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오는 17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37년 만의 오너 경영 복귀 이후 조선업 호황을 바탕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두고 인공지능(AI)·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 사업 투자에도 속도를 냈다는 평가다. 다만 중국 조선사들의 추격과 방산 수주전, 노사 갈등 등 풀어야 할 현안도 적지 않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오는 17일 취임 1주년을 맞지만 별도의 행사나 기념사 발표 없이 미래 사업 현장을 챙기는 실용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는 최근 글로벌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굵직한 일정을 연이어 소화하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항해뿐만 아니라 기관·안전 업무까지 수행하는 ‘AI 함정 자율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공개한 데 이어 내달에는 미국 방산 AI 기업 안두릴과 공동 개발한 무인수상함 진수식을 연다. 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만큼 진수식에는 정 회장이 직접 참석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 취임 1년 성적표 압도적…15조 국내 투자 포문
정 회장 취임 이후 HD현대는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취임 후 첫 실적인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1조7024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3배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2분기에는 영업이익 4조1246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상반기 영업이익도 6조9594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실적(6조996억원)을 넘어섰다.
정 회장은 해외 사업 확대와 현장경영에도 공을 들였다. 정 회장은 취임 열흘 만인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조선업 관련 기조연설을 하며 미국 시장 진출 의지를 밝혔다. 올해는 다보스포럼에서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를 만나 그룹 차원의 파트너십 확대를 논의했고, 인도·베트남 순방과 필리핀 경제사절단 활동 등을 통해 해외 사업을 점검했다. 지난 8월에는 빌 게이츠 테라파워 회장과 만나 SMR 상용화 협력도 논의했다.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향후 5년간 15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에너지·기계·로봇에 8조원, 조선·해양에 7조원을 투입하고 영암 대불산단에 AI 기반 스마트 조선소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지난달에는 SMR 주기기 공장에 2386억원, 데이터센터용 발전엔진 생산기지에 8336억원 등 총 1조722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조직 개편을 통한 사업 경쟁력 강화도 이어졌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는 지난해 12월 합병해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출범했으며, 올해 1월에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를 통합한 HD건설기계가 탄생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가량 이른 사장단 인사를 통해 조선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미래 사업 육성에 힘을 실었다.
인수합병(M&A)도 추진했다. 지난해 12월 베트남 HD현대에코비나 인수를 마무리했으며, HD현대오일뱅크·테넷EP 컨소시엄은 지난 6월 말 대경오앤티 인수를 완료했다.

◆ 중국 추격·증여세·노사 갈등은 숙제
정 회장이 지난 1년 압도적인 성과를 거뒀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여전하다. 가장 큰 위협은 중국 조선사들의 추격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 중국의 시장 잠식으로 주력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의 글로벌 발주량이 2024년 93척에서 지난해 37척으로 줄었다고 진단했다. 실제 중국 조선사들은 생산능력을 확대하며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까지 발주된 LNG운반선 66척 가운데 중국 조선사들이 26척을 수주해 약 40%를 차지했다. LNG운반선을 건조하는 중국 조선소도 올해 5곳으로 늘었다.
이에 HD현대는 가격 경쟁 대신 기술력과 선박 효율성을 앞세워 대응에 나섰다. 기존 4개였던 화물창을 3개로 줄인 ‘3-탱크 화물창’ 설계를 상용화해 표준 17만4000㎥급 선박의 적재 용량을 17만6800㎥ 이상으로 확대했다. 선체 크기를 유지하면서 적재량을 늘려 운항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선급과 함께 26만~27만㎥급 초대형 LNG운반선 개발에도 착수했으며, 풍력 보조 추진장치와 바이오연료·암모니아·수소 등을 활용한 차세대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증여세 부담과 자사주 소각도 남은 과제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일 정 회장에게 HD현대 주식 280만주(3.54%)를 증여했다. 이에 정 회장의 지분율은 6.12%에서 9.67%로 높아졌으며, 정 이사장은 지분율이 26.60%에서 23.05%로 낮아졌지만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했다.
증여세는 증여일 전후 각 2개월간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전날 종가인 16만6100원을 적용하면 증여 주식의 가치는 약 4651억원이다. 다만 실제 증여세는 평가 기간의 평균 주가와 세법상 공제·할증 등을 반영해 결정된다.
자사주 소각도 부담이다. HD현대의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자사주는 832만4655주로 전체 발행주식의 10.54%를 차지한다. 2017년 분할 과정에서 승계·취득한 물량으로, 올해 상반기 말까지 같은 규모를 유지했다. 개정 상법에 따라 내년 9월까지 소각해야 하지만, 법정 예외 사유에 해당하고 주주총회 승인을 받으면 보유·처분할 수 있다. 전날 종가 기준 자사주 가치는 약 1조3819억원이다.
노사 갈등도 해결해야 한다. HD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달 29일 22차 교섭에서 14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올해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지난 2일 조합원 투표에서 반대 52.14%로 부결됐다. 2016년 이후 11년 연속 첫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것이다. 노사는 지난 13일 23차 본교섭을 열었지만 추가 임금 제시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도 교섭을 이어갈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취임 이후 실적 개선과 사업 재편을 통해 그룹의 성장 기반을 다졌다면, 앞으로는 미래 사업을 얼마나 빠르게 수익화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현재는 조선업 호황이 실적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시장 환경이 언제든 달라질 수 있어 미래 경쟁력 확보를 얼만큼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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