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SK그룹의 이번 사장단 인사는 AI 사업의 성장 기회를 실제 수익으로 연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SK하이닉스는 기술 개발을 지휘하던 사장을 미국 고객 접점에 전진 배치했고 SK이노베이션은 전력시장 전문가에게 미래 전략을, 전략·재무 전문가에게 기존 사업의 수익성 강화를 각각 맡겼다. 기술과 고객, 에너지와 자본을 연결할 베테랑 인재들을 사업 현장 전면에 내세운 '실속형 전장 배치'라는 평가다.
주요 최고경영자(CEO) 유임을 통한 안정 기조 속에서도 사업별 처방전이 달랐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반도체는 이미 확보한 경쟁력을 글로벌 고객 관계로 굳히고, 에너지·화학은 사업구조와 수익 기반을 원점에서 재정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교체 규모보다 각 경영진의 경험을 어디에 투입할 지를 철저히 따져 배치한 인사다.

◇안현 사장의 미국행…AI 메모리 경쟁, 고객의 설계 단계로
이번 인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대목은 SK하이닉스가 미국 현지에 사장급 미주총괄을 신설하고 안현 사장을 투입한 점이다. 안 사장은 HBM과 SOCAMM 등 차세대 AI 메모리 개발을 이끈 인물이다.
안 사장의 경력은 기술과 사업 전략을 함께 다룬다는 특징이 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말 그를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D램·낸드·솔루션 개발을 결집한 개발총괄을 맡겼다. 당시 회사는 미래기술연구원과 경영전략, 솔루션 개발 등 핵심 보직을 거친 이력을 발탁 배경으로 설명했다.
미국 고객과의 기술 협력도 새 과제만은 아니다. 지난해 말 발표한 2026년 조직개편에서는 미국·중국·일본의 글로벌 AI 리서치센터를 안 사장이 맡아 컴퓨팅 시스템 연구와 빅테크 협력을 강화하도록 했다. 이번 미국행은 그 흐름을 현지 사장급 사업 체제로 확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AI 메모리 시장은 고객사가 원하는 성능과 전력 소모, 시스템 구성에 맞춰 개발 방향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고객의 차세대 제품 계획을 일찍 파악할수록 필요한 기술과 생산능력을 준비하기 유리하다. 개발 경험과 전략 판단 역량을 가진 사장이 현지에 상주하면 글로벌 빅테크와의 기술 협의와 사업 의사결정을 연결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배치는 미국 영업조직의 격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재의 HBM 판매 성과를 다음 세대 제품의 공동 개발과 장기 거래로 이어가려는 조직적 대응인 셈이다.
◇차선용·윤풍영 사장 배치…기술의 다음 세대와 사업의 다음 단계 준비
안 사장의 이동 이후 개발총괄을 차선용 미래기술연구원장에게 맡기고 연구원장까지 겸임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객 가까이에 개발 경험자를 보내면서 내부에서는 선행 연구와 제품 개발의 연결을 강화하는 구조다.
차 사장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를 이끌어 왔다. 지난해 SK하이닉스가 양산용 고개구수 극자외선 노광장비인 ‘하이 NA EUV’를 도입했을 때도 미래기술연구원장으로서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위한 인프라 확보의 의미를 설명했다.
연구와 개발을 함께 맡기는 인사는 장기 기술 과제를 실제 제품 일정과 맞추는 데 유리할 수 있다. 다만 고객의 단기 요구에 대응하면서 장기 연구의 자원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도 커진다. 겸임 자체보다 연구 성과를 양산 가능한 제품으로 전환하는 속도와 완성도가 평가 기준이 된다.
윤풍영 사장의 코퍼레이트센터 총괄 선임은 기술 외의 성장 기반을 보강하는 인사로 풀이된다. 윤 사장은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를 거쳐 SK C&C에서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등 디지털 사업을 이끌었다. 투자와 사업 운영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올해 7월부터 글로벌성장TF를 맡아 온 그에게 코퍼레이트센터를 맡긴 것은 중장기 전략을 회사의 실행 체계와 연결하려는 선택으로 읽힌다. 다만 이번 직책 이동만으로 특정 인수합병이나 투자 계획을 예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권한과 후속 조직개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승일 사장은 전력 전환, 강동수 사장은 수익 기반…성장과 재무를 함께 묶어
SK이노베이션의 인사에는 사업 체질 개선 의지가 명확히 담겼다. 정승일 총괄사장의 핵심 과제로 전력사업자로의 전환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한국가스공사 사장,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거쳤다. 가스 조달과 발전, 송배전망, 전력시장 제도를 서로 다른 위치에서 경험했다. 그룹 합류 이후에는 SK㈜ 미래성장 담당과 SK하이닉스 에너지TF를 맡았다. 반도체의 전력 확보 과제를 다뤄 온 경력이 에너지 사업의 전환 전략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전력사업은 발전소를 짓는 것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연료 조달 가격과 전력 판매 조건, 송전망 접속, 인허가 등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AI 인프라 확대로 전력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 사장의 경력은 이 연결 구조를 설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기반도 이미 존재한다. SK이노베이션은 2024년 11월 SK E&S를 합병해 LNG와 발전사업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했다. 이번 인사는 확보한 사업을 전력 중심 성장전략으로 구체화하는 후속 단계로 볼 수 있다.
