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광주 시민, 박종철 열사 유가족 앞에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신세계가 함께 내놓은 조사발표문과 별첨자료를 살펴보면, 이번 사과가 무엇에 가장 공을 들였는지는 의외로 선명해진다.
이번 논란은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18일 ‘탱크데이’라는 이름의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시작됐다. 행사 게시물에는 ‘5/18 탱크 데이 &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가 사용됐다. 이를 두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탱크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확산됐고, 광주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이후 스타벅스코리아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정용진 회장은 지난 26일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신세계 측은 별도 조사발표문을 통해 이번 ‘탱크데이’ 마케팅과 관련한 내부 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그룹은 관련자 5명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스타벅스코리아 대표 해임 및 본부장 문책 방침을 밝혔다. 동시에 현재까지 조직적 고의성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으며, 향후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다만 정 회장 사과문과 신세계 조사발표문을 둘러싸고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 하나, 왜 ‘생각의 차이’라 말했나
정 회장은 사과문 말미에서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단순한 정치적 견해 충돌과는 결이 다르다. 5·18 민주화운동과 박종철 열사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탄압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사건들이다. 이번 사태 역시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라는 표현이 사용됐고, 동시에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시작됐다.
문제는 사과문 어디에도 왜 5월18일 ‘탱크데이’가 위험한 조합인지, 왜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이 박종철 열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지, 왜 광주 시민사회가 분노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대신 사과문은 “더 좋은 대한민국”,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는 식의 화해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와 국가폭력의 문제를 ‘다름’의 영역으로 치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5·18과 박종철 열사 사건은 원래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국가폭력에 대한 역사적 판단의 영역이라는 지적이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탄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정치적 견해 차이가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기업 마케팅 수단으로 끌고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그룹 회장의 사과문에는 그 역사성에 대한 인식과 잘못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아닌 그저 갈등 봉합과 브랜드 신뢰 회복 메시지에 더 무게를 실었다는 평가가 많다.
◇ 둘, “모든 책임” 어디로 갔나
정 회장은 사과문에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세계 조사발표문에서 실제로 호명된 책임 주체는 대부분 실무진과 결재라인이다. 그룹은 관련자 5명을 대기발령 조치했고, 스타벅스코리아 대표 해임과 본부장 문책 방침도 함께 공개했다.
문제는 이번 마케팅이 단순히 한 실무자의 일탈로 보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다. 조사자료에 따르면 해당 프로모션은 팀장→담당→본부장→대표이사로 이어지는 결재 절차를 거쳤다. 행사 합의자 일부는 첨부파일조차 열어보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5월 18일에 탱크데이는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 논란은 한 직원의 표현 실수라기보다 그런 표현이 조직 내부에서 아무런 제동 없이 통과됐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정작 사과문에는 그룹 차원의 역사 감수성 부재나 조직문화 실패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문장은 점점 실무선 문책과 내부 절차 문제로 향한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정 회장이 도의적 책임은 자신에게 돌렸지만, 실제 책임 구조는 철저히 실무진과 결재라인 중심으로 정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 셋, 사과보다 길었던 ‘고의성’ 부인
법조계 일각에서는 기업 논란 사건에서 ‘고의성’ 여부가 향후 책임 판단의 핵심 쟁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형법’상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는 단순 실수나 과실보다 특정 대상에 대한 비하·조롱의 목적성과 의도를 중요하게 본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역시 허위사실 유포나 왜곡·비방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수사 과정에서도 ‘의도성’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세계 조사발표문에는 “고의로 해당 마케팅을 기획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표현이 반복 등장한다. 직원들은 “AI에 물어봤다”, “운율을 고려했다”, “5·18은 생각조차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공개됐다.
기업 내부조사에서 휴대전화 제출 거부와 메신저 보관기간까지 공개한 대목은 단순한 조사 경과 설명으로만 보기 어렵다. 회사는 끝까지 확인하려 했지만, 개인 비협조와 시스템 한계 때문에 고의성을 밝히지 못했다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결과적으로 책임의 초점은 조직이 아니라 일부 직원과 조사 한계로 옮겨간다. 사과문 뒤에 숨은 가장 노골적인 방어선이다.
별도로 배포된 ‘팩트체크’ 문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신세계는 △503mL 용량 △21% 할인율 △4월 16일 출시일 등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우연”이었다는 점을 반복 설명했다. 단순 해명이라기보다 향후 수사와 책임 공방에서 ‘의도는 없었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를 미리 쌓아가는 방식에 가까워 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회장은 사과문에서 연신 ‘책임’을 말했다. 그러나 신세계 발표문은 그 책임이 어디까지 미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민주화운동과 국가폭력의 역사 앞에서조차 회사가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은 반성이 아니라 “고의가 없다”는 해명이다. 흘리지 않은 눈물보다 더 선명했던 것은 끝까지 계산된 방어 논리다. 그의 사과가 악어의 눈물로 의심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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