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를 대체하는 신규 철강 수입관리 제도를 시행하면서 글로벌 철강 시장의 보호무역 기조가 한층 강화됐다. 무관세 쿼터 물량이 대폭 축소되고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율도 인상되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수출 여건 악화와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이 겹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됐다.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EU는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를 대체하는 신규 철강 수입관리 제도를 이날부터 시행한다. 글로벌 공급과잉 대응을 명목으로 EU 전체 무관세 쿼터는 기존 3382만톤에서 1835만톤으로 46% 줄었다.
정부는 한-EU 정상회담 등을 통해 협상을 진행한 끝에 한국 전용 쿼터 207만3000톤을 확보했다. 기존의 쿼터(258만1000톤)보다 19.7% 감소한 규모지만, EU 전체 무관세 쿼터가 46% 줄어든 점을 고려하면 감소 폭을 일부 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출 여건이 악화된 가운데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율이 기존 25%에서 50%로 상향되면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시행된 ‘K-스틸법’ 역시 저탄소 전환을 위한 세제·보조금 지원은 담겼지만, 철강업계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아온 산업용 전기요금 지원 방안은 제외되면서 업계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업계가 전기요금 인하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어나는 산업 특성이 있다. 고로 중심 생산에서 전기로 비중을 확대해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지만, 전기로는 대규모 전력 사용이 불가피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전기로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나 전기요금 상승이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최근 4년간 kWh당 105원 수준에서 180원 안팎으로 크게 올랐다. 이는 미국(112원대)·중국(116원대) 등 경쟁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철강업계에서는 전기료로 인한 원가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24시간 연속 가동이 필요한 제철소 특성상 시간대별 요금제 개편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전기료 인하 요구는 한국전력의 재무 구조라는 벽에 막혀 있다. 한전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3조7842억원으로 역대 1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206조원의 부채와 128조원의 차입금이 남아있어 하루 이자 비용으로만 114억원을 부담하고 있다. 2023년 47조8000억원까지 불어났던 누적 영업 적자도 1분기 기준 34조원으로 여전하다.
증권가는 이미 올해 전망을 일제히 낮췄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영업이익을 전년 대비 49.4% 감소한 6조8231억원으로 추정했고, NH투자증권도 두바이유 전망치를 배럴당 75달러로 올려 잡으며 연간 영업이익 전망을 기존 20조원에서 13조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도 하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단기간 내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전기·가스 요금 등 주요 공공요금을 하반기에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한전도 이달부터 오는 9월까지의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현행 ㎾h당 +5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전기료를 내리기는커녕 추가 인상도 억누르는 상황에서 인하 논의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려난 셈이다.
이에 따라 철강업계의 원가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는 연간 약 5000억원, 현대제철은 1조원 규모의 전기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산업이 무너지면 자동차·조선·방산 등 전방산업 전체가 연쇄 타격을 입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업 지원 차원을 넘어선 전략적 판단이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업계 내부에서는 이미 국내 사업 축소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철강이 밀려들고 국내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사실상 국내 수요는 끝났다고 본다”며 “글로벌 투자를 하지 않으면 수익성이 악화되니 동남아·중남미 등지에 해외 생산 기지를 짓는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정해진 수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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