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논란] 5·18법까지 소환한 정치권

시사위크
영화 ‘암살자(들)’의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상영 중단 요구와 5·18 관련 법률 폐지 주장으로 번졌다. 영화의 표현을 따지는 논쟁이 진영 간 공방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진은 29일 서울의 한 영화관 예매 키오스크에 '암살자(들)'이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영화 ‘암살자(들)’의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상영 중단 요구와 5·18 관련 법률 폐지 주장으로 번졌다. 영화의 표현을 따지는 논쟁이 진영 간 공방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진은 29일 서울의 한 영화관 예매 키오스크에 '암살자(들)'이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향한 정치권의 비판이 거세다. 국민의힘은 영화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역사적 비극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장면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정치권의 공세는 제작진의 사과와 상영 중단 요구를 넘어 5·18 관련 법률 폐지 주장으로까지 번졌다. 영화 표현을 둘러싼 논쟁이 진영 간 정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역사 왜곡 비판에서 상영 중단 요구로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영화 ‘암살자(들)’ 제작진의 사과와 자발적인 상영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영화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시한다고 주장하면서 5·18을 둘러싼 발언에는 반발하고 영화에는 상상력을 허용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전날 장동혁 대표와 구자근·강명구 의원 등이 제기한 역사 왜곡 논란에 5·18 문제까지 더해진 것이다. 나경원 의원은 이날 한발 더 나아가 5·18 왜곡 처벌 규정의 폐지를 요구했다.

쟁점은 영화가 실제 사건에 더한 상상력의 방향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육 여사를 숨지게 한 총격 사건을 다루면서 박 전 대통령이나 당시 권력이 배후에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고 봤다. 수사와 재판을 통해 결론이 난 사건에 근거 없는 의혹을 덧씌워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제작진이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한 적은 없다고 해명한 만큼, 논란은 영화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은 내용을 관객이 박 전 대통령의 관여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로 연결된다.

영화가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당시 수사 결과에 남은 의문이다. 1974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문세광이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총을 쐈고, 육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 수사당국은 육 여사를 맞힌 총탄도 문세광이 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2005년 공개된 수사기록을 다룬 보도에서는 당시 울린 총성과 발견된 탄두의 수가 일치하지 않고, 육 여사를 맞힌 것으로 추정된 탄두의 행방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영화는 이 의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다른 배후의 가능성까지 질문한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영화 암살자(들) 논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영화 암살자(들) 논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영화가 그 의문을 잘못된 방향으로 확장했다고 반박했다. 재단은 외교사료관에 보관된 수사기록을 근거로 문세광이 장전한 총탄의 발사 경위와 경호원이 쏜 총탄을 설명하며 총성과 현장 증거의 숫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건 은폐를 주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세광이 조총련 관계자에게 포섭된 경위도 수사·재판 기록에 있다며 중앙정보부나 박 전 대통령의 사건 기획설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제작진에는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제작진은 역사 왜곡이나 정치적 의도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되 남겨진 기록과 의문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했으며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하려는 작품은 아니라고 밝혔다. 재단이 문제 삼는 것은 제작진의 의도보다 영화가 관객에게 남기는 인상이다. 양측의 설명은 그 지점에서 엇갈린다.

이 논쟁에서 수사에 남은 의문과 사건의 배후를 둘러싼 주장은 구분이 필요하다. 황현필 한국사 강사는 영화에 대한 분석에서 당시 수사 과정과 육 여사를 맞힌 총탄의 행방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사건을 기획했다고 보는 데에는 선을 그었다. 수사 결과에 의문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박 전 대통령의 사건 기획설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하지만 정치권의 발언은 수사기록과 영화의 표현을 대조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이진숙 의원은 제작진이 북한 영화 ‘민족과 운명’을 참고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고, 개봉 시점도 10·26을 의식해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두 주장 모두 제작 과정에 관한 의혹이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과 백브리핑에서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구자근(가운데) 국민의힘 의원과 강명구 의원이 28일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영화 암살자(들) 관련 역사왜곡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구자근(가운데) 국민의힘 의원과 강명구 의원이 28일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영화 암살자(들) 관련 역사왜곡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나경원 의원은 논쟁을 법률 문제로 넓혔다. 그는 민주당이 5·18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는 처벌하면서 육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에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 ‘육영수 여사 서거 역사왜곡처벌법’을 만들거나 5·18 왜곡 처벌 규정을 폐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다만 나 의원은 새로운 처벌법을 만드는 데 자신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두 선택지 가운데 나 의원이 요구하는 것은 5·18 관련 규정의 폐지인 셈이다.

민주당의 대응도 영화의 구체적인 장면에 대한 반박과는 거리가 있었다. 박 수석대변인은 영화 관련 질문에 국민의힘의 ‘공작 DNA’를 거론하며 맞받았다. 영화 속 장면에 대한 반박보다는 상대 당의 정치 행태를 문제 삼은 답변이었다. 영화가 어디까지 사실에 근거했고 어느 부분에 상상력을 더했는지를 놓고 벌어져야 할 논쟁에 여야의 설전이만 남았다.

같은 국민의힘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치권의 가세를 경계했다. 오 시장은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의 역사 왜곡 가능성을 비판하고 제작진에 유가족을 향한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정치권과 진영이 맞붙을수록 영화가 더 큰 주목을 받는다며 논란에 휩쓸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영화에 대한 비판과 정치권이 그 비판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우려를 함께 내놓은 것이다.

영화가 실제 사건을 다룬 만큼 유족의 고통을 어떻게 다뤘는지도 남는 문제다. 의학전문기자 출신 방송인 홍혜걸 씨는 유족이 살아 있는 사건에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을 덧붙이는 것이 옳은지 물었다. 자기 진영의 인물에게는 허용하지 않을 이야기를 반대 진영의 인물에게는 예술적 허구라며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박 전 대통령의 관여가 입증되지는 않는다. 영화가 그 경계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발언은 영화 속 장면에서 상영 중단, 개봉 의도, 5·18법 폐지로 뻗어 나갔다. 역사 왜곡을 바로잡겠다며 시작한 논쟁에서 정작 영화의 내용을 따지는 일보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일이 앞섰다. 본질을 벗어난 정쟁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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