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0여년간 추진해 온 사회적 가치 실험이 사회적 기업 지원을 넘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전환 의제로 확장되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해 온 SK의 실험을 토대로 사회적 가치에도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시장의 작동 원리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다.
사회적기업월드포럼(SEWF)은 최 회장이 이사장을 맡은 사회적가치연구원과 함께 오는 15일까지 서울에서 첫 ‘생태계 리더십 교류(Ecosystem Leadership Exchange·ELE)’ 프로그램을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ELE는 특정 국가의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현장에서 살펴보고 각국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SEWF가 신설한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이다. 첫 개최지이자 연구 대상으로 한국이 선정됐다.
이번 행사에는 15개국 19개 기관이 참여한다. 스코틀랜드 기업부 장관과 영국 성과보상 정책 전문가, 말레이시아 정부 관계자, 싱가포르 테마섹재단을 비롯해 호주·캐나다·미국의 비영리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한다.
참가자들은 사회적 가치 보상 체계를 비롯해 관련 정책·입법과 민간 투자, 국가 단위의 생태계 구축 방안을 논의한다. 국회와 공공기관, 기업·재단을 방문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한국의 사회혁신을 뒷받침해 온 정책·금융·시장 구조도 살펴본다.
SEWF와 사회적가치연구원은 한국의 지난 20년간 사회적 기업 생태계 발전 과정을 분석한 공동보고서도 발간했다. 보고서는 한국을 완성된 성공 모델이 아니라 정부·기업·시민사회가 새로운 정책과 시장 체계를 계속 시험하는 ‘살아있는 실험실’로 규정했다.
특히 한국이 첫 ELE 개최지로 선정된 배경에는 최 회장과 SK가 추진해 온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실험이 자리 잡고 있다.
최 회장은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서 사회문제 해결 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자는 SPC 개념을 제안했다. 사회적 가치가 금전적 인센티브로 연결돼야 더 많은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구상이다.
SK는 2015년부터 국내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하고 성과에 비례해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최 회장은 이후 측정과 보상을 넘어 사회적 가치가 시장에서 거래되고 투자 판단에 반영되는 체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구상은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대한 논의로 넓어지고 있다. WEF 슈왑재단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지난 8일 공동보고서 ‘임팩트 경제: 공시에서 수요로(The Impact Economy: Turning Disclosure into Demand)’를 발간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공동서문에서 “SK와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사회적 가치가 측정될 수 있고 금융 인센티브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실험으로 증명했다”며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시스템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인식하고 보상하며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장 실패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의 규칙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가치를 기존 경제 시스템의 주변적인 요소가 아닌 성장의 기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과 측정·공시 체계가 발전하는데도 실제 자본 유입이 부족한 현상을 ‘임팩트 패러독스’로 설명했다. 사회적 가치의 혜택은 여러 주체가 나누지만 비용은 특정 주체가 부담하고, 효과가 재무제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데다 성과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반면 기업은 단기 성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사회성과를 구매하거나 투자하려는 수요를 만드는 규제와 금융 체계, 다자간 협력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SK의 SPC는 사회성과의 측정과 보상을 연결한 대표 사례로 보고서에 소개됐다.
보고서는 긍정적인 사회·환경적 성과가 시장과 금융 시스템을 통해 측정·인정·보상받는 구조를 ‘임팩트 경제’로 정의했다. 관련 내용은 12일부터 18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도 논의될 예정이다.
SEWF의 서울 행사가 사회적 기업을 둘러싼 정책·투자·시장 생태계를 다룬다면 WEF 보고서는 논의를 전체 경제 시스템으로 확장한다. 두 흐름의 접점에는 최 회장이 지난 10여년간 추진한 ‘사회적 가치 측정→보상→시장 형성’ 실험이 있다는 평가다.
게리 히긴스 SEWF 대표는 “한국의 사회적 경제는 정부에서 출발했지만 민간과 비영리조직이 각자의 정책과 기술, 방법론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생태계로 발전했다”며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에도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