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광주=김두완·박설민 기자 “빛은 무엇일까.” 김경택 기초과학연구원(IBS) 상대론적 레이저과학 연구단장이 레이저 연구를 시작한 계기다. 궁금증을 따라 연구해 온 그는 이제 광주에서 초강력 레이저로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을 확인하려 한다. 준비는 길다. 온도와 습도, 진동을 관리하고 장비를 점검하며 원하는 실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에게 레이저 시설을 갖추는 일은 다음 실험을 준비하는 출발점이다.
◇ 익숙한 빛으로 확인하는 자연 법칙
레이저는 빛의 파장과 진행 방향 등을 정밀하게 맞춰 만든 빛을 말한다. 좁은 곳에 집중시킬 수 있어 피부과에서 점을 빼거나 공장에서 금속을 자르는 데 쓰인다. 광주에서는 이 빛을 훨씬 강하게 집중시켜 자연 법칙을 확인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시사위크’는 지난 15일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김경택 기초과학연구원(IBS) 상대론적 레이저과학 연구단장을 만났다. 빛으로 무엇을 알아내려는지, 실험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물었다.
연구단이 활용하는 시설 중 하나는 4페타와트(PW) 레이저다. 순간 출력이 4,000조와트에 이른다는 뜻이다. 100와트짜리 전구 40조개를 동시에 켰을 때와 맞먹는 출력이다. 다만 전구처럼 계속 빛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플래시처럼 극히 짧은 순간에 빛을 내보낸다. 김 단장은 이 강력한 빛을 한곳에 집중시키면 물질 속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조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연구단 이름에도 ‘상대론적’이라는 말이 붙었다.
연구자들은 왜 이런 조건을 만들까. 일상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 단장은 자연에 대해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에서 더 나아가려면 아직 실험으로 검증하지 못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봤다. 연구단은 아주 강한 빛과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가 만났을 때 이론에서 예상한 변화가 실제로 나타나는지 확인하려 한다.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다르다면 그 이유를 찾아 자연 법칙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것이다.
출력만 높이면 실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단장은 레이저가 온도와 습도, 진동, 장치 상태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원하는 조건으로 빛을 내보내고 실험을 반복했을 때 결과를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연구단의 역할에 대해 시설을 구축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레이저를 실제 연구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그 결과를 과학적 이해로 연결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 단장은 이 시설을 “특정 지역만을 위한 시설이라기보다 국가의 연구 기반”이라고 표현했다. 광주에 자리하고 있지만 전국의 기업과 연구기관이 시설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소통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장비와 인력에 축적된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설을 갖춘 이후에도 실험을 이어갈 안정적인 운영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봤다.
◇ 수년 뒤 장비를 지금 계획… 연구 변화 반영할 방법은
김 단장이 우선 과제로 꼽은 것은 예측 가능한 예산이다. 한정된 예산이라도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를 쓸 수 있는지 알아야 그 안에서 효율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10년 내지 20년, 30년 플랜을 가지고” 주어진 예산을 어떻게 최적화해 쓸지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원 규모뿐 아니라 운전과 유지·보수, 전문인력 확보에 필요한 비용을 장기 계획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장비 도입은 예산을 미리 계획해야 하는 행정과 실험 결과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연구가 만나는 지점이다. 김 단장은 취재 당시 작성하던 운영계획서에 2028년에 사용할 장비를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년 뒤 필요한 장비를 지금 계획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사이 새로운 결과가 나오면 후속 실험에 필요한 장비가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장비가 갑자기 고장 나는 상황도 생긴다. 그는 장비 수요를 미리 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변화를 예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단장도 사전 검토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필요한지 충분히 살피지 않고 장비를 구입하거나, 사놓은 장비를 쓰지 않는 일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획에 없던 수요를 검토하는 상시심의 절차도 있다고 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그 절차가 복잡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예산을 계획적으로 집행하면서도 새로 생긴 연구 수요에 대응하려면 어떤 절차가 적절할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기존 절차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어디에 어려움을 겪는지 살피는 것도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안전관리에서도 규정과 현장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고 봤다. 김 단장은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는 일과 함께 그 기준이 연구자와 시설 운영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규정과 감독 체계만 늘어나면 현장의 부담이 커지고 관리 효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현장의 특성을 이해하고 필요한 교육과 지원을 제공하는 적극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주문했다. 안전기준을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교육과 운용 여건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단장은 “우선 시급한 과제는 초대형 연구시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장기 투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 계획을 세우되 실험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해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행정과 새로운 결과를 따라 실험을 이어가려는 연구 현장이 계획을 조정하고 협의할 여지를 어떻게 마련할지가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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