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윤혁 기자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잠실개표소 봉쇄 시위’가 8일 기준 나흘째 계속되고 있다. 이번 시위는 그동안 정치적 의사 표현에 소극적이었던 20·30세대가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SNS를 통해 시위 관련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며 젊은 세대의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주말 올림픽공원 일대 체류인구 중 2030 비중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공원 체류인구(오후 5시 기준)는 최대 3만2,000명으로, 20대(34.2%)와 30대(24.1%)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평일인 8일에는 9,000명~9,500명(오후 1시 기준) 수준을 유지했으며, 이중 20대(15.1%)와 30대(16.9%) 비중은 32%에 달했다.
◇ “한 표가 침해당했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20·30 세대가 시위에 참여한 일차적 동기는 정치적 성향이나 정파적 이해관계가 아닌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지난 6일 오후 잠실개표소 시위에 참여한 직장인 김고은(24) 씨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선거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데,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국민의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심각하게 느껴졌다”며 “투표를 하지 못한 시민들이 있는 상황에서 개표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의문과 불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SNS와 언론을 통해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접했고, 저 역시 현장에 직접 가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올림픽공원 일대에는 20·30 청년들뿐 아니라 중장년층과 노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현장 분위기에 대해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무더운 날씨에도 시민들은 질서를 유지하며 집회에 참여했다”며 “스케치북에 직접 재선거 문구를 적고 태극기를 그리는 청년들도 있었고,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음료와 간식을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며, 특히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고 분리배출을 하는 모습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많은 20·30 청년들이 현장에 나온 이유 역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한 표가 정당하게 행사되고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고치고 사과하면 끝?”… 빗발치는 ‘재선거’ 요구
시위에 참여한 청년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거 관리 치계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7일 시위에 참여했다는 직장인 A(28)씨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그동안 선관위에 다양한 이슈가 있어왔지 않냐”며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거나 투명한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가를 향한 국민들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선거 시스템 개혁이 너무나도 필요하고, 재선거 역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황나은(26·인천 거주) 씨 역시 “각종 이슈가 많았던 선관위를 깨끗하고 공정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며 “남녀노소 올바르고 깨끗한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부분이 뭉클하면서도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지만 SNS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고 목소리를 보태는 ‘잠재적 시위 참여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향후 정치권의 대처 방식과 상황 전개에 따라 언제든 거리로 나올 준비가 돼있다는 입장이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동규(26) 씨는 “지금 청년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절차적 정의가 무너진 선거에 대한 재선거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제도 개선”이라며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사태가 잘 안 풀리거나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시위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재선거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김씨는 “이번에 재선거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고 치고 사과받으면 되지’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우려가 있다”며 “국민이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이번 사태를 풀어가야 하고, 재선거도 (정치권의) 의지와 노력이 들어간다면 충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김씨는 시위가 진영 싸움이나 터무니없는 의혹 제기로 흐르는 것에 대해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정확한 근거 없이 추측만으로 상대 진영을 몰아붙이는 태도는 이번 사태의 전모를 규명하는데 가장 큰 위협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라며 “사건이 일어난 이후 진행되는 외침들의 성격이 하루가 다르게 변질돼 가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시위에 참여한 청년들의 요구는 ‘참정권(기본권) 침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선거 관리 체계에 대한 신뢰 회복’ 등으로 모아지는 모양새다. 전면 재선거 실시 여부와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지라도, 선거 과정 전반에 대한 투명한 설명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절차적 정의와 공정을 중요시하는 청년층의 문제 제기 역시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또 정치권이 국정조사와 특검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진상 규명 절차가 본격화된 상황이다. 정치권이 향후 청년층의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지 관심이 쏠린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