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직접 마운드 다진 이유는? 글러브 던지고 흙 고른 '통산 99승' 투수의 씁쓸한 일침 [유진형의 현장 1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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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임찬규가 마운드에서 미끄러진 뒤 직접 마운드를 정비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마이데일리 = 유진형 기자] 아찔한 순간은 6회초 2사 후 나왔다. LG 선발 임찬규가 두산 안재석을 상대로 힘차게 와인드업을 한 뒤 공을 던진 직후, 디딤발이 파여 있던 마운드 흙에 걸리며 중심을 잃고 크게 미끄러졌다. 경기 전부터 쉼 없이 내린 부슬비 탓에 마운드는 이미 찰흙처럼 질척이고 있었고, 6회에 이르러 푹 파여버린 착지 지점이 결국 투수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투구 폼이 완전히 무너지며 엉덩방아를 찧을 뻔한 이 순간, 잠실구장 양 팀 더그아웃은 물론이고 팬들까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투수에게 디딤발이 디뎌지는 마운드 흙 상태는 단순한 바닥이 아닌 생명선과 같다. 강한 회전력과 체중을 실어 착지하는 순간 마운드가 밀리거나 홀이 깊게 파이면 고스란히 발목과 무릎, 척추에 거대한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미끄러진 직후 마운드를 발로 차며 강하게 불만을 표한 임찬규의 요청으로 그라운드 키퍼들이 급히 투입되어 흙을 다졌지만, 선수 본인의 불안감을 완전히 씻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임찬규는 글러브를 벗어 던지고 직접 정비 장비를 들고 마운드 흙을 고르기 시작했다. 선발투수가 경기 도중 직접 마운드 정비에 나서는 보기 드문 장면 뒤에는 '내 몸과 내 이닝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베테랑의 치열한 프로 의식이 깔려 있다.

LG 임찬규가 투구를 하다 마운드에서 미끄러진 뒤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LG 임찬규가 마운드 상태와 스파이크에 낀 진흙을 보여주며 마운드 정비를 요청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비가 오는 날에는 매 이닝이 되었든 2이닝마다 되었든 마운드 정비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미끄러져서 넘어지면 선수들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다."

경기 후 밝힌 임찬규의 소신 발언은 결코 개인의 투정이 아니었다.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닌 프로 야구 선수들에게 그라운드 컨디션 관리는 부상 방지의 최전선이다. 실제로 단 한 번의 미끄러짐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거나 선수 생명에 치명상을 입는 사례는 야구계에서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특히 기상 변수가 심한 날 구단과 리그 운영진이 흙의 수분 함량과 단단함을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LG 임찬규가 6이닝 1실점 투구를 마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이날 기상 악조건과 불안한 마운드 속에서도 임찬규는 6이닝 3피안타 1실점 호투를 펼치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13승과 함께 개인 통산 99승을 달성하며 통산 100승이라는 대기록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몫을 완벽히 해낸 투수의 집념과 그 뒤에 씁쓸하게 남은 마운드 정비 모습. 선수 보호를 위한 리그의 세심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 현장의 강렬한 1mm였다.

[LG 선발 임찬규가 경기 중 글러브를 벗고 직접 마운드를 정비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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