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두 달여 만에 다시 마주 앉는다. 두 CEO는 지난 6월 서울에서 인공지능(AI) 동맹의 큰 틀을 짠 데 이어 엔비디아의 심장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로봇과 AI 데이터센터(AIDC), 자율주행 등 미래 사업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AI를 실제 산업에 구현하는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LG의 체질 개선 작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7일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다음주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를 찾아 황 CEO와 회동한다. 두 사람의 공식 만남은 지난 6월 LG트윈타워 회동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앞서 구 회장과 황 CEO는 1차 회동에서 피지컬 AI와 AI 인프라,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중장기 협력 범위를 대폭 넓히기로 했다. 엔비디아의 AI 컴퓨팅·소프트웨어 기술과 LG의 제조·인프라 역량을 결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후 LG전자, LG CNS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엔비디아 본사를 잇달아 찾아 실무 협의를 마쳤다. 이번 회동이 단순 친선 회동을 넘어 우선순위 선정과 투자 규모, 개발 일정, 계열사별 역할 등을 구체화하는 ‘실행 회의’로 평가받는 이유다.

가장 주목되는 분야는 피지컬 AI다. 엔비디아가 AI의 ‘두뇌’를 제공한다면 LG는 이를 움직이는 ‘몸’과 실제 산업 현장을 제공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아이작과 그루트(GR00T), 코스모스 등 로봇 개발부터 시뮬레이션·학습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가정용 로봇 ‘LG 클로이드’를 비롯해 상업·산업용 로봇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6월 말에는 CEO 직속 ‘로봇사업센터’를 신설하고 사업개발부터 공급망, 생산·운영까지 로봇 사업 기능을 하나로 묶었다. 피지컬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조직 개편이다.
양사는 이미 엔비디아 그루트 생태계를 기반으로 레퍼런스 로봇을 공동 개발하고, 데이터 구축부터 가상 시뮬레이션과 학습, 실제 구동까지 로봇 개발 전 과정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LG이노텍은 센싱 모듈과 광학 부품을 공급하고 LG CNS는 산업용 로봇 플랫폼에 엔비디아 기술을 접목하는 역할을 맡는다.
무엇보다 시너지가 예상되는 이유는 LG가 자체 제조 현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데 있다. 로봇은 AI 모델만으로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공장에서 데이터를 쌓고 수없이 움직이며 학습해야 상용화 수준의 정확도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LG는 가전과 배터리, 디스플레이, 전장부품 등 세계 곳곳에 제조시설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축적한 생산 데이터를 엔비디아의 디지털 트윈·AI 기술과 결합하면 가상공간에서 로봇을 학습시킨 뒤 실제 생산현장에 투입하고, 여기서 다시 얻은 데이터를 학습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LG는 자사 피지컬 AI 플랫폼을 대규모 제조 현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파트너다. LG와 엔비디아가 원재료 조달부터 생산과 물류, 고객 전달까지 AI로 연결되는 자율 제조 체계를 구축해 글로벌 스마트팩토리 표준으로 확장하려는 배경이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AI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엔비디아 GPU를 많이 설치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고성능 GPU가 소비하는 막대한 전력과 열을 감당할 냉각·전력·운영 기술이 함께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LG 계열사의 사업이 맞물린다. LG전자는 냉각수분배장치(CDU)와 콜드플레이트 등 액체냉각 기술을, LG CNS는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 역량을 보유했다. LG유플러스는 데이터센터와 통신 인프라를 담당할 수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를 공급할 수 있다.
양사는 엔비디아의 DSX AI 팩토리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데이터센터 설계부터 구축·운영까지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차세대 GPU 서버의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800V 직류 기반 데이터센터 전력 솔루션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LG CNS가 지난 3월 GPU 576장을 컨테이너 하나에 담아 약 6개월 만에 구축할 수 있는 ‘AI 박스’를 공개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여기에는 LG전자의 냉각 기술과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함께 들어간다. LG가 계열사의 역량을 하나의 AI 인프라 상품으로 묶을 수 있다는 의미다.
모빌리티도 빼놓을 수 없다. LG전자의 인포테인먼트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LG이노텍의 센싱·통신 부품에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플랫폼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을 결합하면 LG의 전장 사업 영역을 기존 부품 공급에서 AI 기반 차량 시스템으로 확대할 수 있다.
LG AI연구원의 ‘엑사원’ 역시 협력 축이다. LG AI연구원은 엔비디아 블랙웰 GPU와 네모(NeMo), 텐서RT-LLM 등을 활용해 엑사원의 학습·추론 성능을 높이기로 했다. AI 모델 개발부터 데이터센터, 로봇과 자동차 등 실제 제품에 AI를 탑재하는 단계까지 양사의 협력 범위가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

특히 이번 LG와 엔비디아의 동맹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개별 제품 협력을 넘어선다는 데 있다.
엔비디아는 GPU를 넘어 AI 모델 개발과 디지털 트윈, 로봇, 자율주행까지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LG는 가전과 로봇, 자동차 부품, 배터리, 통신, 데이터센터 등 AI가 현실 세계와 만나는 접점을 폭넓게 가지고 있다. 엔비디아가 가상세계에서 AI를 학습시킨다면 LG는 그 AI를 공장과 가정, 자동차, 데이터센터에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
황 CEO도 지난 6월 구 회장과 만난 뒤 LG와 휴머노이드 로봇과 차세대 데이터센터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엔비디아는 LG그룹과 로봇·자율주행·데이터센터·GPU 클라우드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AI 팩토리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구 회장에게도 이번 동맹은 의미가 남다르다. LG가 그동안 강점을 보여온 제조업과 하드웨어 사업에 AI라는 공통된 축을 심어 계열사 간 시너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은 LG전자와 LG이노텍·LG CNS, AIDC는 LG전자와 LG CNS·LG유플러스·LG에너지솔루션, 모빌리티는 LG전자와 LG이노텍이 각각 연결된다. 그동안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던 역량을 엔비디아라는 하나의 AI 플랫폼 위에서 묶는 ‘원 LG’ 전략인 셈이다.
이번 협력이 매출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직 시장 형성 초기이고 대규모 상용화까지 기술·원가·안전성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비용과 협상력 측면에서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첫 만남에서 ‘무엇을 함께 할 것인지’를 결정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사업으로 만들 것인지’를 논의할 차례"라며 "구 회장과 황 CEO의 실리콘밸리 회동에서 투자와 공동 개발, 구체적인 상용화 일정까지 한 단계 진전된 결과가 나온다면 LG는 엔비디아의 AI 기술을 가장 다양한 현실 산업에 구현하는 글로벌 파트너 가운데 하나로 올라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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