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광화문=이영실 기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오디세이’를 통해 극장에서만 가능한 집단적 경험의 가치를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고대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스크린으로 옮긴 그는 관객이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함께 체험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서울에서는 영화 ‘오디세이’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엠마 토머스 프로듀서, 배우 맷 데이먼·샤를리즈 테론이 참석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첫 내한인 만큼 행사장은 시작 전부터 수많은 취재진으로 붐볐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자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가 전쟁이 끝난 뒤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에 걸쳐 겪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북미 개봉 후 전 세계 흥행 수입 9억 달러를 돌파하며 흥행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개봉을 앞두고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며 여름 극장가 최고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영화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오펜하이머’ 등을 통해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구축해 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도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 대서사시로 불리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현대적인 블록버스터로 재해석하며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맷 데이먼(오디세우스 역)과 샤를리즈 테론(칼립소 역)을 비롯해 톰 홀랜드(텔레마코스 역)·앤 해서웨이(페넬로페 역)·로버트 패틴슨(안티노오스 역)·젠데이아(아테나 역) 등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한국을 찾은 소감부터 전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한국에 오게 돼 영광이다. 오래전부터 꼭 오고 싶었던 곳인데 이번이 첫 방문”이라며 “‘인터스텔라’ 개봉 당시부터 한국에 내 영화를 가지고 오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제야 이룰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엠마 토머스 프로듀서도 “영화를 사랑하는 나라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돼 영광”이라고 보탰다.
‘오디세이’ 주역들은 짧은 일정에도 서울 곳곳을 누비며 한국을 만끽했다. 10년 만에 한국을 찾은 맷 데이먼은 “한국은 꼭 오고 싶었던 나라였고 이번 작품과 함께 오게 돼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입국 당일 야구장을 방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그는 “친구가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고 있어 경기를 찾게 됐다”며 “양 팀 응원단이 각자의 방식으로 응원하는 모습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같은 스포츠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몇 달 전 딸과 함께 한국을 여행했다는 샤를리즈 테론은 “한국에 도착하면 에너지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문화가 정말 풍성한 곳”이라며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한국 음식을 많이 먹었으며 스킨케어도 즐겼다”고 웃었다. 엠마 토머스 프로듀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함께 한강을 걷고 K뷰티 스토어를 찾거나 소금빵을 맛본 일화를 전하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작품에 담긴 의미와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오디세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최초의 전편 IMAX 필름 촬영 작품으로, 새롭게 개발된 IMAX 촬영 기술을 적용해 제작됐다. 약 91일 동안 모로코와 그리스·이탈리아·아이슬란드·스코틀랜드 등 세계 각지를 오가며 촬영이 진행된 만큼 배우와 제작진 모두에게도 전례 없는 도전이었다.
맷 데이먼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출연 제안을 받았던 순간부터 이번 작품이 자신의 커리어를 대표할 경험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이전에도 함께 작업했지만 이번에는 영화 전체를 IMAX로 촬영하는 최초의 시도였다”며 “매일 수백 명의 스태프가 열정적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이보다 더 헌신적인 현장은 처음이라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이어 “힘들었지만 그 어떤 경험보다도 위대한 경험이었다”며 “마치 영화 7편을 찍는 것 같았다. 로케이션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환경이 있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했다”고 덧붙였다. 또 “놀란 감독이 차기작을 제안한다면 12편을 찍는 것 같아도 당연히 하겠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샤를리즈 테론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의 첫 작업을 “감동적인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규모 블록버스터인 만큼 거대한 현장을 예상했는데, 실제 촬영장은 마치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따뜻하고 친밀했다”며 “모든 과정이 체계적으로 짜여 있었고 정확한 타이밍에 진행되는 모습에도 감탄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에 대해 엠마 토머스 프로듀서는 이번 작품을 “놀란 감독의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펜하이머’ 이후 다음 작품을 묻자 놀란은 또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며 “‘오디세이’는 단순한 각색이 아니라 가장 큰 규모로 구현하려 한 작품”이라고 짚었다.
맷 데이먼은 극의 중심을 이끄는 오디세우스를 연기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 계략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의 왕으로,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나선다. 단순한 영웅을 넘어 수많은 선택 앞에서 흔들리고 갈등하면서도 끝내 귀향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샤를리즈 테론은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섬에 붙잡아 두는 칼립소로 분했다. 난파한 오디세우스를 구한 뒤 영원한 삶을 약속하며 그의 귀향을 가로막는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존재다. 샤를리즈 테론은 “처음에는 칼립소가 일차원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놀란 감독이 만들어낸 칼립소는 굉장히 인간적이었다”며 “양가적인 감정과 내면의 갈등을 지닌 인물이라 흥미로웠다”고 해석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둘러싼 유쾌한 대화도 이어졌다. 배우들에게 좀처럼 ‘퍼펙트(Perfect)’라는 칭찬을 하지 않는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향해 맷 데이먼은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며 웃었다. 이어 “감독이 젠데이아에게는 ‘퍼펙트’라고 말한 적이 있다. 톰 홀랜드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못 들었다”며 비하인드를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샤를리즈 테론은 “나는 디렉션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퍼펙트’라는 말을 못 들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맷 데이먼에게는 꼭 필요했던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샤를리즈 테론의 답변은 완벽했다. 맷 데이먼의 답도 나쁘지는 않았다. 영국인에게 ‘낫 베드(not bad, 나쁘지 않다)’는 굉장한 칭찬”이라며 재치 있게 받아쳐 웃음을 더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의 가장 큰 힘으로 ‘함께 경험하는 시간’을 꼽았다. 그는 “극장은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집단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며 “책이나 TV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적 교감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가치”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오디세이’를 만들면서 관객들이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함께 오르기를 바랐다”며 “배를 함께 타고, 산을 함께 오르고, 동굴을 함께 들어가는 것처럼 여정의 일부가 되도록 연출했다. 그 경험을 다른 관객들과 극장에서 함께 나누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주역들은 한국 팬들의 뜨거운 환대에 감사를 전하며 ‘오디세이’가 극장에서 특별한 경험으로 남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관객들에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각자가 영화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길 바란다”며 “원작을 모르는 관객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모험 영화로서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맷 데이먼 역시 “원작 ‘오디세이아’가 그렇듯 영화를 보는 시기와 삶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을 줄 작품”이라며 “풍성한 주제를 담고 있는 만큼 관객들이 어떤 생각을 나누게 될지 무척 기대된다”고 보탰다. 샤를리즈 테론도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 새로운 대화가 시작된다는 점이 가장 아름답다”며 “예고편도 보지 않고 극장에 들어가 영화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경험을 좋아한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각자의 해석을 나눠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끝으로 엠마 토머스 프로듀서는 “영화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유대감을 경험하는 집단적인 체험”이라며 “‘오디세이’ 역시 연결과 유대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3000년 전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디세이’는 오는 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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