강동수 사장은 이 전환에 필요한 재무·운영 기반을 맡는다. SK이노베이션의 포트폴리오와 전략·재무 부문을 거친 그는 2024년 SK E&S 합병 당시에도 전략·재무 경영진으로 합병 설명에 참여했다.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과 그 안의 재무 논리를 아는 인물이다.
SK㈜에서 그룹 차원의 포트폴리오 관리를 담당하던 강 사장이 SK이노베이션과 SK에너지를 함께 맡는 것은 재편 이후의 운영 성과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배치다. 기존 정유·에너지 사업의 현금을 어떻게 확보하고, 어느 신사업에 얼마를 투자할지 연결하는 역할이 중요해졌다.
정 총괄사장이 경영 전반을 총괄하되, 전력 등 신사업 육성과 기존 사업 수익성 강화에 각자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구도다. 단순한 업무 분리보다 투자 속도와 재무 여력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체제로 평가할 수 있다.
◇김원기 사장 겸직·전략 인재 발탁…확장보다 수익 전환에 무게
김원기 SK엔무브 CIC 사장에게 SK지오센트릭을 겸직시킨 것도 수익성 중심의 배치로 보인다. 기유·윤활유 사업에서 쌓은 수익 창출 경험을 화학사업의 경쟁력 개선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윤활유와 석유화학은 제품 구조와 경쟁 환경이 다르다. 한 사업에서의 성과가 다른 사업으로 그대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겸직의 성과는 공통 운영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제품별 투자 우선순위를 얼마나 정교하게 조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지주사 SK㈜에서 장용호 대표를 유임하고 SKC 전략부문장인 김선혁 사장을 발탁한 것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SK이노베이션 전략본부장 출신 권영수 사장을 배치한 것 역시 사업 현장에서 전략을 다룬 경험을 그룹 조정 기능에 활용하는 인사다.
이 흐름은 사업을 정리하는 의사결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남긴 사업의 수익성과 투자 효율을 높이겠다는 방향으로 읽힌다. 앞으로는 매각·합병 건수보다 차입 부담과 현금흐름, 투자 이후 수익률이 리밸런싱의 성과를 설명하게 된다.
◇추형욱 사장의 동남아행…해외 진출도 지역별 사업 실행으로
동남아 총괄을 신설하고 추형욱 사장을 배치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추 사장은 SK E&S를 이끌며 LNG와 재생에너지·수소·에너지솔루션 등 복수 사업을 다뤄 왔다. 합병을 앞둔 2024년에는 LNG 가치사슬과 안정적인 이익 기반을 바탕으로 통합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번 인사에서 확인되는 역할은 동남아 지역 총괄이다. 이를 특정 사업의 수주나 투자 확정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다만 해외 에너지 사업 경험을 가진 경영자에게 지역 단위 조정을 맡겼다는 점에서, 계열사별 해외 진출을 현지 사업 기회와 연결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윤병석 SK가스 사장을 SK디스커버리 대표로 내정한 것도 사업 전환 경험을 상위 전략에 활용하는 사례다. SK가스는 그의 재임 중인 2024년 말 LNG·LPG 복합발전소 울산GPS의 상업운전을 시작하며 기존 LPG 사업에서 발전으로 영역을 넓혔다. 새 대표 송경열 사장에게는 밸류체인 고도화와 재무구조 개선이 맡겨졌다.
이번 인사를 관통하는 것은 성장 기회와 자본의 배분을 함께 다루겠다는 방향이다. SK하이닉스는 고객 가까이에서 다음 기술을 준비하고, SK이노베이션은 전력 수요를 새 수익원으로 만들며, 지주사와 수펙스는 사업 재편과 자원 배분을 뒷받침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는 성과를 가를 지점도 분명하다"며 "미국 현지 조직이 차세대 고객·제품 확보로 이어지는지, 전력사업 전환이 투자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계약과 수익으로 구체화되는지, 기존 사업의 현금 창출력이 개선되는지가 중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SK가 배치한 경영진의 전문성은 이 연결이 실제 작동할 때 비로소 그룹의 경쟁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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