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실종된 소녀를 찾아 외딴섬에 도착한 경찰.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에서 마주한 것은 어딘가 기묘한 주민들과 낯선 풍습이다. 하나둘 드러나는 섬의 비밀을 따라갈수록 불길함은 짙어지고, 마침내 상상하지 못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포크 호러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꼽히는 영화 ‘위커 맨: 파이널 컷’(감독 로빈 하디)이다.
‘위커 맨: 파이널 컷’은 외딴섬에서 발생한 의문의 소녀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경찰 하위(에드워드 우드워드 분)가 섬 주민들의 기묘한 종교 의식과 숨겨진 비밀을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973년 처음 공개된 ‘위커 맨’은 로빈 하디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프렌지’ 등을 집필한 앤서니 셰퍼가 각본을 맡았다. 오랜 시간 광고업계에서 함께 활동한 두 사람은 데이비드 피너의 1967년 소설 ‘의식(Ritual)’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 에드워드 우드워드를 비롯해 브릿 에클랜드·크리스토퍼 리 등이 출연했다.
‘위커 맨’은 민속적인 소재와 종교적 믿음을 공포와 결합한 독창적인 세계로 오랜 시간 사랑받으며 포크 호러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영화협회(BFI)가 선정한 최고의 영국 영화 중 하나로 꼽혔으며, ‘미드소마’의 아리 에스터를 비롯한 후대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장르 영화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국내에서는 탄생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에 공개되는 버전은 오리지널 필름의 분실과 훼손을 거쳐 로빈 하디 감독이 생전 직접 재편집에 참여해 완성한 ‘파이널 컷’으로, 4K로 복원된 버전을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공간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하위가 도착한 서머아일은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외딴섬 속 작은 마을은 소박하고 아름답다. 주민들은 웃고 노래하며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적어도 그들에게 서머아일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화로운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그 일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감상은 달라진다. 주민들은 성과 생식에 관한 노래를 거리낌 없이 부르고, 남녀가 거리에서 성행위를 하는 등 기이한 풍습과 종교 의식이 일상 곳곳에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하위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주민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삶의 일부다.
아이들의 모습은 더욱 서늘함을 안긴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믿는 가치와 풍습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아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순수한 얼굴로 어른들이 전하는 세계를 배우고 그것을 당연한 진실로 믿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어떤 자극적인 장면보다 섬뜩하게 다가온다. 태어날 때부터 서머아일이라는 닫힌 세계 안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그것이 곧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위 역시 자신의 믿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섬 주민들의 풍습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민들 역시 자신들의 믿음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결국 ‘위커 맨: 파이널 컷’은 각자의 믿음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충돌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로빈 하디 감독은 이러한 충돌을 어둡고 음산한 공간이 아닌 아름다운 자연과 밝은 빛 아래 펼쳐놓는다. 기이한 풍습과 의식을 행하는 이들이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도 기괴함을 배가한다. 평화로운 풍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낯선 일들의 간극은 ‘위커 맨: 파이널 컷’만의 독특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반전이 주는 재미도 상당하다. 지금의 관객이라면 수많은 장르물을 통해 익숙해진 문법 속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도 있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꽤 충격적인 전개다. 특히 여관 주인의 딸 윌로(브릿 에클랜드 분)의 유혹을 끝내 뿌리친 하위의 선택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설정은 묘한 아이러니를 만든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태도가 오히려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 셈이다. 모든 진실이 드러난 뒤 장면들의 의미가 달라지고 목가적으로 보였던 섬의 풍경이 섬뜩한 이미지로 뒤바뀌는 과정도 흥미롭다.
배우들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에드워드 우드워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경찰인 하위가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뒤 겪는 혼란과 불안을 설득력 있게 끌고 간다. 크리스토퍼 리도 강렬하다. 섬의 지주이자 공동체의 중심에 있는 서머아일 경을 연기한 그는 위협적인 악인의 얼굴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롭고 품위 있는 태도로 자신들이 믿는 세계에 조금의 의심도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머아일을 감싸고 있는 기묘한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든다. 러닝타임 95분, 오는 19일 개봉.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