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사천=김두완·박설민 기자 대한민국은 ‘전투기를 만드는 나라’다. KF-21 전투기와 FA-50 경공격기, 수리온 헬기까지 독자 개발하며 항공산업의 외연을 넓혀왔다. 한때 해외 항공기를 들여와 운용하거나 면허생산에 의존하던 나라가 이제는 직접 설계하고 생산해 해외에 수출하는 단계까지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항공기를 만드는 것과 항공산업을 키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기술 개발 이후에는 수출과 인증, 국제 경쟁, 정부 정책, 안정적인 수요 확보라는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실제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본사 경남 사천 현장 취재 과정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기술 개발 못지않게 인증과 수출, 안정적인 수요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렵게 확보한 기술을 어떻게 유지하고 성장시킬 것인가. 이제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마주한 질문은 그 지점에 있다.
◇ KF-21이 보여준 변화
경남 사천 KAI(한국항공우주산업, 이하 KAI) 고정익동에서는 KF-21(한국형 차세대 전투기)과 FA-50(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기반으로 개발된 경공격기) 생산이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고정익은 헬기와 같은 회전익과 달리 날개가 고정된 항공기를 의미한다. 생산라인 곳곳에는 조립 중인 기체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작업자들은 동체 내부에서 전선과 장비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국 항공산업은 해외 기술에 의존하는 수준이었다. 과거 F-4와 F-5 전투기 면허생산 경험은 있었지만 독자 개발 역량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T-50 고등훈련기를 시작으로 FA-50, KF-21 개발까지 이어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한국은 항공기를 직접 설계하고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
KF-21 국산화율은 약 65%, FA-50은 약 6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엔진 등 일부 핵심 부품은 여전히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지만, 기체 설계와 체계통합, 생산 분야에서는 독자 역량을 확보했다. 항공기를 직접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한국 항공산업은 과거와는 다른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고정익 사업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KAI가 해외 시장에서 맞붙는 상대는 록히드마틴, 보잉, 에어버스 같은 글로벌 항공우주 기업들이다. 이들은 항공기 성능만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외교, 금융지원, 후속군수지원, 무장체계 패키지가 함께 움직인다. KAI가 기술력을 확보했더라도 기업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경쟁 구도가 펼쳐지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과제는 남아 있다. 항공산업은 단기 수익성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분야다. 개발 기간이 길고, 생산 물량은 제한적이며, 기술 축적 효과는 다음 사업에서 나타난다. 정부가 기술의 현재 가격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 가치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항공산업은 기업 혼자 성장하기 어려운 분야다. 수출과 후속지원, 국제 협력까지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함께 이뤄질 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 KF-21 논란, 무엇이 사실인가
고정익 사업이 성장하는 동안 KAI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KF-21 공동개발 사업이다. KF-21은 한국이 주도해 개발한 차세대 전투기다. 2016년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면서 인도네시아는 개발비 일부를 부담하고 향후 기술 이전을 받는 형태로 사업에 참여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의 개발 분담금 납부가 장기간 지연되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기술진의 USB 반출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여론에서는 “분담금은 내지 않으면서 기술만 가져가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동개발 사업과 기술유출 의혹이 하나의 논란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KAI 관계자들의 설명은 조금 달랐다. 분담금 문제와 USB 반출 의혹은 성격 자체가 다른 사안이라는 것이다. 분담금은 공동개발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계약과 비용 분담 문제이고, USB 반출 의혹은 별도로 수사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보안 문제라는 설명이다.
실제 인도네시아의 KF-21 사업 분담금은 당초 계획에서 조정됐다. 대신 기술 이전 범위 역시 축소됐다. 즉 분담금을 줄인 만큼 제공되는 기술 범위도 함께 조정됐다는 것이 KAI 측 설명이다. KAI 관계자는 “지급하지 않은 만큼 분담금을 조정했고, 우리가 주기로 한 기술 범위도 그에 비례해 줄여서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사례가 공동개발 사업을 둘러싼 오해와 논란이었다면, AI 파일럿 계약 논란은 새로운 기술 개발 과정에서 불거진 사례다. 본지는 지난해 KAI의 AI 파일럿 계약 논란을 다루며 KAI 측 반박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 KAI는 해당 계약이 KF-21 사업이 아니라 다목적 무인기 개발 과정에서 추진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논란은 곧바로 KF-21 사업과 연결되며 확산됐다.
물론 모든 논란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방산 사업인 만큼 검증과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사업의 실제 내용과 별개로 서로 다른 성격의 사안들이 하나의 논란으로 묶여 소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항공산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다. 전투기 한 기종을 개발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리고, 개발 이후에도 생산과 수출, 성능개량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외교와 안보, 기술, 산업 정책이 복합적으로 얽힌다. 단순히 계약 하나나 논란 하나만으로 사업 전체를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KAI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KF-21과 FA-50 역시 단순한 완성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많은 협력업체와 연구기관, 엔지니어가 참여해 구축한 산업 생태계의 결과물이다. 생산이 중단되거나 후속 사업이 끊기면 기술과 인력 역시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규모의 차이는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KAI의 지난해 매출은 약 3조7,000억원 수준이다. 반면 미국 록히드마틴은 연간 100조원을 훌쩍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보잉과 에어버스 역시 수십조원에서 100조원 안팎의 매출 규모를 갖고 있다. KAI가 맞서고 있는 상대가 어떤 기업들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KF-21과 FA-50은 한국이 항공기를 직접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다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전투기 개발 성공 이후 한국 항공산업이 어떤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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