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강사님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으세요?"

지난 20년간 강연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온 김창옥 작가에게 7~8년 전부터 반복해서 돌아온 질문이다. 정작 자신의 위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그는 우연히 옻을 만났다. 바르고 기다리고, 긁어낸 뒤 다시 덧입히는 작업을 수백·수천번 되풀이하면서 복잡했던 생각은 줄고 필요한 생각만 남았다.
김창옥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이미 위로를 받아버렸다"며 "이번 작품들은 위로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과 같다"고 말했다.
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MCM 하우스. 평소 마이크를 잡던 김창옥 작가는 강연자가 아닌 '작가'로 취재진 앞에 섰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MCM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김창옥 작가의 첫 개인전 '김창옥: 위로의 흔적'을 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MCM이 프리즈 위크 서울 2026 공식 파트너로 선보이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다. 전시는 오는 3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창옥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갑작스러운 변신이 아니다. 표현의 매체를 말에서 재료와 형태로 옮긴 결과에 가깝다. 그는 약 6년 전부터 옻 작업을 배웠지만 이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작가가 되거나 전시를 열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김창옥 작가는 "겉으로는 일이 잘되고 있었지만 마음과 몸, 삶의 내부가 건강하지 않다고 느꼈다"며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보기 위해 작업실을 찾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작업의 중심에는 고향 제주가 있다. 옻은 온도와 습도, 계절과 공기의 영향을 받으며 마르는 재료다. 제주의 비와 바람, 높은 습도는 작가의 의도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주름과 수축, 균열을 만들어냈다. 김창옥 작가는 이를 결함이 아닌 자연과 시간이 함께 만든 흔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번 전시에서 옻은 전통 공예의 계승이나 기법적 완성도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상처와 실패, 불안과 기다림이 현재의 자신을 이루는 과정임을 드러내는 조형 언어로 쓰였다.
김창옥 작가는 대형 작품을 완성하는 데 생옻 200㎏ 이상을 사용한 것으로 추산했다. 큰 알루미늄 판 위에 선 하나를 긋는 순간에도 발끝부터 손끝까지 온몸의 힘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한번 잘못 그으면 고가의 재료와 그동안 들인 시간까지 되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작업할 때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며 "불필요한 생각이 그물에 걸러지듯 사라지는 명상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이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옻독이 온몸에 올라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고, 전시를 준비하다 디스크가 파열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업을 놓지 않았다.
김창옥 작가는 "옻이 계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것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며 "사랑의 다른 이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글을 쓰게 됐다. 힘든 재료이지만 오히려 제 마음을 더 분명하게 걸러줬다"고 말했다.
작품 '울다'와 '선 없는 선'은 이 같은 작업관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울다'는 옻이 마르면서 생겨난 균열과 주름을 통해 감정과 상처의 시간을 드러낸다. '선 없는 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관계와 긴장, 그 안에서 형성되는 조화를 탐색한다.

제주의 전통문화를 작가의 언어로 풀어낸 '정낭'도 눈길을 끈다. 정낭은 집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이자, 막대를 걸어두는 방식으로 집주인의 부재 여부를 알리던 제주의 소통 수단이다.
김창옥 작가는 정낭을 '마음의 공간'에 빗댔다. 사람의 마음에도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있는 반면, 잠시 멈춰 혼자만의 시간과 거리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의미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고 이를 있는 그대로 허락하는 일 역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해당 작품에는 MCM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다섯 가지 색이 사용됐다.
한국 옻칠을 대표하는 자개를 사용하지 않은 점도 특징이다. 옻칠 작가 전용복에게 기술을 배운 김창옥 작가는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알려줄 테니 너는 네가 돼라"는 스승의 말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일본은 금, 중국은 달걀 껍데기, 한국은 자개를 활용한 옻칠 기법이 특징적"이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자개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빛이 아니라 저만의 빛을 따라가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MCM이 강연자로 익숙한 김창옥 작가의 첫 개인전을 택한 배경에도 이러한 진정성과 독창성이 자리한다. 김해리 MCM 코리아 대표는 김창옥 작가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기 전 작업을 접한 뒤 먼저 전시를 제안했다.
김 대표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꾸준히 붙잡고 작업하는 태도에서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을 봤다"며 "작품 자체가 주는 힘과 믿음이 컸고, 내부에서도 반드시 전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MCM은 이번 전시를 단순한 문화 마케팅이 아닌 브랜드의 미래 가치를 보여주는 시도로 보고 있다. 1976년 독일에서 출발한 MCM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제품 판매를 넘어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브랜드 경험을 확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제는 브랜드의 상품만 소유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고객들은 브랜드가 가진 가치와 지향점, 공간에서의 경험과 기억에도 관심을 둔다. MCM 하우스 역시 판매나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교류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K팝과 K드라마 등 익숙한 방식보다 MCM만의 새로운 시도와 창작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지난 50년에 이어 앞으로의 50년도 새로운 창작자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만남이 향후 제품 협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 MCM 측이 내부 크리에이티브진의 관심을 바탕으로 가능성을 언급한 초기 단계다.
김창옥 작가도 "콜라보 이야기는 어제 처음 나왔다"며 "이를 위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라고 선을 그었다. 이미 시작한 차기 작업 역시 MCM과의 협업이 아닌 작가 개인의 작품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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