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대법원장의 대법관 서면 제청 논란이 일파만파다. 청와대와 의견을 모으지 못한 후보자를 제청한 것을 두고 대법원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인지,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도전인지 해석이 엇갈린다. 여권은 임명 거부와 조 대법원장 탄핵을 거론했고, 야권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압박이라며 정권 탄핵론으로 맞불을 놨다. 관례를 둘러싼 논란이 제청권과 임명권의 충돌, 탄핵 사유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 조희대 증인 채택… 국힘 “청와대 개입부터 밝혀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9일 전체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제청한 경위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이 209일간 지연된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가운데 한 명에게 법원행정처가 연락한 경위도 조사 대상으로 올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를 문제 삼아 사법부 수장을 국회로 불러내려 한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논란의 본질은 서면 제청 방식이 아니라 청와대가 대법관 인선에 개입했는지 여부라고 주장했다. 박형수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는 “왜 헌법상 대법원장에게 보장된 대법관 제청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고 그 결과 지연 사태까지 벌어졌느냐가 핵심”이라며 “지금 국회에 나와 소명해야 할 사람은 조 대법원장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는 박 간사를 비롯해 김민전·주진우·김태규 의원이 참석했다.
박 간사는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국회에 동의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각각 부여한 것은 특정 헌법기관이 대법관 인사권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권한을 나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자만 대법원장이 제청해야 한다면 제청권은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는 형식적 절차로 전락한다며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을 의무적인 절차로 보는 것은 대통령에게 헌법상 근거가 없는 ‘사전 재가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공방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각각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로 모아진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국회에 동의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적용할 절차는 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임명동의안 제출을 보류하거나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 동의안을 제출해야 하는지도 헌법과 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다.
사법부의 제청 절차가 도입된 배경에는 대통령의 법관 인사권을 제한하려는 취지가 있었다. 2019년 ‘강원법학’에 실린 ‘제1공화국에서 사법과 정치-김병로 대법원장의 역할을 중심으로’(한인섭) 논문에 따르면 1949년 법원조직법 제정 과정에서 정부는 법관회의의 제청 절차가 대통령의 임명권을 사전에 제한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명에 앞서 법관회의의 제청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는 법원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현행 대법관 제청권과 당시 제도의 구조는 다르지만 대통령이 법관 인선을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사법부의 제청 절차를 둔 배경을 보여준다.
대법관 인선을 사법부의 독립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2026년 법제처 학술지 ‘법제’에 실린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 구성의 헌법적 문제점과 개선방안’(조주형·김범진)은 대법관 임명 문제를 사법 독립성과 민주적 정당성이 맞닿는 지점으로 봤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중립성을 지키는 동시에 대통령과 국회의 참여를 통해 대법원 구성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기관의 권한을 앞세우기보다 대법원장과 대통령, 국회에 나뉜 권한이 모두 작동해야 한다는 취지다.
◇ 조희대의 서면 제청 셈법… 고심 깊어진 청와대·국회
문제는 조 대법원장이 권한을 행사한 방식이다. 조 대법원장은 209일 동안 제청을 미룬 뒤 청와대와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후보자를 대통령과 만나지 않은 채 서면으로 제청했다. 대면 제청이나 사전 합의가 법률상 의무는 아니다. 그러나 헌법이 임명권을 부여한 대통령을 인선의 협의 주체가 아닌 사후 통보 대상으로 취급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제청권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과 상대 헌법기관의 권한 행사 폭을 좁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조 대법원장이 제청을 마치면서 후속 절차의 부담은 청와대와 국회로 넘어갔다. 이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이 진행된다. 반면 일부 또는 전부의 동의안을 제출하지 않으면 인선 절차는 그 단계에서 멈춘다. 대통령이 제청을 공식적으로 반려하거나 대법원장에게 후보자 재검토를 요구할 절차는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두 후보자를 동시에 제청한 점도 청와대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김성수 후보자에 대해서는 손봉기 후보자보다 양측의 이견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만 제출하면 대법원장의 제청을 선택적으로 수용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두 후보자를 모두 보류하면 대법관 공석 장기화의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 두 후보자를 모두 국회에 보내면 손 후보자를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이견은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로 넘어간다.
여권이 이번 제청을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압박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와대와 협의가 원활하지 않았을 경우 서면 통고가 아니라 대통령을 예방해 의논했어야 했다”며 “인사는 이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은 조 대법원장이 의견 조율을 이어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던져버렸다”며 이 대통령이 손 후보자의 임명을 거부하고 재협의를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제청을 조 대법원장 탄핵론의 근거로 들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이미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을 말씀드린 바 있다”며 “오늘 그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사전 조율과 대면 제청을 생략한 것만으로 탄핵 사유가 성립하기는 어렵다.
헌법 제65조는 대법원장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 국회가 탄핵소추할 수 있도록 한다. 청와대와 후보자를 사전에 합의하거나 대통령을 만나 제청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고, 서면 제청 전례도 있다.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려면 관례 위반을 넘어 조 대법원장이 어떤 헌법·법률 조항을 위반했는지 제시해야 한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탄핵론을 정권 탄핵 주장으로 맞받았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관례를 어긴 것이 탄핵 사유라면 민주당 국회의원 전원이 탄핵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대법원장 탄핵? 한 번 시도해 보라”며 “국민이 반드시 이 정권을 탄핵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다음 선택은 청와대와 국회로 넘어갔다. 이 대통령이 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모두 제출할지, 손 후보자에 대한 판단을 보류할지가 권한 충돌의 다음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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