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대웅제약 ‘블록형 거점도매’를 둘러싼 공정거래위원회 민원이 정식 사건 전환 없이 종결되면서 제약업계 유통망 재편 움직임이 주목된다.
블록형 거점도매는 전국을 여러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마다 지정된 도매업체가 의약품 공급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16일 의약품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한국의약품유통협회가 지난 5월 제기한 대웅제약 관련 민원을 지난달 26일 종결했다. 이번 결정으로 제약사가 거래 도매업체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시 짜는 데 따른 규제 부담은 한층 낮아지게 됐다. 권역별·품목별 전담 도매를 앞세운 제2, 제3의 유통망 재편이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구체적인 종결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공정위는 제출된 자료만으로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정식 심사에 착수할 증빙이 부족하면 민원을 종결할 수 있다.
앞서 대웅제약은 올해 3월 전국 유통망을 10개 권역으로 나누고 5개 거점도매를 중심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체계를 도입했다. 기존에는 수십 곳 도매업체와 직접 거래했지만, 거점도매 체계에서는 약 3개월간 공개 입찰로 선정된 업체가 각 권역 물량을 맡아 기존 도매업체와 약국 등에 제품을 공급한다. 계약은 1년 단위로 정기 평가와 경쟁입찰을 거쳐 갱신된다.
대웅제약은 AI(인공지능) 기반 수요 예측과 운송관리시스템을 활용해 권역별 재고와 배송 현황을 실시간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약사는 전용 앱에서 주문한 약의 위치와 도착 예정 시각을 확인할 수 있고, 하루 2회 배송과 주문 후 3시간 이내 긴급배송, 새벽배송도 운영된다. 반품은 거점 유통사가 직접 수거해 처리 기간을 10일 이내로 줄였다. 품절과 과잉재고를 줄이고 배송 경로와 반품 과정을 표준화해 공급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대웅제약에 따르면 거래 도매업체를 소수로 압축하면 계약과 여신, 대금 회수, 반품 등 거래처 관리 업무가 간소해진다. 지역별 주문량과 재고 회전 속도, 제품별 판매 흐름을 한데 모아 생산과 영업 전략에도 활용할 수 있다.
제약사가 약국 전용 온라인몰과 주문 플랫폼을 확대해 온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주문과 결제뿐 아니라 제품이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판매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는 생산계획과 영업 인력 배치, 신제품 출시 전략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다.
거점도매가 정착하면 의약품 공급망의 중심도 도매업체에서 제약사로 이동할 수 있다. 제약사가 거래 업체와 권역, 공급 조건을 설계하고 거점업체를 앞세워 실제 배송까지 관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공정위 민원 종결은 여타 제약사가 유통망 재편을 검토할 명분도 될 수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자체 주문 플랫폼과 전국 영업망을 갖추고 유통 물량이 많은 대형 제약사라면 대웅제약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특정 권역이나 품목을 대상으로 변형된 모델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이것이 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제네릭(복제약)처럼 다른 회사 제품으로 대체하기 쉬운 의약품이 주력인 제약사는 거래 도매업체를 줄이는 순간 오히려 매출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거점에서 빠진 도매업체가 약국에 성분이 같은 경쟁사 제품을 대신 공급하면 해당 제약사 매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물량이 적은 중소 제약사는 거점업체에 창고 확충이나 배송 개선 같은 투자를 요구할 협상력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병원과 대형 거래처는 기존 직거래를 유지하면서 약국 공급이나 일부 일반의약품부터 거점 체계를 적용하는 절충형 모델이 먼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매업계는 거점도매 체계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의약품유통협회는 기존 직거래 도매업체가 거점도매에서 제품을 다시 공급받는 과정에서 유통 단계가 늘고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정 거점업체의 전산이나 물류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권역 전체의 공급 차질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협회는 이번 종결이 정책의 적법성을 인정한 판단이 아니라 자료 미비에 따른 행정 종결이라고 보고, 공정거래 전문 대형 로펌을 선임해 회원사 피해 사례와 증빙을 보완한 뒤 공정위에 재신청한다는 방침이다.
국정감사 공론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협회는 주요 의원실과 공조해 거점도매 지정이 유통 독점과 약국 선택권 제한으로 이어져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는 전략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개별 기업의 거래 정책 문제가 아니라 의약품 유통 주도권이 제약사와 도매업계 중 어느 쪽으로 가느냐의 문제”라며 “대웅제약이 공급 안정성과 물류 효율을 입증하느냐에 따라 후속 제약사의 움직임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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