다. 한국은 얻기는커녕 아예 쫓아 버렸다.
둘째는 두 나라 축구협회의 차이.
두 나라 축협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국은 족벌 장기집권 체제. 회장 뽑느라 온갖 잡음과 말썽을 일으켰다. 일본은 그런 협회가 있은 적이 없다. 회장 선출로 시끄러웠던 적도 없다.
일본축구협회 ‘회장 장기집권’은 이미 47년 전에 끝난 유물. 1994년부터는 축구인 회장 시대가 열렸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회장 8명 가운데 6명이 국가대표 선수. 3명은 일본 대표 감독. 그런 체제 속에서 모리야스 하지메 국가대표 감독은 어떤 학맥 등도 없이 순수 실력만으로 뽑혔다.
이에 비해 한국은 4촌 간인 정몽준 16년, 정몽규 12년으로 형제 회장의 28년째 독식이다. 두 정 회장 모두 축구 선수 경력이 전혀 없다.
23년 선임된 일본축구협회 회장은 45세. 사상 최연소. 월드컵 출전 선수의 첫 회장. 국제 스포츠 지도자를 키우는 FIFA 마스터를 졸업했으며 S급 지도자 자격도 얻었다. J리그 감독과 협회 각종 행정 실무를 두루 경험했다. 한국 회장과 극명한 대비다.
이런 장기 족벌체제 속에서 정몽규 회장 선임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이 국회 청문회에서 다뤄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왜 한국보다 일본 선수들이 유럽 최고 구단들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가? 두 나라 축구계 풍토와 축구협회 행태의 차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열린 축구계 풍토와 안정된 축협체제에서 더 좋은 선수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유럽 축구 관계자들 눈에도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한국축구가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나쁜 풍토와 행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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