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국민은 한 표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고 국가는 그 한 표가 온전히 행사될 수 있도록 관리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일에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관리의 기본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광진구를 비롯한 전국 곳곳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거나 지연됐다. 일부 유권자는 긴 줄을 서서 기다리다 발길을 돌렸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투표용지를 비닐봉지나 종이가방에 담아 긴급 수송하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문제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당초 투표용지를 유권자 수의 50% 수준으로 준비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오후부터 부족 상황이 보고됐음에도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송파구의 경우 전체 인쇄 물량은 남아 있었음에도 투표소 간 재배치와 긴급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퇴 의사를 밝혔다. 허철훈 사무총장 역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선관위는 외부 전문가 중심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퇴는 책임의 시작일 수는 있지만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국민이 선거 과정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다. 아무리 공정한 개표가 이뤄졌더라도 투표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면 선거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사태 이후 온라인과 정치권에서는 각종 의혹과 음모론이 확산됐다. 상당수는 근거가 부족하거나 과장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논란이 커질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에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선관위의 안일한 대응이다. 채용 비리 논란, 가족 특혜 의혹, 사전투표 관리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본투표 관리 실패까지 발생했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오히려 선거 신뢰를 흔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변명이나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다. 국정조사든 특별조사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이 왜 발생했는지, 현장 보고 이후 어떤 대응이 이뤄졌는지, 관리자들은 어떤 판단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아울러 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겸직하는 현행 구조와 전문성 부족 문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거는 국가 운영의 근간이다. 수천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전국 단위 선거를 관리하면서 "예상보다 투표율이 높았다"는 해명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번 지방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선거를 신뢰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선관위가 진정으로 국민 앞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선거 신뢰를 흔든 역사적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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